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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센스 Jun 10. 2024

ㅇㅇ님, 걱정이 없는데요

사랑할 수 없어서 불안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심리상담사에게 인생에 더 이상 아무 문제와 걱정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ㅇㅇ님, 걱정이 없는데요.” 라고 하셨다.


연애만 하면 불안하거나 상대방의 어떤 점과 안 맞아서 괴로웠다. 거슬리는 점들을 참다가 한 번 말하기 시작하면 관계가 안 좋아지고 더 불안해졌다.


연애를 시작하면 한 달은커녕 이 주도 버티기 힘들어서 어떻게 하면 마음 편하게 긴 연애를 할 수 있을까 하며 상담실을 찾아갔다. 그런데 어쩌면 진짜로 털어놓고 싶은 얘기는 가족 얘기였던 것 같다. 내 연애가 힘든 이유는 성장 환경에 있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나의 어떤 종류의 예민함이나 온전히 내 사람으로 받아들이고 사랑할 사람에 대한 기준을 내려놓을 생각은 없었지만, 연애를 하더라도 마음이 편해지고 싶었다. 전에는 평균 4만큼 불안하다면 평균 1~2만큼만 불안해지고 싶었다. 그래서 덜 반응하고 더 오래 만나고 싶었다.


그에 앞서 바람이 있다면 나를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존재로 소중하고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는 그대로 온전히 받아들이고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그렇게 사랑할 수 있고 사랑받을 수 있다는, 사람에 대한 신뢰는 있었다. 그저 나를 편안하게 드러낼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평소에도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는 자리에서 나를 드러내는 연습을 하고 있었지만 상담실에서 털어놓고 이해받으면 더 편안하게 나의 모든 것을 내가 먼저 수용하고, 또 타인에게 수용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상담을 진행하던 중에 문제가 알아서 풀려버렸다. 그동안 스스로 했던 생각과 노력, 상담실에서 배운 새로운 이론과 대화를 통해 얻은 깨달음, 스스로에 대한 분석, 선생님의 이해와 수용, 그리고 무엇보다 신의 뜻, 즉 운이 더해져 내가 상담을 통해 얻고 싶었던 모든 것을 얻었다.


말과 행동에서 나의 예민함을 조금도 거스르지 않고, 내가 구체적으로 바라던 기준을 모두 충족하고, 조금도 불안하거나 부족하지 않게 나에게 표현해 주고 넘치게 사랑해 주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나를 드러내고 나를 구성하는데 가장 중요하게 영향 끼친 일들을 이야기할 수 있었고, 그도 똑같이 어느새 내게 자신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고 솔직하게 하고 있었다.


성격, 성향, 사고방식, 성장과정에서 했던 생각, 취향과 취미, 식성까지 비슷한 사람을 만나 연애하며 처음으로 불편함을 억지로 참는다거나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얼마만큼 타인을 견뎌야 되는지 현실과 이상과의 괴리에서 불안해지지 않게 되었다.


연애를 하면 불안감이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생을 함께 할 짝을 찾아내서 관계를 쌓아나가려면 불안을 잘 다스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안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나는 불안을 줄이는 방법이나, 타인의 말과 행동이 내게 닿을 때 느껴지는 불편함을 견디는데서 오는 불안감을 줄이기 위해 불편함을 어느 정도는 무시해 내는 연습을 하려고 했다.


어떤 여자는 길게는 수년간, 짧게는 1년을 넘게 견뎠던 남자를 견디지 못하는 나를 알게 모르게 비교하고 탓했다.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고, 성숙하고 진지하게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면서도 연애에 있어서는 한편으로는 내가 너무 인내심이 없고 예민해서 타인을 눈치 보게 하고 힘들게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심리상담을 받기 시작하고, 우연찮게 그 와중에 나를 조금도 거슬리게 하지 않고 옆에 있거나 말소리를 들으면 오히려 편안하고 나른해지고 나와 비슷하게 사고해서 미래를 생각했을 때도 조금의 답답함도 느껴지지 않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서 내가 기존에 생각했던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이 완전히 박살 났고 연애할 때 느끼는 불안함에 대해 새로운 틀로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나인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고, 내가 가지고 태어난 성향이나 성장 과정에서 얻은 성향과 잘 맞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나서 시간이 지나도 소중함을 잊지 않고 예의 있게 사랑을 지속하면 되는 것이었다. 이것이 어쩌면 이번에 만나게 된 선생님이 나의 연애 상담을 진행하는 방향이기도 했다.


선생님을 일주일에 한 번씩 여섯 번 만났는데 2~3주 차에 이미 남자친구를 만나고 사귀게 되었다. 그런데, 가계도를 그리면서 했던 가족 얘기에 집중하고 싶어서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얘기는 굳이 안 했다. 그러다가 선생님이 뭔가 달라 보인다며 새로운 일이 있냐고 물어봐서 소식을 전했다.


그 사람이 왜 좋냐는 질문에 배려심 많고 감정 표현 잘하고 약한 모습도 보일 줄 알아서 좋다고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도 잘해주고 생각하는 것도 열려 있어서 대화도 잘 통하고 그냥 잘 맞다고 했다. 그리고 나의 상황이나 조건적인 면 이런 것 저런 것에 아무것도 신경 안쓸 것 같다고 했다. 그 사람에 대해 경제적인 것이나 이런 것에 대해 아직 구체적으로 잘 모르는데, 직업이 있어서 스스로 자기가 쓸 돈 벌면 그걸로 됐고 사람만 봐서 구체적인 조건 같은 것은 아무 상관없다고 했다.


선생님이 비슷하게 생각하는 사람끼리 잘 만난 것 같다고 하셨다. 현재 독립해서 온전히 스스로를 책임지며 살고 있고, 좋은 사람 만났으니까 원가족과는 지금처럼 적당히 분리되어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잘 유지하면 되겠다고 했다.


이 사람은 내가 기존에 사귀었던 사람들과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외모도 성격도 말투도 훨씬 부드러운 느낌이었다. 이성적으로 끌릴까 싶었는데, 감정이 아니라 이성으로 연애를 시작하는 편이라서 처음 카페에서 두어 시간 대화해 보고 나서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이 사람은 꼭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서로에 대해 더 깊이 알아가면서 이 사람을 온전히 수용하고 완전히 사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편하지 않으니까 불편함을 참지 않아도 되고, 내가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되거나 평소에 내가 이성을 만나며 좋아했던 부분과 다른 면이 보이더라도 이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기니 하나도 불안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사랑할 사람에게 진짜로 찾았던 것이 무엇인지, 바꿔 말하면 어떤 사람을 생각과 감정과 행동이 일치하게 사랑할 수 있는지 확고해졌다. 그 이전에 나 스스로가 사랑을 통해 얻고 싶은 것이 사랑 그 자체밖에 없게 된 것도 한몫했다.


나와 생각이 잘 맞고 예민함과 섬세함의 정도, 삶의 템포가 비슷한 사람을 만나 서로 사랑하고 안정감을 주면서 혼자 있을 때만큼이나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 내가 찾았던 이상적인 관계였다.


어제 남자친구와 최근에 읽었던 좋은 책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런 대화를 나눴다. 데이비드 브룩스의 <<사람을 안다는 것(How to know a person>>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이 책의 요지는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고 깊은 관계를 맺으려면, 어떤 사람을 어떤 기능을 하는 존재로 바라보지 않고 감정과 역사를 가진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소중한 존재로 바라보고 그 사람의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편안하게 해 주고 이야기를 잘 들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직장에서나 연인관계처럼 개인적인 관계에서나 타인을 인간적으로 대하지 않고 도구처럼 대해서 갈등이 생기고 문제가 생기는 것 같다고 했다. 남자친구는 연애할 때 사람을 온전히 수용하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이 어렵냐고 했다.  우리는 그게 되는데, 결혼정보회사 이용하는 일부 사람들이나 나는 솔로에 나와서 이야기하는 몇몇 사람을 보면 조건을 이야기하지 않냐고, 그러면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다른 목적에 부합하는 조건을 찾는 것이 아니냐고 했다.


그렇게까지 잰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내가 원하는 관계나 사람에 앞서 조건적인 면도 함께 찾았던 나 역시 연애를 하며 늘 불안했다. ‘이 정도면 찾기 힘든 괜찮은 사람이지’라고 생각하며 지속했던 연애 속에서는 충분히 사랑하지 못해서 불안했고, 감각적으로 불편했던 사람과의 연에 속에서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성격과 성향이 안 맞는데 감내해야 한다는 감정과 이성과의 괴리에서 불안했다.


좋은 관계를 맺고,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를 이해하는 것이 우선임을, 그리고 타인에게 온전히 이해받는 경험은 나 자신을 온전히 수용하고 편안해지는데 밑거름이 된다는 것을 상담과 직접 경험을 통해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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