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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기산 May 09. 2020

'자연인'이 부러운 진짜 이유

신간리뷰 <24시간 시대의 탄생>

 우리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배우는 건 뭘까요? 친구와 안 싸우고 지내는 법이나 선생님 말을 잘 듣는 것, 그리고 한글이나 산수를 배웁니다. 하지만 가장 빨리 체득하는 것은 바로 시간이란 개념입니다. 


 시간에 맞추어 등교하고 약속한 시간에 자리에 앉는 것, 수업시간엔 움직이지 않고 쉬는 시간에는 쉬는 것을 배웁니다. 다시 말해 정해진 시간에 맞추어 행동을 통제받는다는 개념을 익히게 되는 것이죠. 우리가 초등학교에서 가장 먼저 학습하는 개념인데, 이전까지의 미취학 아동 인생에서 이 개념은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개념은 초중고등학교를 거치며 계속해서 몸에 체득합니다. 이후 우리가 사회 구성원으로 생활할 때 필요한 핵심적인 룰이기 때문이고, 그래야 사회 역시 유지될 수 있습니다. (feat. 모든 걸 잃은 표정으로도, 월요일에 꾸역꾸역 지하철을 타고 제시간에 출근하는 우리들)


 때문에 국가에게 국민이 이 개념을 체득한다는 건 국가 유지에 매우 중요한 과제입니다. 고대와 중세의 국가들도 이런 개념은 중요했습니다. 중세 유럽 영화를 보면 마을 중심에 있는 교회에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있었죠.


 근대 국민국가 체제로 넘어오면서 시간을 통해 국민을 통제하는 방법은 더 세련되어집니다. 지금은 24시간 케이블 방송이 익숙하지만, 70~80년대의 공중파 방송 편성은 국가의 중요한 시간 통제 수단이었습니다. 아침방송의 시작과 야간 방송 종료 시간은 국민들의 일상에 큰 영향을 미치는 기제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88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해제된 야간 통행금지 정책은, 국가가 국민들의 생활을 직접적으로 통제한 사례입니다. 결국 개막에 앞서 세계화에 발맞추어 자율적으로 통제하는 시민의식을 국민들에게 강조하며 폐지하게 됩니다. 이 역시 국가가 제도의 폐지를 통해 국민들에게 특정한 역할을 요구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사례는 많습니다. 오후 6시면 모두가 일시정지 후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국기하강식', 잠시 도입되었다 폐지된 '서머타임제', 그리고 민족의 명절인 설과 추석을 법정공휴일로 지정하는 문제까지. 근현대를 거치면서 국가가 제도와 개념들을 통해 국민들의 시간을 어떻게 규정하고 통제해 왔는지, <24시간 시대의 탄생>이란 책에서 그 사례를 다양한 자료들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24시간 시대의 탄생, 창비>


 매일 정해진 시간에 회사 책상에 앉아 있어야 하는 저를 포함해, 현대인 대부분은 각자의 환경이 필요로 하는 시간이란 규율에 맞춰 살아갑니다. 서두에서 이야기 한대로, 이것은 우리가 의무교육제도를 통해 체득하는 개념이고 그래서 당연하게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독자는 이 제도가 확립되기까지 많은 투쟁과 갈등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어느 것도 당연한 것은 없죠.


 TV 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을 보고 있으면 자연인이 부러울 때가 있죠. 맑은 공기의 자연 속 걱정 없는 삶이나 천연재료로 만든 밥상이 부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것은 시간의 제약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살아간다는데 있습니다. 신선처럼 살아가는 그들을 보다가, 시간이 다 되면 우리는 TV를 끄고 5분 간격으로 알람시계를 맞춰놓고 침대로 돌아갑니다.


 많은 사람들이 시간의 부족함을 호소합니다.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지구의 하루 24시간은 동일한데, 왜 현대인들은 유독 시간의 압박을 느낄까요? 저자는 1980년대를 그 기점으로 봅니다. 이 시기를 거치면서 세계화에 맞춘 현대인의 24시간이란 개념이 한국사회에 정립되었고, 개인은 시간 활용의 책임을 진 '자기개발의 주체'가 되었으며, 기업은 '시간경영'의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고 합니다. 특히 98년 IMF를 거치며 저자는 "이로써 대한민국의 사회적 시간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축적 시간 체제에 의해 재조직되게 되었다"라고 강조하죠.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우선, 저자는 동일한 24시간이라도 자원으로서의 시간은 개인에게 동일하지 않다고 지적합니다. 특히 개인의 자본 소유 수준에 따라 다르겠죠. 건물주와 평범한 직장인의 24시간은 정말 동일할까요? 그래서 80년 이후 지금까지의 일방향적인 시간에 대한 논의보다, 진정한 시간의 민주화와 분배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마무리합니다.


 중력을 조작해서 시간을 늘리거나 줄일 수는 없지만, 한 사회에서 개개인의 시간이란 개념에 다양한 층위가 존재한다는 걸 인식하고, 이제는 80년대 이후의 흐름을 벗어나 새로운 시간에 대한 정책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이 책은 그러한 논의 시작점이 될 수 있는 연구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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