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남자가 좋아?
이십 대 중반의 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잠시 부모님과 함께 지내던 때였으니까. 언제나처럼 평범한 저녁식사 시간이었는데, 아빠가 자궁경부암 예방접종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요약하자면 남자를 만나기 전(그러니까 관계라는 게 있기 전)에 맞으면 좋다고 하는데 지금 맞는 게 어떻겠냐는 이야기였다. 나는 잠시 젓가락질을 멈추었으나 곧바로 다시 밥을 먹으며 대충 알겠노라고 답했다. 이십 대 중반의 일이었으니, 사실 이미 세 명쯤의 남자 친구가 내 인생을 스친 이후였다.
아빠는 몰랐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아빠를 모르게 했다. 물론 세상의 모든 딸들이 그러하겠지만 그에게 있어 나라는 존재는 그토록 원했지만 조금 늦게 얻은 귀한 아이였고, 평생을 품에 안고 있고 싶은 세상에서 제일 예쁜 딸이었으며, 그를 누구보다 걱정했던 사랑이었으니. 해서 나는 아빠가 나를 언제나 부서질 듯 바라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은, 오히려 내쪽에서 아빠를 부서질 듯 바라보았다. 왜 그랬는지 정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내가 남자 친구를 만난다는 사실만으로 그의 마음을 찢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엄마와 내가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바였기에 아빠는 그때까지도 알지 못했다. 당연히 살면서 단 한 번도 남자나 연애 이야기는 아빠와 해 본 적도 없었다.
눈 깜짝할 새에 끝나버린 서른 초반의 결혼 이후, 부모님 집에서 시간을 보냈던 주말의 일이었다. 느긋하게 저녁식사를 하며 아빠와 술 한잔씩을 나누는데, 그가 물었다.
"딸은 그래서 어떤 남자가 좋아?"
살아오면서 수도 없이 들었던, 혹은 스스로 자문했던 것이었으나 아빠로부터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질문이었기에 나는 그 짧은 의문문의 맥락과 의미를 파악하는 데 약간의 시간을 들였다. 심지어 그는 내가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조차도 왜 그 사람을 선택했는지 묻지 않았으니까.
내 이혼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많은 것들을 부수어 놓았으나, 그 폐허를 견디는 동안 아빠와 나는 관계에 느긋함과 유연함을 부여했다. 이전에는 '별 것'이었던 것들이 자연스럽게 '별 것도 아닌 것'이 되었고, 나는 더 이상 내 귀여운 연애사 정도로는 아빠가 부서지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자 일 정도로 내가 부서지지 않는다는 것도, 아빠는 알게 되었을 테고.
나는 대답했다.
"나는 이제 재미는 좀 없어도 되고, 자극적이지 않아도 되는데 자상하고 다정한 사람이 좋아. 성실하고 투명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고."
아빠는 그래,라고 답하며 내 술잔을 채웠다. 그런 연애가 좋겠다. 아빠와 술잔을 나누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아빠는 그래,라고 대답하면서 웃을 수 있는.
이제는 그런 연애가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