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12일 / MBCC, 코펜하겐, 덴마크
전반적으로, 좋은 여행이었던 것 같은데 디테일이 기억나지 않는다.
꿈같던 여행에서도 깨어나고, 만취에서도 깨어나야만 하는 날이 밝았다. 코펜하겐은 내가 머물렀던 5일동안 겨울에서 봄으로 경로를 변경하기로 마음먹은 것처럼 매일 조도를 높이더니, 떠나는 날 가장 아름다운 날씨를 선사했다. 그와는 반대로, 내 컨디션은 난기류를 경험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지 않은 게 이상하니까) 나는 오후 3시쯤 서울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야 했고, 아침부터 마치 작은 인간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쿵쿵대며 뛰어다니는 것 같은 머리와 위장을 달래가며 해야 할 일이 많았다. 당연한 일이지만 전날 밤에는 짐을 쌀 정신이 요만큼도 남아있지 않았으므로 커다란 수화물 캐리어 하나 분량이 더 늘어난 짐들을 여기저기에서 모아 욱여넣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캐리어 하나를 써야 할 만큼 로얄 코펜하겐에서 그릇을 산 건 아니었고, 나는 맥주를 많이 샀다.
한국을 떠나기 전, 나는 코펜하겐의 여러 이벤트에서 맥주를 많이 살 것을 감안하여 작은사이즈의 기내용 캐리어 외에 텅텅 빈 수화물 캐리어 하나를 더 챙겼다. (작은 캐리어에 다 담길 정도로 적은 옷을 가지고 간 여행은 또 처음이었다. 코트도 챙겼는데!) 그러나 캐리어에 다 담을 수 없을만큼 많은 맥주를 사는 것은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소중한 맥주가 비행기를 타면서 깨지거나 새는 재앙이 일어나지 않도록 와인을 포장하는 에어셀로 꼼꼼히 포장한 후 캐리어에 빈틈없이 차곡차곡 가득 채웠는데, 아직 담지못한 맥주가 10개는 더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다. 나는 참담한 심정으로 빨리 마셔야 하는 맥주와(보통 홉의 특성이 강한 IPA같은 맥주는 신선할 때 마시는 것이 좋다) 빨리 마시고 싶은 맥주(신 맥주)를 추려 무게에 맞추어 캐리어를 채웠고 선발 캐리어에 타지 못한 맥주들은 9월에 한국에 오기로 한 친구에게 부탁하기로 했다. (미안해 내 맥주들아, 너희들이 덜 소중해서 그런 건 아니고)
합치면 30킬로그램이 훌쩍 넘는 두 개의 캐리어 때문에라도 빠르게 공항으로 가고 싶었으나 친구와 그날 정오에 열리는 맥주판매 이벤트에 참석하고 나서 공항에 가기로 했기 때문에, 나는 오전 11시경 인생의 무게가 느껴지는 캐리어와 내 몸을 끌고 이벤트 장소로 향했다.
'람빅의 미래'라고 불린다는 람빅 브루어리가 있다. 누가 그렇게 불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소문으로 들었다. 훌륭한 람빅 브루어리들이 태어나고 살아가며 늙어가는 벨기에에 위치한 아주아주 작은 브루어리로 원래는 Bokkereyder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는데, 유명세를 얻으면서 다른 브루어리와 이름에 대한 권리 이슈가 불거졌다고 했고, 그런 연유로 현재 공식적인 그들의 이름은 Methode Goat이다. 그러나 처음 그들이 세상에 나왔을 때의 충격을 잊지 못하는지 여전히 많은 맥주 팬들은 그들을 Bokke라고 부른다. 장미가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고 해도 여전히 그 향기는 같듯이, 이름과는 상관없이 그들은 여전히 과일을 아름답게 사용할 줄 알며, 시간이 그들 맥주에 고루 스며드는 행운을 누리고 있다. 내가 떠나오는 날 정오에는 그 Methode Goat가 맥주를 판매하는 이벤트가 있었고, 전투적인 짐싸기로 오전 시간을 다 보내야만 했던 탓에 나는 그들의 맥주를 살 수 있을거라는 기대조차도 하지 않았다. 그들의 명성과 규모는 비례하지 않아, 그들은 아직 그 아주아주 작은 브루어리 규모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생산량이 극도로 적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레어템) 나와 친구는 일찌감치 마음을 비우고 공항가는 시간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 만큼만 줄을 서보기로 했고, 줄 안에서 익숙한 친구들과 작별인사를 나누면서 시간을 보냈다. 줄은 대략 1시간만에 끝이 났고(벌써?), 우리는 생각지도 못한 맥주를 2병씩 손에 들고 그곳을 나섰다. (한명당 한번에 구매할 수 있는 맥주의 양이 2병이었다) 친구 말로는 일찍 공지가 되었던 이벤트가 아닌데다가 축제가 끝난 이후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덜 몰린 것 같다고 했다.
맥주를 사긴 했지만 캐리어는 만석이었기에, 그 맥주들도 친구에게 부탁했고(9월에 보자), 친구는 며칠간의 피로가 채 씻기지 않은 얼굴로(왜 아니겠어) 나를 위해 택시를 불러 주었다. 나는 키가 큰 친구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사실 고맙다는 인사로는 한참 부족한 것 같은 기분을 지울 수 없었지만, 그래도 나는 고맙다고 말했다. 공항으로 가는 택시가 도착했고 나는 여행 첫날 공항으로 마중나온 친구를 만났을 때와 같이, 웃으며 그를 포옹했다. 아주 많은 이야기들과 인사를 담은 포옹이었다.
돌아갈 때의 경유지는 파리였다. 도시와 어울리지 않게 밋밋한 파리의 공항에서 여전히 밍기적거리며 내 속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숙취를 느끼면서, 나는 한국의 시간을 확인한 후 페이스타임을 켰다. 닷새동안 보지 못한 그리운 얼굴이 핸드폰 화면을 가득 채웠고, 나는 그의 눈과 코, 입술을 찬찬히 구경하면서 내가 그를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이야기했다. 화면 너머로 달라지지 않은 그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면서 나는 안심했고, 캐리어 한가득 채운 술을 함께 나눠마실 생각에 여행이 끝난 것도 아쉽지 않았다. 돌아갈 곳이 있었고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으므로 긴 비행도 제법 견딜 만했다.
맛있는 걸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라는 사실은 몇 번이나 말해도 모자람이 없다. 그 맛있는 게 술이라면 더할나위 없고. 공항 리무진에서 내려 술독을 끌고 공덕역 근처를 걸으면서 나는 그 많은 맥주들을 누구와 함께 마실지에 대하여 생각했다. Sharing is Caring.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좋은 술을 나눠 마시면서 말한다. (물론 다른 곳에도 많이 쓰이는 표현이지만) 너그럽게 베푸는 술은 언젠가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고, 나는 나에게 술을 건네었던 사람들의 잔을 내것으로 채운다. 마포의 높다란 빌딩들 사이에서 나는 수많은 얼굴들을 떠올리며 여행의 잔상을 느꼈다. 그때부터 나눌 술이 많았고, 캐리어는 더이상 무겁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