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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기산 May 06. 2022

파이어족의 기원을 찾아서(2)

생명연장의 꿈

"띵동"


 퇴사한 옆팀 팀장이 가구 스튜디오 대표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건, 주문한 순두부찌개가 나왔다는 벨이 울렸을 때였습니다. 회사 앞 자주 가던 푸드코트였는데, 회사에서 제출하라는 자료에 시달리던 탓에 오전 내내 먹지도 않은 술이 올라오는 듯했거든요. 


 "아니 어떻게 회사원이 갑자기 가구 스튜디오 대표가 돼? 그것도 연 매출 몇 억 하는?"


 저는 회사원은 죽을 때까지 회사원의 삶을 사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직업이란 다 그런 것인 줄 알았죠. 생활의 달인에 나오는 대박집 사장님은 학생부터 대박집 사장님을 준비한 사람이 되는 것 아니었나요? 작가, 뮤지션 그 외 다양한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고요. 마치 인도의 카스트 계급과 비슷한 개념이랄까요. 마찬가지로 월급 받는 회사원 역시 나름대로의 준비 과정을 거쳐서 월급쟁이 회사원이 되는 것이고, 그렇게 은퇴할 때까지 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마 저 말고도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대부분 그렇게 생각했었을 거예요. 물론 외환위기 이후 평생직장, 고용보장 이란 개념은 유효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우리들은 그것을 원하고 있었죠. 취업했을 때 주변으로부터 받는 주요 질문 중 하나가 '그래서 정년은 괜찮은가?'였으니까요. 


 그랬던 저에게 갑자기 회사원 때보다 잘 버는 가구 스튜디오 대표가 되어버린, 그러니까 열심히 출퇴근하던 옆팀 팀장님은, 마치 하루아침에 스파이더맨이 되어버린 피터 파커 같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피터 파커는 아니었고 '쿨하게 생존한' 사람이었습니다. 책의 제목처럼요.


 사실 처음에 출판사로부터 책을 건네받았을 때 좀처럼 책이 무슨 주제를 담고 있는지 가늠하기 어려웠습니다. '쿨하게 생존'이란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웠거든요. 서른 초반이었던 제게 직관적으로 와닿기 어려웠던 건 당연할지 모릅니다. 업무를 배우기에 바빴고 많은 것이 회사와 엮여 있는 시절이었으니까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회사와의 교류가 많았던 때이기도 합니다. 회사원으로서의 삶은 제가 한참 가야 할 미지의 세계이자, 지평선 너머가 보이지 않는 광활한 바다였습니다.


 물론 지금도 회사에서의 역할과 조직의 구성원이라는 점은 제게 꽤 큰 부분입니다. 하지만 삼십 대 후반, 곧 마흔을 바라보고 있는 저에게 회사는 더 이상 지평선 너머 탐험해야 할 미지의 공간은 아닙니다. 이곳에서의 제 미래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고, 그 범위 안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또는 전략적으로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편 회사와 언제까지고 함께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게 자의든 타의 든요. 회사에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업무능력을 발휘할 시기이고 에너지도 뒷받침합니다. 동시에 먼저 떠나는 선배나 독립해 창업한 거래처 부장님을 보며, 나 역시 회사와 함께 항해할 항로가 대서양처럼 드넓게 펼쳐져 있는 건 아님을 느낍니다. 


 불과 10년 전 최종 합격 통보를 받고선 '우리 회사다'를 외치며 길에서 간판만 보여도 뿌듯해했는데, 시간이란 빠르고 짧습니다. 평생 다닐 줄만 알았는데, 여전히 적지 않은 시간이 남긴 했지만 회사와 이별해야 할 시간 역시 이젠 손가락으로 세어지니까요. 


 이별해야 하는 연인과 쿨하게 헤어지는 게 미덕이라면, 이별해야 하는 회사와 쿨하게 헤어지는 건 어떻게 가능한 걸까요? 우선 '쿨'할 수 있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연인 사이에 쿨한 할 수 있는 건 덜 아쉬운 사람이겠죠. 같은 의미로 회사와 헤어질 때도 쿨 할 수 있는 건 아쉬운 쪽이 회사인 경우일 겁니다. 그리고 회사가 아쉬운 경우는 떠나겠다는 사람이 회사에 도움이 되는, 즉 기여할 능력이 있는 사람인 경우가 되겠죠. 사실 별다른 기여도가 없는 사람은 제 발로 나가겠다고 하면 회사는 아쉬워하진 않을 것 같네요.


 한편 우리에게 회사라는 건, 다시 말해 직장이라는 건 생존과 동일한 개념이기도 합니다. 직장에서 돈이 나오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는 정년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정년이 길다는 것은 생존확률이 길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그렇다면 '회사=생존'의 등식이 성립하는데, 회사와 이별하고 우리의 삶은 지속 가능한지 의문이 미치는 시점에, 비로소 책 제목의 깊은 뜻이 와닿습니다.


"쿨하게 생존하라"


우리는 회사 없이도 어떻게 쿨하게 생존할 수 있을까요? 쿨하게 생존하면 파이어족은 비로소 가능한 걸까요? 이 책에서는 꽤 현실적이지만 명확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다음 편에서 자세한 내용을 살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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