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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splay Oct 08. 2018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

의암호를 한눈에! 춘천 '삼악산' 등산


 명절 준비로 도시가 온통 들떠있던 추석 연휴 첫날, 나에게는 그저 평범한 휴일이었다. 연휴에 잡혀 있는 방송 일정 때문에 본가에는 추석 당일에만 잠시 다녀오기로 했기에 평소 휴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에게는 쉬는 날에도 뭔가를 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이 있나 보다. 휴일이라도 하루 종일 집에서 빈둥빈둥 노는 일은 나에게 맞지 않는다. 나의 휴일 루틴은 이렇다. 늦잠을 자고 침대에서 뒹굴거리다가 배가 고프면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밀린 빨래와 청소를 하고도 시간이 남으면 글을 쓰거나 책을 읽고, 드라마나 영화를 본다. 그래도 몸이 간지러울 때가 많아 운동하러 나가거나, 산책 겸 근처 카페라도 다녀 온다. "이번 주말에는 진짜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만 있어야지"라고 피곤에 쩐 주중에 나름 다짐하지만, 막상 주말이 되면 몸은 자꾸 움직이고 싶어 한다. 나에게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안 나가는 날은 일 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하다.


 이 날도 마찬가지였다. 연휴 내내 집에서 배달음식이나 시켜먹으면서 아직 안 본 <미스터 션샤인>을 몰아보겠다고 다짐했지만, 막상 연휴 아침에 눈을 뜨니 어딘가 가고 싶어 졌다. 그렇다고 너무 먼 곳은 피곤할 것 같고, 누군가를 만나기에도 부담이 되었다. 그래서 내 방에 붙여둔 춘천 관광 안내 지도를 스캔했고, 눈에 띄는 곳을 선택해 아침 일찍 나갈 채비를 했다.


 오늘 가기로 마음먹은 곳은 '삼악산'이다. 삼악산은 춘천 시내 서쪽에 있는 산으로, 서울을 오고 가는 차 안에서 종종 보아 왔던 산이라 언제 한 번은 올라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곳이었다. 집 근처 김밥집에서 김밥 한 줄을 포장해 삼악산으로 향하는 버스를 기다렸다.


 요즘 춘천은 시내버스 대란이다. 춘천시 유일의 시내버스가 노조 파업을 하면서 일부 노선 운행에 차질이 생겼다. 지역 뉴스를 통해 이 소식을 전하고 있지만, 시내 노선은 대부분 정상적으로 운행되고 있었기에 내가 불편을 실감할 일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시내를 조금 벗어난 면 지역에는 버스가 제대로 운행되고 있지 않았다. 시에서는 긴급 대책으로 마을 순환버스와 희망 택시를 시행하고 있었지만, 관광객으로서 이용하기는 불편했다. 결국 버스가 없어서 택시를 탔다. 


 춘천 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10분 남짓이면 의암댐 근처 삼악산 삼악산장 매표소에 도착한다. 이날 나는 삼악산장 매표소를 출발해 상원사를 지나 용화봉(654m)까지 오른 뒤, 흥국사를 거쳐 등선폭포로 내려오는 코스를 선택했다. 이 코스는 초심자도 비교적 쉽게 오를 수 있는 코스로 넉넉 잡아 3-4시간이면 완등 할 수 있다.



[TRAVEL TIP] 삼악산
 산림청이 선정한 100대 명산 중 하나로, 주봉이 용화봉(645m), 청운봉(546m), 등선봉(632m) 셋이라 해서 삼악산이라 불린다. 이름에 '악'이 들어가는 만큼 제법 가파르고 험하다. 산의 규모가 크거나 웅장하지는 않지만 경관이 수려해 많은 등산객이 찾는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의암호와 북한강이 장관이다. 또한, 등선폭포를 비롯한 크고 작은 폭포들은 관광객들의 발길을 잡기 충분하며, 산속에 숨어 있는 상원사와 흥국사 등의 사찰들을 둘러보는 재미도 있다. 입장료는 2천 원. 춘천에서 사용할 수 있는 2천 원권 춘천사랑상품권으로 돌려준다.



 삼악산장 매표소에서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가파른 절벽길이다. 이 코스는 계단으로 시작해 정상까지 가파른 길이 이어진다. 꽤나 비탈지기 때문에 조금만 올라도 금방 숨이 찬다. 그래도 조금만 오르면 뒤쪽에 펼쳐지는 의암호와 북한강이 한눈에 들어와 힘이 절로 솟는다.


 추석 연휴인 만큼 산에 오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정상까지 대여섯의 등산객들만 마주쳤을 뿐, 산에는 거의 나 혼자다. 그 사실이 조금은 오싹하게도 느껴졌지만, 덕분에 새소리와 바람소리에 집중할 수 있다.



 의암호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걸려있는 삼악산장을 지나면 곧이어 상원사에 닿는다. 잠시 숨을 돌린 뒤 다시 경사진 계단 길을 오른다. 이 코스 중 가장 힘든 구간으로 이 구간은 '깔딱 고개'라고 불린다. 깔딱 고개를 넘어서면 조금 더 가파른 암릉 코스가 나온다. 이 구간부터는 본격적으로 하늘이 가까워진다. 손을 내밀면 구름이 잡힐 것만 같다. 쇠줄을 잡고 암릉 코스를 오른다. 군데군데 바위를 집고 올라야 하기 때문에 등산용 장갑을 끼는 것이 좋다. 



  드디어 구름에 갇혀 있는 뾰족한 바위 정상이 보인다. 뒤쪽으로는 의암호가 한눈에 들어온다. 안개가 살짝 덮어져 연하게 보이는 중도와 붕어섬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날씨가 맑았다면 더 좋았겠지만, 속이 뻥 뚫리는 장관에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삼악산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의암호 (2018.9.23.)


 준비해 온 김밥 한 줄과 귤을 까먹고, 흥국사 방면의 비탈길로 하산한다. 조금 더 어릴 때는 산을 내려가는 일이 마냥 즐겁기만 했다. 하지만 이제는 하산하는 마음이 마냥 가볍지만은 않게 되어 버렸다. 산에 더 있고 싶은 마음에 아쉬운 마음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바람이 좋고, 공기가 좋다. 마음까지 맑아지는 푸르른 풍경은 더 좋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돌탑


 산에서 느낄 수 있는 또 하나의 즐거움은 자연석으로 아슬아슬하게 쌓인 '돌탑'이다. 삼악산 곳곳에서도 아기자기한 돌탑들을 만날 수 있는데 이곳을 다녀간 여러 사람의 바람이 담겼다고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숙연해진다. 아슬아슬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지만, 한 층 한 층 쌓인 우리의 바람은 생각보다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초원을 지나 흥국사에서 약수로 목을 축인다. 이 구간부터 등선폭포까지의 등산로는 올라왔던 암릉지대와는 다르게 계곡물이 세차게 흐르는 협곡지대다. 곳곳에 숨어 있는 크고 작은 폭포를 찾는 즐거움이 있다. 승학폭포, 백련폭포, 비룡폭포 등 크고 작은 폭포를 지나면 삼악산 폭포의 끝판왕, '등선폭포'를 만난다.


등선폭포 제2폭포 (2018.9.23.)


 등선폭포는 제1폭포, 제2폭포 2개로 구성돼 있다. 두 폭포 모두 높이는 그렇게 높지 않지만 주변 협곡과 멋진 절경을 이룬다. 폭포와 가까워지면 동굴에 들어선 것처럼 서늘해진다. 송골송골 맺힌 땀도 금방 식어 버린다. 등산 끝에 만나는 시원한 폭포는 산이 주는 선물 같다. 등선폭포는 여름에 다시 한번 찾아오고 싶다. 걷기도 어렵지 않으니 우리 할아버지를 모시고 와도 괜찮을 것 같다. 


 [TRAVEL TIP] 등선폭포
 등선폭포는 서울과 춘천을 연결하는 46번 경춘국도변에 바로 붙어 있어 찾기 쉽고, 주차장에서 걸어서 10분도 안 걸리는 가까운 곳이라 접근하기도 쉬워 사시사철 관광객들로 붐빈다. 특히, 한여름에도 동굴에 들어선 것처럼 시원하기 때문에 여름철 주말이면 피서를 위해 찾는 사람들이 많다. 등선폭포를 시작으로 주변의 크고 작은 폭포들을 모두 둘러보는 데 3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아 어린이는 물론, 어르신들을 모시고 와도 좋다. 입장료는 2천 원. 춘천에서 사용할 수 있는 2천 원권 춘천사랑상품권으로 돌려준다. 


깊은 절벽 사이에 자리한 신비한 등선폭포




 산을 오르다 보면 여러 갈래의 길이 나온다. 어디로 가든 결국 같은 곳에 도달하게 되는데 그때마다 자꾸 꾀를 부리게 된다. "어느 길이 더 빠를까. 어느 길이 덜 힘들까." 하지만 이 길로 가나, 저 길로 가나 정상까지 도달하는 데에는 크게 차이가 없다. 결국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속도에 치중하다 방향을 잃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빨리 가는 것보다 어디로 가야 할지 이정표를 정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나는 지금 무엇을 향해 어디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나의 연휴 첫날은 이렇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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