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에게 보내는 스물두 번째 편지
글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흐뭇하게 웃었어. 내 입장에서가 아니라, 남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이해하려고 하는 모습이 너무 멋있고 대단해.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며 악을 지르기만 하는 세상인데, 나아는 조용히 멈춰서 눈을 맞추고 귀를 기울여준다는 거잖아. 진짜 어른의 모습이다. 나도 나아말처럼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 보려 끊임없이 자각하고 노력해 볼게!
나아와 편지를 주고받지 않았던 며칠 동안 혼자 이리저리 방랑하며 돌아다녔어. 나 정말 유튜브 이름 잘 만든 것 같지 않니, "방랑하는 언니 미국 생활" 이란 이름, 용케도 잘 뒤적거려 찾아냈다 싶어.
요즘은 어느 때보다 혼자 있는 게 좋아. 물론 함께 할 이들도 많이 없지만, 누군가를 부른다고 해서 채워지지 않을 것 같아. 마치 목마를 때 바닷물을 마시는 듯한 타는 갈증이 내내 나를 쫓아다니는 느낌이었어. 맨 처음 보스턴에 와서는 아는 사람이 없어서 혼자 다녔고, 중간엔 많은 사람들을 사귀게 되며 함께 다니는 걸 즐겼어. 그런데 요즘은 그들과 함께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도 문득 쓸쓸하단 느낌이 드는 것 같아.
최근에 여러 일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 몇 가지를 이야기하려고 해, 제일 먼저 말하고 싶은 건 "새로운 곳에서의 일출"이야. 하버드 하우징에 이사 온 후 루틴이 잡혀가면서 슬슬 일출 시간에 맞춰 산책도 하고 있어. 요즘엔 5시 30분쯤에 해가 떠. 해가 뜨기 전에 여명이 얼마나 아름다운 줄 몰라. 고즈넉한 하버드 풍경과 어우러진 일출은 오래된 엽서 속 한 장면 같아.
아침 해의 기운을 받으며 하루를 시작하라는 조언을 들었고, 미국에 와서 여건이 허락되는 한 열심히 해보려고 노력해. 엊그제 혼자 이 풍경을 보면서 걷는데, 그냥 갑자기 울컥하더라. 감사해서.
이 평화를 얻기 위해서 그 어둡고 무서운 터널을 무조건 지나야 했던 거라면,
기꺼이 나는 그 터널을 언제든 다시 가겠노라 다짐하며 걸었어.
그리고 기억나는 두 번째 방랑의 길은 "Emerald Necklace"라는 곳이었어.
요즘 날씨가 환상적이라 집에만 있을 수 없어서 무작정 나왔는데, 차도 없고 돈도 별로 없었어. 그렇게 고민을 많이 하다 선택한 곳이야. 보스턴은 여러 공원을 이어서 거대한 산책로를 만들었는데, 그 산책로 모양이 목걸이와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래. 나아는 와봤는지 모르겠다.
이곳을 걸으며 또 혼자 사색했지. 사실 요즘 집안에 여러 일들이 겹쳐서 남편과 함께 고생을 했는데, 그게 잘 해결돼가고 있는 중이라 이런 시간이 필요했어. 왜 나는 또다시 혼자가 됐을까. 왜 자처해서 이렇게 혼자 다니며 방랑하는 것일까.
갑자기 주변에 모든 일이 잘 풀리고 있는 사람들과 비교한 건 아니었을까 싶더라고. 돈 걱정 없이 사는 사람들, 우리에겐 고민인 것을 쉽게 해결해 나가는 사람들, 나보다 능력이 출중한 사람들..... 내가 지금 여기에서 뭘 하고 있는 걸까, 이 시간들이 정말 의미가 있는 걸까, 쓸데없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
처음 산책을 할 때는 이러한 생각들이 나를 짓뭉갰고, 그 후론 아무 생각 없이 멍 때리며 걸었어. 그러다 갑자기 문득 어떤 생각이 날 스쳤어.
나의 이런 시간들이 다 쓸데없는 것은 아닐 거야
3시간이 넘게 땀 뻘뻘 흘리며 걷다 보니 내가 갖고 있는 감사한 것들이 썰물처럼 밀려오더라. 여행 간 바닷가에 내 이름을 적어 사랑한다고 메시지를 보내온 아빠엄마, 늘 따뜻한 마음으로 날 감싸주시는 시부모님, 세상에서 제일 친한 첫 번째 친구인 남편, 두 번째 친구인 여동생. 집에서 답답할 때 밖으로 조금만 나오면 온 세상이 내게 다가오는 아름다운 곳에 살고 있는 것. 물론 커리어가 끊기고 돈은 못 벌지만 어쨌든 돌아갈 곳이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니까. 그리고 우리 부부에겐 미래의 희망이 있고, 꿈이 있으니까. 또 함께니까.
모두의 출발점이 다르고 처해진 상황이 다르니 부러워할 것도, 비웃을 것도 없는 것 같아. 그냥 무덤덤하게 내 인생을 걸어가야지. 아주 초연한 느낌으로, 이미 결말을 아는 소설이니까.
마지막으로 방랑한 곳은 "Mount Auburn cemetery"야. 공동묘지지. 언어교환을 했던 친구가 이곳에서 러닝을 꼭 한 번 해보라고, 너무 좋다고 하길래 운동할 겸 가봤어. 근데 거기에 떡하니 쓰여있더라. "No running or jogging"이라고 말이야.
문 앞에 떡하니 쓰여있는데 어떻게 하겠어, 그냥 슬슬 걸었지.
위에서 내가 '이미 결말을 아는 소설'이라는 표현을 쓴 건, 죽음에 관한 얘기였어. 어차피 나는 죽을 거니까. 나뿐만 아니라 어차피 모든 사람은 죽는 결말의 소설. 오늘 걸으면서 조용히 비석을 살펴봤어. 거기에는 언제 태어나서 언제 죽었고, 어느 가문의 사람이었는지 등에 대한 정보가 적혀 있었어.
계속 보다 보니 대부분이 백 년도 살지 못하고 죽은 이들이었어. 누군가는 고작 25년, 누군가는 90년을 살았어. 어쨌든 세상의 시계에 비하면 너무나 찰나 같은 시간이야.
이 무덤 위를 쉴 새 없이 누비고 돌아다니는 건,
죽은 사람들이 아니라 살아있는 것들이었어.
독수리, 청설모, 토끼, 다람쥐... 응, 죽은 이들은 말이 없으니까.
언젠간 나는 죽어서 땅에 묻힐 것이고 이렇게 비석하나 남겨둘 것이며, 내 위는 살아 있는 동물들이 누비고 다니겠지. 그렇게 짧은 인생인데, 누구랑 비교를 하고 누구에게 과시하려고 살지 말자. 그냥 어제보다 더 한 발 나아가면서, 희망과 꿈이 있는 삶을 꿈꾸며, 뜨거운 가슴으로 살아가자, 이렇게 스스로 마음먹고 돌아왔어.
내일은 오늘보다 아주 조금 더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겸손하고 정갈한 인생을 꾸려나갈 힘이 내게 있기를.
진실된 마음으로 친절하게 타인을 대할 수 있는 따뜻함이 있기를.
갖지 못한 것보다 갖고 있는 것을 감사할 줄 아는 현명함이 늘 함께 하기를.
침묵 속에서 진짜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삶의 통찰이 있기를.
나를 이롭게 하고, 세상을 이롭게 하겠다는 희망을 잃지 않기를.
나를 토닥여주고, 사랑해 주며 이해할 수 있는 용기를 잃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