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isplay Nov 06. 2018

'뭉텅찌개'를 아시나요?

겨울의 길목에서 생각나는 강원도 별미


겨울의 길목에서, 춘천의 석양 (2018.11.5.)


 무더운 여름날에는 치킨과 맥주가, 비 오는 날에는 파전에 막걸리가 생각나는 것처럼 날씨가 본격적으로 추워지기 시작하는 이 맘 때면, 강원도 사람들에게는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 그중 하나가 푹 익은 진한 김치 국물에 돼지고기가 한가득 들어간 찌개, 바로 '뭉텅찌개'다.


 춘천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뭉텅찌개'라는 이름을 처음 듣고 국어사전에서 '뭉텅'이라는 단어를 찾아봤다. 내가 알고 있는 그 의미의 '뭉텅'이 맞을까 의아했기 때문이다.


 '뭉텅'은 '한 부분이 대번에 제법 크게 잘리거나 끊어지는 모양'이라는 의미의 부사어다. '칼로 뭉텅 도려내다', '종이 뭉텅이'처럼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이는 우리말이다. 내가 알고 있는 그 의미가 맞았다. 하지만 요리에 '뭉텅'이라는 단어가 쓰이는 것이 이색적이었고, 어떤 요리인지 무척 궁금했다.


고기와 김치를 덩어리 채로 넣어서 가위로 뭉텅뭉텅 잘라먹는 '뭉텅찌개'


 '뭉텅찌개'는 고기와 김치를 덩어리 채로 넣어서 가위로 뭉텅뭉텅 잘라먹는 찌개다. 흔히 알고 있는 '묵은지 돼지고기 김치찌개'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강원 지역에서는 '뭉텅찌개'라고 부른다. 정확한 어원이나 유래는 모르겠지만, '뭉텅'이라는 부사어를 그대로 차용한 것 아닌가 싶다.


 하지만 단지 이름만 다른 것은 아니다. '뭉텅찌개'에는 향수를 자극하는 맛이 있다. 어린 시절 시골 할머니 댁에서 먹던 김치찌개가 생각이 난다. 명절 밑 교통체증으로 저녁을 먹지 못하고 늦은 시간에 도착한 시골집에서 할머니께서 김치와 고기를 뭉텅뭉텅 잘라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끓여다 주신 김치찌개, 그 맛이 난다. 금방 끓여다 준 찌개에서 어떻게 이렇게 깊은 맛이 날 수 있을까. 그래서 그때부터 나는 '할머니 손은 요술 손'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뭉텅찌개를 한 입 먹으면 그 시절 할머니의 손이 생각난다.



 넓은 냄비에 넘실대는 빨간 김치 국물. 그 안에 묵은지와 돼지고기가 수줍은 듯 숨어 있다. 냄비 온도가 올라가면 김치 국물 위로 묵은지와 돼지고기가 푸짐한 자태를 뽐낸다. 한소끔 끓어오르면 묵은지와 돼지고기를 먹기 좋은 크기로 가위로 '뭉텅뭉텅' 썰어 먹으면 된다. 토실토실한 두부는 덤.


겨울 길목의 밥도둑 '뭉텅찌개'


 뭉텅찌개용 묵은지는 소를 적게 넣는 대신 양념을 좀 진하게 하는 것이 특징으로 반년 가량 숙성해 사용한다고 한다. 돼지고기는 생앞다리 살을 두껍게 썰어 통으로 넣었다. 김치와 함께 먹으면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을 느낄 수 있다. 기호에 따라 빨간 국물에 라면사리 등을 넣어 먹기도 한다. 쌀쌀한 날씨면 이 뭉텅찌개가 생각나 집에서 나름대로 요리해 보곤 하지만 그 맛은 감히 따라 할 수가 없다. 결국 다음 날 점심시간, 이 곳으로 향한다. 


 '춘천'하면 열에 아홉은 '닭갈비'나 '막국수'를 떠올리지만, 색다른 별미를 원한다면 겨울의 길목에서 '뭉텅찌개'를 맛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TRAVEL TIP] 초가뭉텅찌개
 춘천 시내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뭉텅찌개' 식당을 만날 수 있지만, 그중에서도 소양강댐 길목에 있는 '초가뭉텅찌개'가 유명하다. 점심시간 전부터 사람들로 북적이고, 조금 늦게 방문하면 번호표를 받아야 할 정도로 인기가 좋다. 특히 주변 직장인들 사이에서 해장용으로 사랑받고 있다. 주차 공간이 넓지는 않지만, 점심시간에는 주변 도로에 주차할 수 있다. 가격은 뭉텅찌개 8,000원. (2인분부터) / 라면사리 1,000원 추가. 예약 가능. 033-241-0078
 * 뭉텅찌개뿐 아니라, 칡냉면도 의외의 별미다.


매거진의 이전글 날마다 좋은 날 되소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