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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리달 Feb 13. 2023

엄마, 나 너무 행복해!

나는 언제 행복했을까.



늦은 밤, 방에서 나온 큰아이가 상기된 표정으로 말을 한다.


"엄마, 나 너무 행복해."


취미로 하는 일에 온라인상의 누군가에게 좋은 말을 들었다며 행복하다고 자랑을 한다. 



일부 청소년들은 이미 취미가 직업이 되기도 했고 이미 직장인보다 더 많은 돈을 벌기도 하는 시대라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또래 친구들은 학업과 학원에 치여 입시를 위해 달려가며 취미생활 하나 즐길 시간 없는 나이이다. 


그 옆에서 학원 하나 다니지 않고 스스로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언가에 엄청 몰입하면서 취미가 직업이 될 것 같지도 않은(아직 뭐라 하기는 뭣 하지만).. 밖에서 보기에 황금 같은 시간을 어영부영 의미 없이 보내고 있는 것 같은 모습으로 지내고 있는 아이인데. 


공부로 반에서 1등을 한 것도 아니고 무슨 상이나 어떤 알아줄만한 인정을 받은 것도 아닌 소소한 일에서 이제는 체격이 나보다도 더 커진 무뚝뚝한 성향의 사춘기 아이는 엄마 앞에서 환하게 웃으며 아기 때처럼 좋아한다. 


"그래?  좋겠다~! 축하해!! 멋진데?"


아이가 이런 소소하지만 기분 좋은 이야기를 엄마 앞에서 편안하게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는 아이 앞에서 '학생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라는 고리타분한 말을 던지지 않은 엄마라서 다행이다 싶다. 


돈은 없는 엄마이지만 그래도 돈 안 벌어 온 그 시간 동안 최소한 그거 하나는 잘할 수 있게 되었구나 싶다가도, 부모에게 이런 말은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내 어린 시절이 자꾸만 생각난다.


나는 언제 행복했을까.





나는 행복하다는 말을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글쎄,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 모든 시간이 다 암울하고 우울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내 아주 많은 시간들이 편안하지도 않았다.


무엇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고, 좋고 싫음도 없는 아이. 


원래부터 내향성인 탓도 있었겠지만 그 무엇 하나 드러내고 제대로 해 본 적 없는 나였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고 고작 좋아하는 소설이나 만화책을 보는 것에서도 나는 끊임없이 눈치를 보았다. 


부모님이 뭐 거창하게 1등만 바라거나 학업에 대해 극성이신 것도 아니었는데, 공부 안 할 거였으면 차라리 마음껏 놀기라도 할걸. 그게 지금 내가 후회하는 부분이었지만 이미 다 지난 일이다. 나는 분명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들도 많이 보냈지만 그중 마음 한편에는 언제나 죄책감 같은 감정도 같이 있었기에 맘껏 좋아하는 것조차 하면 안 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늘 소심하게 공부도 안 하고 딴짓만 하면서 그것조차 마음껏 해 보지 못했다. 어린 시절 나는 내가 행복하면 안 되고, 행복할 수 없는 사람인 줄 알았다. 특별하게 커다란 사건 사고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무엇이 어린 나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며칠 계속 그저 힘없이 서있던 과거의 어린 내 모습이 계속 보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겉으로 다 자란 척했지만 속은 아이였던 나는 생각하는 것이나 감정에 대해서 편안하게 말을 해 본 적도 없고, 원하던 말을 들어본 적도 없는 것 같다. (어느 즈음부터는 내가 어떤 말을 듣고 싶어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누군가의 응원은 나에게 그저 부담이었고, 그것을 하지 못 한 나 자신에 대한 자책과 죄책감으로만 이어졌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대놓고 시킨 것도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나는 그랬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무엇을 원하는지도 알지 못했고, 거기서 성장하지도 못한 채 그대로 나이만 먹었다. 




그래도.


"네가 행복해하니 엄마도 행복해."


여전히 나에게 너무 낯선 단어이지만, 행여 아이가 보고 배울까 봐 익숙한 척 내뱉는다. 



내 아이들은 최소한 나처럼 키우고 싶지 않았음에도 방법을 몰라서 헤매던 때가 있었는데, 아이가 이렇게 말을 해 주는 것을 보니 지금은 그것에서는 아주 조금 벗어난 것 같아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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