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만을 줄게
엄마에게는 골치 아픈 세 명의 자녀가 있는데, 나와 두 살 아래의 남동생, 나보다 10년 늦게 태어난(예기치 못한 사고였다고 했다) 늦둥이 남동생이 그들이다. 엄마로서는 그 셋을 집에서 전부 내보내는데 약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셈인데, 그들을 다 처리하기 무섭게 스트리트 출신의 냉담한 고양이 한 마리와 동네에서 제일 큰 개 한 마리, 그 큰 개의 커다란 딸 두 마리까지 집에 들어앉게 되는 것은 예상하지 못한 것 같다.
엄마는 새롭게 열린 육아의 장에서 고군분투하며 동물농장과 유튜브의 애청자가 되었는데, 사람인 자녀들을 키울 때와 마찬가지로 제법 확고한 육아방식을 확립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상한 고집이 생겼다는 뜻)
오랜만에 동생들과 부모님 집에 방문했던 날, 다 함께 큰 개 세 마리를 데리고 산책을 시키는데, 개들은 집을 나선 순간부터 미친듯이 정신 사납게 뛰어다니기 시작했고, 그 어떤 커뮤니케이션도 작동하지 않아 그야말로 지옥의 산책길이 따로 없었다.
개들이 배운 게 없어 큰일이라고 말하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안 가르쳐야 오래 산대.”
라며 엄마는 태평한 소리를 했고, 그렇게 키우니까 애들이 이지경이 됐다고 대답하자,
“너희 셋도 그렇게 키웠는데 무슨 소리야.”
라며 엄마는 해맑게 받아쳤다.
생각해보면 그녀가 우리에게 뭔가를 바랐던 적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우리가 더 어리고 그녀가 더 젊었던 때, 그녀도 우리에게 어떤 욕심을 투영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엄마로부터 무엇인가를 강요당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경력을 쌓아가면서, 우리 각자의 행복 이외의 것들은 아무것도 욕심내지 않았다. 그러니까, 새로 생긴 딸들도 별 걱정 없이 행복하고 건강하게 뛰어다니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간식이나 잘 먹으면서.
우리는 엄마에게 잔소리하는 것을 멈췄고, 개들이 뛰고 싶은 대로 함께 뛰었다. 엄마의 육아방식이 조금 헐겁기는 해도, 틀린 적은 없다는 생각을 믿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