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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현 Apr 23. 2023

새로운 세계

23. 04. 23.

“채이야~”

“꼬모~”

동네 구경을 나온 아기 참새 마냥 저 멀리서부터 종종종 달려와 폭 안기는 우리집 대장. 매주 주말마다 종일 붙어지내며 친구보다 더 자주 만나는데도 채이는 만날 때마다 마치 아주 오랜만에 만난 것처럼 온몸으로 반가움을 표현한다. 짧은 다리로 우다다다 달려와 허벅지에 얼굴을 폭 묻고 부비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꼬모~ 하는 모양새를 볼 때면 일주일간의 스트레스가 모두 사라지는 것 같다.



3년이라는 시간은 사람의 생에 선명한 나이테가 새겨지는 시기인지도 모른다. 대략 3년 단위로 삶에는 굵은 마디가 생기는 게 아닐까. 3년이 지나면 중학생이 고등학생이 되고, 청소년이 성인이 되고 즐겁게 시작한 일에 권태기도 온다. 3년은 생애의 시간에서 눈 깜짝할 새이기도 하고 때론 삶을 함축해놓은 듯 우여곡절의 시간이기도 하다. 특히 태어나 첫 3년은 무에서 유가 창조되듯 사람의 거의 모든 능력을 갖춰 나가는 때인지도 모른다. 이제 32개월, 만 3년이 채 되지 않은 채이는 놀라우리만큼 순식간에 배우고 못하는 말도 없다.


채이가 성장한 만큼 우리 가족의 삶도 크게 변화했다. 삶은 늘 조금씩 변화하지만 그 온도와 색채가 이전의 어떤 시간과도 다르다는 걸 느낀다. 갓 세상에 나온 작은 존재 하나가 이토록 많은 이들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우리는 채이를 중심으로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고, 채이 덕분에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있다. 내가 집에 가면 부모님은 “채이 고모 왔나~”(채이 고모가 우리 딸의 자리를 이토록 쉽게 전복한다)하고 어른들의 세계, 세상의 역경과 힘겨움을 거친 말로 토로하다가도 채이가 들을 새라 표현을 순화하고 마음을 고쳐 먹는다. 거리에 나가면 모든 아기들의 존재가 눈에 들어오고 그 부모들의 애씀이 함께 느껴진다. 막막한 세상을 쉽게 단념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미래를 생각하며 관심을 갖고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게 된다. 사랑의 힘이란 이런 것이리라.


채이는 우리의 상상에 걸맞게, 또 때로 상상을 아주 벗어나며 제 생긴대로 잘 자라고 있다. 온 가족이 모였을 때 누군가가 빠지면 빈자리를 그 누구보다 먼저 감지해 없는 가족을 챙기고(할머니 집에 오자마자 온 방을 점검하고는 “꼬모는 일 갔어?” 한다. 감동….), ‘나’와 ‘너’를 구분하며(할부, 할미, 엄마, 아빠는 눈에 보이는 존재이고 단어도 가르치는데, ‘나’라는 개념과 단어는 생각보다 추상적이고 가르치기 어려운 개념이라는 걸 알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채이는 “나는 아크미(아이스크림) 먹을 거야”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좋고 싫음이 분명하며 고집도 세다. 벌써 어린이집 새싹반을 졸업해 열매반에 다니는 상급생이기도 하다.



뒤집기도 겨우 하던 아기가 뛰어다니고, 숫자도 1부터 10까지 세며, 종일 놀다가 헤어질 때면 “꼬모 우리 꿈에서 만나자~”라는 말도 할 줄 알게 된 지난 시간 동안 나는 어떻게 성장했을까. 새로운 수의 개념을 알게 되거나 없던 능력이 생길 정도로 크진 못했지만 새로운 사랑의 힘을 알게 되었고 미래의 세상을 조금 더 생각하게 되는 사람이 되긴 한 것 같다.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는 것, 연약한 존재와 자연을 학대하지 않는 것, 다양성을 수호해야 하는 것이 더 이상 관념적이거나 추상적인 개념으로 다가오지 않게 되었다. 이미 만들어진 세상, 그저 나만 눈 감고 감내하면 될 세계가 ‘사랑’으로 인해 ‘우리’의 세상, 함께 살아가야 할 세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채이는 나에게 사랑이라는 힘을 알게 해주었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채이는 자기 자신으로 잘 빚어지고 있다. 우리 역시 채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세상에 대한 책임이라는 의식으로 열심히 확장하고 있다. 각자의 속도로 역할을 성실히 해내고 있는 우리에게 또 한 번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있다.


“꼬모~ 우리집에 채이 동생 찌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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