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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기산 Apr 01. 2020

일본 극우의 머릿속으로 떠나는 인셉션 여행

신간 리뷰 <왜 일본은 한국을 정복하고 싶어 하는가>

 영화 <인셉션>에서 코브 일행은 어떤 의뢰를 받습니다. 바로 피셔라는 인물의 머릿속에 '생각을 심는' 작업이죠. 한 인간의 머릿속에 심어진 생각은 싹을 틔우고 자라, 세상을 바라보는 세계관을 형성하고 행위하는 방식까지 영향을 줍니다. 심어진 생각은 실로 엄청난 위력을 가지고 있죠.


인셉션 스틸컷 

 얘네들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 거지?


 작년, 정점에 이른 일본 극우 세력의 혐한 노선을 보며 문득,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습니다. 아베 내각이 대표하는 일본 극우파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왜 그들은 임진왜란의 16세기도 아닌 21세기에, 여전히 한국을 정복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군대 창설을 금지한 평화헌법 개정과 같은 실제 행동까지 서슴지 않을까요.

 

 '정한론'은 19세기 일본의 사상가들이 만든 조선 정복을 위한 이론입니다. 그리고 그 이론은 일본 우파의 심어진 생각, 즉 그들의 사상적 기반이 되어 우리를 하여금 기가 차게 만드는 행위로 이어지고 있죠. 인셉션에서 코브가 피셔의 머릿속에 심어놓은 생각처럼요. 


 그렇다면 왜 19세기 일본 사상가들은 정한론이 필요했을까요? 그 시작에는 요시다 쇼인이라는 인물과 페리 함대의 방문이라는 사건이 있습니다. 


1853년 우라가항의 페리 함대 

 

 1853년, 일본 앞바다에 미국 페리 제독의 함대 4척이 나타납니다. 사실, 상상해보면 당시 그들에게 충격적인 일 이었을 거예요. 엄청난 위용의 함대가 앞바다에 찾아와서 통상을 요구하고 있는데, 사실 말이 통상이지 엇나가면 순식간에 쑥대밭을 만들어 놓을 수 있는 화력의 전투함이었으니까요. 일본 민중들이 해변에 나와서 호기심 반 무서움 반으로 이들을 지켜보는 가운데, 정부는 매일 같이 대책을 모색했습니다. 하지만 막강한 서양세력 앞에 뾰족한 수가 나올 리 없었습니다.


 요시다 쇼인은 바로 이 시기에 활동했던 사상가로, '존왕양이'를 해결책으로 내세웁니다. 즉 천황을 내세우고 외세를 배척함으로써 상황을 타개해보겠다는 건데, 막부를 해체하고 천황 중심 중앙집권제로 가는 메이지유신을 추진한 인물입니다. 막부 해체 과정에서 실업자가 되어버린 무사들의 불만을 잠재우고, 대륙으로 세력을 확장하기 위한 정한론을 주장합니다. 실재하지 않는 삼한 정복설 등을 근거로, 천황이 예로부터 조선을 신하의 나라로 다스려왔다고 주장하죠.


 결국 조선통신사로 대표되는 평화를 지향하는 조-일 관계는, 막부 세력이 내전에 지면서 막을 내립니다. 그리고 천황을 중심으로 한 신정부가 들어섭니다. 그렇게 정한론은 일본 제국주의 시대를 거쳐 전쟁 이후는 물론 현재 일본 우파의 사상적 기반이 됩니다.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지요?


 2019년 점입가경으로 치닫는 극우세력의 행동을 보면서, "쟤네 왜 저러지?"라는 궁금증이 들었던 분이라면, 이 책을 추천합니다. 이미 제목에 명확히 주제가 담겨있네요.


<왜 일본은 한국을 정복하고 싶어 하는가, 메디치>

 일본학 교수이자 역사 문제연구소 연구위원, 동북아 역사재단 자문위원 등을 역임한 저자는, 정확한 사료와 해석을 근거로 일본 극우세력의 사상적 기반이 된 정한론을 분석합니다. 정한론이 탄생하게 된 시기의 일본 정세와 국가정책으로 다듬어지는 과정, 청-일 전쟁을 통한 정한론의 완성 과정 등을 자세하게 다룬 책입니다.


 메이지유신 신정부의 부패와 정한론을 비판하며 자결한 요코야마 야스타케라는 인물이나, 3.1 운동 탄압을 비판하고 평화와 전쟁 종식을 주장했던 55대 총리, 이시바시 단잔과 같은 인물이 일본 역사에도 존재했었다는 사실은, 우리 같은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어떠한 행동에는 원인이 되는 내적 층위가 존재합니다. 때문에 적절한 대응책이 나오려면, 그 행동을 유발시키는 본질에 다가가는 것이 중요한 일입니다. 현재 일본 극우세력의 움직임은 우리가 당면한 문제이고, 정한론은 그 문제의 기반이 되고 있죠. 여전히 한국 정복을 외치고 있는 그들의 머릿속에 심어져 있는 생각은, 어떻게 심어지고 자라 뿌리를 깊게 내리게 됐을까요. 그들에게 심어진 생각을 읽기 위한 인셉션 같은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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