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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욱 Jun 30. 2019

'이립'이라고 했다.

[지난 일기] 2019년 05월 20일의 일기

[지난 일기] 2019년 05월 20일의 일기


'이립'이라고 했다.


사람의 나이가 서른이면 세상과 가정의 기반을 이루고 스스로 일어선다는 의미이다. 이립을 지나 또 십 년이 흐르면 불혹이 된다. 어떤 유혹에도 쉬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의미란다.


공자가 말한 이립과 불혹은 적어도 나한테는 해당되지 않을 것 같다.


공자는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다’며 지학이라 고백했지만 내가 학문에 뜻을 둔 적은 스물 너뎃 살쯤이었다. 스무 살, 나는 성인이 되었다는 풋내 어린 치기로 젊음을 흥청망청 쓰다가 군 복무를 했다. 전역 후에는 억눌린 2년의 한을 푸느라 정신없었고, 그 뒤에 비로소 조금은 철이 들었던 그때쯤이었다. 공자의 지학보다 난 근 10년은 지각을 한 셈이다.


나는 그렇게 서른이 됐지만 이립은 아니다. 이제 사회 초년생으로서 갓 고치를 비집고 나오려 할 뿐이다. 내 과거를 돌이켜보면 결국 나는 또 공자보다 늦지 않을까 싶다.


우스운 말이지만 공자보다 조금씩 늦게 세상을 깨닫는다는 생각에 묘한 패배감을 느끼기도 한다. 몇 백 년 전 사람보다 깨달음에 이렇게나 늦다니...


그런데 문득 다른 생각이 든다.


공자의 지학이 열다섯이라고 꼭 내 지학이 열다섯은 아닐 수도 있다. 공자의 이립은 서른이었지만 내 이립은 또 다를 수 있다. 공자의 불혹은 마흔이었지만 내 불혹은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속도와 방향이 있다. 삶의 방향성에서는 그 사람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관이 담겨있고, 그 가치관을 확립하는 과정의 경험은 감히 경중을 논할 수 없다.


나는 한 개인이 꿈꾸기엔 너무 원대하고 낭만적인 꿈을 꾼다는 소리를 듣곤 한다. 내가 바라는 세상은 모든 사람들이 좀 더 정의로운 생각을 하고, 모두가 그 행동을 실천하는 세상이다. 내가 바라는 나의 미래는 나의 말과 행동으로 세상에 조금이나마 선한 영향력을 남기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고 말을 한다. 그래서 나는 내 행동에 책임지는 습관을 가지려고 애쓴다. 언젠가 많은 대중 앞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고 사람들을 위로하는 강연을 하고 싶다. 그 과정에서 어쩌면 내게는 공자가 정의한 이립, 불혹, 지천명은 없을지도 모른다. 내 나름대로 세상을 규정하는 또 다른 분류가 생길지도 모른다.


오늘의 나는 이립과 불혹은 탐나나 지천명은 탐나지 않는다. 스스로 밥값은 하고 싶고 옳지 않은 일에 유혹당하지 않고 싶지만 세상의 뜻이나 정해진 운명 따위를 믿으며 내 가능성을 가두고 싶지 않다. 결국, 나의 이립과 불혹 그리고 지천명은 내가 정하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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