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에게 보내는 열네 번째 편지
나아야 며칠 동안 너무 바빠서 일기를 못 썼네. 일상은 로켓 공학이 아니라고 외치며 한 걸음씩 나아가는 모습에 감동받았다고 더 빨리 말해주고 싶었는데 말이야. 저번주 목표는 다 이뤘는지도 궁금하다. 다 못 이뤘으면 또 어떠니, It's not a rocket science! :D
이틀 전에 미국에서 처음으로 "셀프 이사"를 했어. 한국에 있을 땐 주로 포장 이사 업체를 이용해서 편하게 옮겼는데, 여기에서는 짐도 많지 않고, 물가도 비싸서 셀프도 가능할 것 같았어.
스튜디오(오피스텔과 비슷한 집이라고 생각하면 돼!)에 살아서 짐이 별로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짐이 너무 많아서 놀랐고, U-haul(유하울)이라는 이사 전문 업체로부터 빌린 짐차를 직접 운전하며 우당탕탕 해프닝도 많이 겪었어. 사이드 브레이크 잠그는 방법부터 기어 변속하는 방법 등 하나하나가 모두 나에겐 challenge였던 것 같아.
남편과 둘이 뚝딱하려고 했는데, 전날에 짐을 싸다 보니 도저히 둘이서 이사는 안 될 것 같더라. 그래서 바로 테니스 모임에 있는 지인 두 명에게 SOS를 쳤어. 하루 전에 연락한 거였는데도 거뜬히 부탁을 들어줘서 너무 고마웠고, 다시 한번 주위 사람들에게 잘하고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어.
첫 미국 생활을 하면 아는 것도 없고 힘든 일도 많은데, 방 한 칸에서 내 공간 없이 지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더라. 물론 그 덕에 남편과 더 돈독해지기도 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지긴 했지만 나만의 공간이 주는 온전한 휴식을 대신할 수는 없으니까.
미국에서의 삶도 조금씩 추억으로 굳어지고 있어. 너무 좋은데, 조금 아쉬운 마음도 들고. 나도 참 복잡한 종족이야, 그렇지?
벤 사이즈 보다 한 단계 높은 크기의 짐차를 빌렸는데 꽉 차서 '이거 두 번 옮겨야 하는 거 아닌가..?' 하며 고민했어. 그래도 어떻게 욱여넣으니 되더라. 운전하는데 덜컹덜컹 소리가 천둥같이 크고, 차 어디가 부서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났어. 주차할 때 여유 공간이 어느 정도인지도 가늠이 안 돼서 고생했지만 꽤나 재밌는 경험이었다고 생각해.
유튜브에 랜선 집들이 영상을 올릴 예정이지만, 나아에게 갓 이사 온 따끈따끈한 우리 집을 먼저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이틀 내내 정리하며 조금의 아늑함은 갖춰졌지만, 더 들여다보면 정리해야 할 것들이 태산이야.
넓어진 공간보다 더욱 내 마음에 드는 건, 정문 바로 앞에 있는 조그만 정원, 그리고 뒤뜰에 있는 테라스야.
나는 아파트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거든. 아파트보다는 흙을 밟을 수 있고, 문 열고 나가면 들꽃이 있고, 새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이 좋아. 물론 편하고 안전한 건 아파트를 따라올 수 없겠지만, 조금 불편해도 자연 속에 사는 내 모습이 퍽 마음에 들거든.
이사 온 곳은 하버드 하우징 중 한 곳인데, 하버드 하우징은 아파트도 많이 있지만, 나는 꼭 여기 살아보고 싶다며 고집 피워서 남편과 함께 선택한 집이야. 얼마나 이곳에 머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사는 동안 매일매일을 의미 있게 지내보려고 해.
공간이 주는 창조력을 믿거든
확실히 공간은 어떤 식으로든 우리에게 행복과 창조력을 제공해 주는 것 같아. 나는 그것을 이번에 이사하면서 더욱 믿게 됐어. 내 공간을 뚫고 나온 창조적 결과물들이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오늘부터 열심히 달려보기로 약속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