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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센스 Apr 10. 2024

자유와 휴식의 가격 : 주식 빚투 경험담

단순한 목적이 있는 가벼운 삶을 위하여

이틀 후면 21년도에 영끌해서 빌렸던 빚 1억 정도를 다 갚을 예정이다. 나만 집 없는 포모(FOMO)에 시달리고 있던 때라, 집 사게 되면 여유자금으로 쓰려고 빚냈는데, 여차저차해서 사전청약에 당첨된 집은 계약금 내기 전에 포기했고, 그 돈으로 전부 주식을 샀다. 대출금을 주식에 파킹해 놔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주식 자산 형태로 몇 년 간 그대로 보유하게 되었다.


24년도 2월부터 갚기 시작해서 2달 정도만에 다 갚는 셈이다. 작년에 퇴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빚을 우선 다 갚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주식이 계속 오르는 추세라 못 팔았다. 작년 하반기부터 어느 타이밍에 팔면 좋을까 계속 생각했다. 분산 투자해 놓고 포트폴리오로 관리하고 있어서 어떤 주식을 팔아야 할지도 답이 안 나왔다.


23년도 가을쯤에 모르겠으면 그냥 전체 포트폴리오의 비율을 유지하고 모든 종목을 동일한 비율로 팔자고 생각하고 기계적으로 팔았다. 그런데 며칠 못 가 아무래도 시장이 다시 오르는 추세인 것 같아서 그 돈으로 그냥 다시 주식을 더 샀다. 결론적으로는 좋은 선택이었다. 작년 가을부터도 내가 보유하던 주식들이 많이 올랐다. 그렇게 오래 보유했는데, 어쩌면 최대 상승구간을 놓칠 뻔했다.


2월에 독서모임에서 우석의 부의 본능이라는 책을 같이 읽었다. 책 속의 한 문장이 마음에 꽂혔다.


“자유롭게 살려면 빚부터 갚아라”라는 문장이었다. 이미 몸소 느끼고 있던 내용을 책 속의 문장으로 보니까 머리를 한 대 세게 때려 맞은 것처럼 강렬하게 느껴졌다.


빚이 있다면 당신의 월급, 수입은 이미 금융기관의 몫이다. 당신은 금융기관의 노예와 같다. 빚이 있는 사람은 수입이 생기면 맨 먼저 금융기관에서 이자부터 떼어간다. 수입의 통제권이 당신에게서 금융기관으로 넘어간 것이다. 당신은 인생을 금융기관에 저당 잡힌 셈이다. 빚이 있으면 다른 좋은 회사로 옮길 기회가 있어도 옮기지 못한다. 당신의 인생의 주도권을 되찾으려면 빚부터 갚아라.

우석(브라운 스톤), 부의 본능 중


작년에 분명 작년까지만 다니고 퇴사하겠다고 마음먹었었는데, 올해도 열심히 같은 회사에서 똑같은 일 + 다른 사람이 넘긴 일까지 엄청나게 스트레스받으면서 했던 이유는 빚 때문이었다. 일단 이 1억의 빚을 갚아야, 월세와 관리비 내고 식비 쓸 정도의 돈만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고정적으로 벌 수 있으면 퇴사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퇴사할 수 있는데 내 의지로 더 다니는 것과, 빚 때문에 퇴사할 수 없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이다.


우상향 하는 차트를 보면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먹고 빚투한 자금이라도 빼자라고 생각했던 욕심, 영끌해서 빌린 돈까지 모두 투자해 시장에 인생을 베팅한 데서 온 기저 불안이 하루하루의 행복과 평안을 조금씩 갉아먹었다. 시장이 오르는 날은 내 선택과 용기에 축포를 터뜨렸고, 시장이 떨어지는 날은 더 열심히 해서 무조건 시장을 이기는 종목에 투자해 대출이자 내는 것보다는 더 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작년 초부터 주식은 좋았는데, 실제로는 쪼들리고 빠듯했다. 주식 잔고만 부풀려져 있었을 뿐 매달 카드값 내기도 빠듯했다. 영끌한 돈으로 주식 계좌만 부풀려져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내 소비와 인생도 부풀려져 있었다. 잠깐 시간을 뒤로 가기 해서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보려고 한다.


2021년도 말 산타랠리를 끝으로 거의 2022년도 내내 대폭락장이 이어졌다. 영끌해서 주식시장에 가진 돈을 다 넣어놨는데, 자고 일어나면 월급만큼 떨어져 있는 날도 많았다. 주식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초보인데 계속 떨어지니까 도저히 팔 수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영끌한 돈을 비교적 안전한 곳에 투자한다고 미국 배당주들에 상당 금액을 넣어놓은 것이었다. 한국주식, 미국 빅테크와 중소형주가 떨어지는 것을 배당주들이 방어해 주고, 배당까지 꼬박꼬박 주니까 그나마 버틸 수 있었다.


100프로 정도 빚투해서 투자한 자산 가치가 반토막 나면 내 순자산이 0이 되는 것이구나 싶었다. 실제로 전체 포트폴리오에서 -40% 정도까지 손실을 경험했으니, 남의 얘기가 아니었다.


이런 상황이라는 것을 누구한테 말할 수도 없고, 켄 피셔 책을 읽고 금리인상기에는 결국 주식시장이 오른다는 그의 이야기를 믿으면서 꾸역꾸역 버텼다. 긍정주의자, 상승론자 켄 피셔가 은인이었다. 자산이 이렇게 까지 떨어지니, 소비욕구도 별로 없었고 월급 쓰고 남은 돈 있으면 심리지표가 단기 바닥인 구간에서 조금씩 조금씩 주식을 오히려 더 샀다. 극도로 불안하면, 내 마음이 심리지표겠거니 하고 공포에 매수했다.


그때 사귀었던 오래 알고 지냈던 남자친구와 이런 얘기를 서로 주고받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 바꾸고 백 사고 명품 사고, 사고 싶은 것 다 살 걸. ” 우리는 실제로 버는 돈이나 모은 돈에 비해서도 꽤 검소한 편이었는데, 열심히 아껴서 주식에 다 투자했고 이런 대폭락을 경험했다. “그렇게 아껴서 투자한 돈이 이렇게 떨어질 줄 알았으면 벤츠살 걸. ”이 우리가 자주 하던 말이었다.


그래서 23년도 초에 주식이 마법처럼 회복하기 시작하니 나를 위해 돈을 쓰고 싶어졌다. 돌이켜봐도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가 오랜만에 +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6년 넘게 회사 생활하며 조금씩 조금씩 모은 돈이 0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다가 내 자산이 명목 상 원금가치를 회복하니까 마냥 신났다. 실제로는 돈을 번 것이 아니지만, 번 것보다 더 신났다.


안 해서 후회했던 일들을 했다. 명품도 사보고 호캉스도 가봤다. 주식을 절대로 안 빼고, 어떤 주식을 팔아도 다른 주식으로 종목 교체만 할 뿐 자산의 크기를 줄이지는 않는 것이 내 원칙이어서 모든 것들은 카드, 그리고 할부로 했다.


4년 간 주식에 집착하며 살았던 시간과 상승장이 만나니, 트레이딩으로도 돈이 잘 벌렸다. 잘 버니까 펑펑 썼다. ‘난 일 많이 하니까. 회사도 다니고, 투자도 이렇게 열심히 하고, 글도 쓰니까 시간을 아껴야 해. ’ 라며 소비를 합리화했다. 밥은 다 밖에서 사 먹거나 배달시켜 먹기 시작했다.


처음에 1프로 후반에서 2프로 대였던 대출 이자율이 가파른 금리 인상기를 거치자 3~4프로 후반 대로 올라왔다. 24년도 초가 되니 이자부담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회사에서 빌린 돈은 원금도 갚아야 됐었는데, 매월 원금 50만 원에 대출이자 약 40만 원을 합하면 상당한 수준이었다. 월세, 관리비내고 대출원리금 내고 부풀려진 소비습관으로 부풀려진 카드값을 내고 나면 진짜로 남는 돈이 없었다.


월급으로 투자할 수는 없고, 장기투자하고 있는 미국시장이 올라주거나 국내주식 트레이딩을 잘해야 자산을 불릴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퇴사나 휴직이라는 선택의 자유, 주식 생각하지 않고 쉴 수 있는 휴식 시간 등 인생의 주도권을 은행에 진짜로 넘겨줬구나 싶었다.


현재 금리로 대출을 실행하는 것에 비하면 낮은 금리여서 이 정도 이자율는 충분히 상쇄하는 투자처들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그런데, 자유, 다른 말로 하면 내 인생의 주도권, 그리고 휴식의 가격이 빚투로 얻은 자산의 가격(투자수익률-대출이자율)과는 비교할 수 없게 높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일과 주식에 매여 살면서 건강이 안 좋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적당히 일하고 충분히 쉬고 싶어서 공기업을 선택했고, 시간적 여유 있는 삶이 여전히 내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관 중 하나인데, 매일 아침, 밤, 그리고 하루 틈틈이 주식창을 들여다보는 생활, 휴가를 내고 여행을 가도 주식 시황을 파악하고 주식창을 들여다보는 삶에 회의감이 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루틴이 망가지는 게 싫어서 여행도 잘 안갔었다.


1억을 갚기 위해 마지막으로 국내주식 4000만 원 정도를 팔았다. 그 정도 금액을 트레이딩 하는데 쏟는 노력과 시간이 가장 컸다. 미국 주식에 70퍼센트 이상을 투자했지만 그저 계속 보유하거나 떨어지면 더 샀고 쏟는 노력은 별로 없었다. 빚을 갚기 위해 대출이자 금리가 올라 배당률의 매력이 떨어진 미국 배당주를 제일 먼저 팔았고(금리 인하 예상되는 시점에서 유망한 투자처지만 현재 개인 상황에서 판단), 그 다음으로 빅테크 일부를 팔았고, 마지막으로 내 시간과 노력을 가장 많이 잡아먹던 한국 주식들을 팔았다.


회사일만 하는 것에 비해 비교적 빠른 경제적, 시간적 자유를 얻기 위해 여전히 투자와 트레이딩을 할 것이지만, 마음 편하게 장기투자 할 수 있는 투자와, 일정 기간은 아예 쉬어가며 하는 트레이딩을 할 것이다.


빚을 다 갚고, 주식 트레이딩도 잠시 쉬며 뭐할까 생각했다. 요리를 꽤 좋아하는데, 밥을 해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말엔 커피도 배달시키고 음식도 종종 배달시켜 먹으면서 일회용 플라스틱과 종이가 쌓이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안 좋았는데, 재활용품과 쓰레기를 덜 만들겠다는 단순한 목적을 가지고 텀블러를 들고 직접 카페에 가고 시간을 들여 직접 요리를 해서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단순하고 여유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 적당히 벌고, 적당히 자급자족하는 삶으로 돌아가야겠다. 언제 어디로든 떠날 수 있는 자유를 누리기 위해  샴푸나 스킨케어 같은 소모품 외에는 소비도 줄이기로 했다. 물건이 많으면 떠나는 데도 부담이 된다. 언제, 어떤 선택이라도 할 수 있는 자유와 충분한 휴식이 보장되는 삶을 위해 중요한 결정을 하고 투자하고 소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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