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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만세 Sep 11. 2019

노는 기록 - 12일

2019년 5월 11일 / MBCC, 코펜하겐, 덴마크




약한 체력은 강한 정신력과 의지로 보완된다. 술 마실 때의 이야기이다.



나는 체력이 굉장히 약한 편이다. 체력을 키우는 모든 종류의 일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자랑은 아니다) 먹는 것에 큰 관심이 없어 불규칙한 식사 혹은 누가 봐도 몸에 절대 좋을 일 없는 식사를 주로 하는 데다, 입도 짧아서 체중이 많이 나가지 않고, 운동이라고는 가끔 편의점에 걸어 나가는 게 전부라서(그걸 운동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다면) 쉽게 지치고 피곤해하는 편이다. (쓰고 보니 좀 한심한 것 같지만 별 수 없다) 아무튼 그러한 이유로 코펜하겐 여행에서 가장 걱정했던 것이 내 체력이었다. 체력이 달려 마시고 싶은 맥주를 다 마실 수 없는 건 정말이지 너무 억울하니까. 도착 즉시 여러 이벤트를 오가며 맥주를 퍼먹고, 둘째 날 블루베리 라인에서 맥주를 퍼먹고, 셋째 날 축제에서 또 맥주를 열정으로 퍼먹은 후 넷째 날의 일정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축제 두 번째 날의 아침, 생각보다 상쾌하게 눈을 떴다. 어쩐지 수명을 깎아 먹거나 마이너스 통장에서 돈을 끌어다 쓰는 듯한 불안감에 휩싸였지만, 끝까지 축제를 즐기면서 맥주를 퍼먹을 수 있겠다는 사실에 나는 퍽 감격했다.


게다가 코펜하겐에 도착한 후 처음으로, 햇살이 거침없이 피부 곳곳을 파고드는 아름다운 날씨 덕에 아침식사를 하는 내내 기분 좋게 창밖을 바라볼 수 있었다. 축제의 마지막 날이었다.


친구와 나는 전날보다 여유롭게 행사장에 도착해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함께 다니면서 맥주를 마시기로 했다. 그날은 3일 내내 어디를 가든 마주쳐 함께 맥주를 마셨던 코펜하겐의 Beer geek 친구들 외에 새로운 멤버가 한 명 더 있었는데, 그는 바로 스웨덴 친구 스테판의 아버지였다. (아버지?) 처음 친구들이 '이 분은 스테판의 아버지야.'라고 소개했을 때 나는 조금 당황했다. 온몸이 타투로 뒤덮인 젊은 친구들이 잔뜩 몰려들어 정신없이 술을 마시고, 거의 인간계와는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자연 발효계에 가까운) 슈퍼 덕후들이 끝도 없는 100분 토론에 빠져 있으며, 인스타그램과 언탭드(맥주를 기반으로 한 SNS 서비스)등의 소셜 네트워크가 난무하는 곳에 '아버지'라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나는 편협한 인간이다) 나는 마치 친구들과의 쇼핑이나 클럽 파티에서 친구의 아버지를 만난 것 같은 어색함에 휩싸였다. 게다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친구의 아버지와 나누었던 대화는 '안녕하세요?'와 부모님은 잘 계시냐는 질문에 '네, 잘 계시죠 뭐.'라고 대답했던 게 전부였기 때문에 맥주를 마시기 위해 함께 줄을 서거나 테이블에 앉아 잠시 쉴 때 도무지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를 모르겠어서 난감했다.


그러나, 나의 '아버지'에 대한 고정관념과 세대 차이의 벽에 대한 두려움과는 별개로 스테판의 아버지는 너무나도 좋은 분이었다. 그는 엄청난 맥주 팬은 아니었지만, 아들과 친구들이 가는 곳마다 흥미를 보였고 수많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긴 시간 줄을 서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맥주를 나누어 마시면서 여러 의견을 나누는 우리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많은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모든 새로운 맥주에 호기심을 내비치면서 그의 아들이나 혹은 아들의 친구들에게 질문을 했다. 나는 문득 내 곁에 있던 오랜 친구에 대하여 생각했다. 나와 오랜 시간 동안 알고 지냈고, 꽤나 많은 맥주들을 나누어 마셨으며 코펜하겐 여행 내내 붙어 다녔던 내 친구의 나이를 나는 몰랐다. 나보다는 꽤 나이가 많으리라고 짐작했지만 나는 단 한 번도 그에게 나이를 물었던 적이 없었다. 물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비단 친구뿐만이 아니었다. 인생의 어떤 시점을 넘기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야 했던 일을 하면서부터 나는 사람들의 나이를 묻지 않게 되었다. 백발의 독일인 할아버지와 맥주에 대한 농담을 나눌 때도 있었고, 단골손님의 십 대인 딸과 인생 이야기를 할 때도 있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정확히 몇 살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으나 즐거움을 나누거나 공감을 하는 데 있어서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돌이켜보면 학교라는 곳에서 벗어난 후로부터는 친구가 되는데 나이가 한 번도 중요한 적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버지'라는 이름과 내가 가늠할 수 없는 '나이'라는 숫자를 먼저 보면서 스테판의 아버지를 혼자 어색해했던 것이다. 나는 다시 스테판의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신나는 맥주 축제의 한 복판에서, 그는 그저 내 친구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아주 조금 더 사려 깊고, 아주 많이 더 여유로운.


나는 말이 많아졌다. 새로운 맥주를 받아올 때마다 아버지에게 의견을 물었고, 줄을 서면서 스웨덴의 음식이나 술은 어떤지 취미로 뭘 하시는지 등 온갖 것들에 대한 질문을 했다. 그는 천천히 생각하고 웃으며 대답했고, 오전 세션이 끝날 무렵에는 '스테판, 아빠 어디 계셔?'를 이백 번쯤 외치면서 아버지를 찾거나 그의 손을 잡고 붐비는 곳들을 빠져나오거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오전 세션이 끝나고 근처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은 후, 마지막 세션이 시작되자 나는 내가 강한 정신력으로 체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갑자기) 나는 4일째 쉬지 않고 술을 마시고 있었고, 그동안 단 한 번도 술에서 깨지 못했으며 단순히 지속적인 취기와 축제의 열기로 하이 텐션을 유지하고 있는 중이었다. (맙소사) 갑작스러운 깨달음을 얻은 이유는 다름 아닌, 극대화된 사교성 때문이었다. (나는 거의 모든 사람들과 말하기 시작했다) 각 브루어리 부스의 사람들을 벌써 이틀째 만나기도 했고, 이제 축제가 끝나면 언제 만날지 알 수도 없었기에 나는 맥주를 받으면서 끊임없이 인사를 했고 그들 역시 즐거워하며 나에게 이것저것 퍼주기 시작했다. (다정한 사람들이었다) 스타벅스에 가면 커피뿐만 아니라 다양한 (구매 욕구를 몹시 자극하는) MD상품이 있는 것처럼, 브루어리들도 각자의 개성을 담고 있는 MD상품들을 제작하고 판매한다. 브루어리 로고나 대표 맥주 라벨이 프린팅 된 티셔츠나 스웻셔츠, 배지, 스티커부터 텀블러, 그라울러, 모자, 강아지용 옷 등 그 종류도 꽤 다양한 편인데,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특정 브루어리 팬들에게는 무척 욕심나는 상품들이다. (나는 보통 브루어리를 방문하면 티셔츠나 후디 등을 구매하고는 한다) MBCC에서는 호스트인 Mikkeller의 자체 MD상품들은 많이 판매하지만 참가 브루어리들의 상품은 판매하지 않는데, 가끔씩 브루어리 관계자들이 선물용으로 몇 가지 MD상품들을 챙겨 오기도 한다. 과한 사교성으로 무장한 취객(나)은 마지막 세션이라는 기가 막힌 타이밍을 만나 운 좋게 다양한 선물을 받기 시작했는데, 두 시간쯤 지나자 모자와 티셔츠, 귀여운 핀과 커다란 스티커들이 가방에 자리를 차지했다. (야호) 한 브루어리의 발랄한 스탭은 ‘티셔츠 가져온 게 없는데 내 거라도 벗어줄까?’라고 농담했고, 나는 이틀 동안 맛있는 맥주를 마실 수 있게 해 주어 고맙다고 인사했다.


물론 디자인 예쁘기로 소문난 Mikkeller의 자체 브랜딩 MD상품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탓에 내 티셔츠와 한국에 남겨두고 온 내 연인의 티셔츠, 에코백 등을 잔뜩 사기도 했다. (제정신이 아닌 덴마크 물가가 생각나지 않는 순간이었다)


행사 종료 시간이 다가오면서, 모두의 맥주 마시는 속도가 빨라졌고 웃음소리는 높아졌다. 나는 의자에 앉아 내 맥주를 홀짝이며 한동안 친구들과 낯선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술과 사람이 그렇게나 많은 축제였는데도 모두가 여전히 즐거워 보였고, 행사장은 혼란스러운 듯 보였지만 끝까지 정돈되어 있었다. (물론 가끔씩 슈퍼 한정 맥주가 오픈될 때의 줄은 그야말로 난리였지만) 적어도 나와 내 주변에, 나쁜 일은 없었고 나쁜 사람도 없었다. 꽃이 만개하는 계절처럼, 아름다운 것들은 빠르게 지나간다. 나의 코펜하겐 여행도 진하게 아름다웠기에, 그만큼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행사 종료 후 일행들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난 후, 나와 친구는 마지막으로 Mikkeller의 람빅 전문 바, Koelschip에 들렀다. 우리는 프랑부아즈가 들어간 람빅을 나누어 마시면서 지난 4일을 복기했다. 낮은 조도가 만취한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워 주었고, 밤은 이제 시작된 참이기에 나는 편안함 속에서 천천히 맥주에서 향기의 조각들을 골라내었다. 붉은 열매의 달큰함과 부드러운 바닐라, 시간을 빠져나온 발효의 냄새와 흙에 가까운 나무, 나는 언젠가 또다시 이 조각을 만나면 이 시간을 떠올리게 되리라. 얼굴들과 목소리, 포옹과 악수들, 혀끝에 닿았던 모든 맥주의 맛들이 그 기억에 따라올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좋은 사람들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자 축복이다. 이틀간의 축제 동안, 처음부터 끝까지, 매분 매초, 고맙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 내 오랜 친구는 내가 축제에 머무는 동안 즐거운 경험만을 할 수 있도록 신경 써 주었고, 며칠 전까지만 해도 생판 모르는 남이었던 사람들은 내 이름을 기억하고 따뜻하게 안아 주면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를 물었다. 내 일행들은 내가 사람들 사이를 뛰어다니다가 넘어지지 않을지 걱정해 주었고, 나보다 훨씬 커다란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 부서질까 봐 곁을 든든하게 지켜 주었다. 그날 내가 가장 좋아했던 스테판의 아버지는 ‘내가 봐왔던 여자애들 중에 네가 제일 멋있어.’라고 말해 주었고, 나는 ‘아들이랑 맥주 축제에 온 아저씨는 내가 봐왔던 친구 아빠들 중에 제일 멋있어요.’라고 대답했다. 손에 꼽을 만큼밖에 없었지만, 하나같이 반가웠던 한국 사람들과, 코펜하겐 Mikkeller에서 인턴쉽 중이었던 나의 동료까지. 그 짧은 시간과 그 작디작은 공간에 그토록 소중한 사람들이 많았다는 사실이 꿈처럼 느껴졌다. 


맥주가 중심이었던, 주인공이었던 여행이었지만 결국에는 사람들이 맥주를 압도했다. 항상 그래 왔듯이. 축제의 끝에서 나는 코피를 흘렸지만(장렬하게도), 고마웠던 사람들과 작별의 포옹을 나누었고 그 온기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오랫동안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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