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지막이 집에 돌아온 아내가 투덜거렸다. 한 상사 때문이었는데, 첫째는 퇴근시간이 지나서 갑작스럽게 술이 포함된 저녁식사 일정을 잡아 통보했다는 것. 둘째는 어떤 술을 마실 건지 묻지도 않고 소주를 따랐다는 것. 셋째는 한 잔 따라놓은 술을 마실 때까지 쳐다보며 왜 안 마시냐고 강권했다는 것. 분노의 이유는 여럿처럼 보이지만 결국 하나였다. 왜 내 술을 네가 결정해? 내가 마시고 싶을 때, 마시고 싶은 종류로, 마시고 싶은 만큼 마실 건데.
누르면 그 반작용으로 강하게 튀어 오르는 것처럼, 강제로 막는 것은 일부러라도 해보고 싶기 마련이다. 술 또한 그렇다. 더군다나 이 사회는 얼마나 술을 아름답게 묘사하는가. 해 질 녘 한강공원에 앉아 갓 배달 온 치킨을 뜯으며 마시는 캔맥주, 매캐한 연기가 가득한 가게에서 은빛 포일 위로 노릇하게 익어가는 냉동삼겹살에 소주 한 잔, 민속주점에서 벽면 빼곡한 낙서들을 등지고 앉아 커다란 파전과 곁들이는 막걸리 한 사발. 수능을 갓 마친 고등학생들에게 스무 살이 되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것이 뭐냐고 물을 때 밤늦게까지 술 마셔보고 싶다고 답하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될 정도다. 이쯤 되면 술은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자유의 상징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술에 대한 취향은 타인에 의해 무시당하는 경우가 많다. 회식도 업무의 연장이라는 조직, 메뉴와 함께 곁들일 주종과 브랜드까지 혼자 결정해버리는 권력자, 술에 취해 부린 추태와 객기 가득한 주사가 마치 회사에 대한 자신의 충성심이라는 듯 떠드는 분위기. 한 때 자유의 상징이었던 술이 오히려 자유를 옭아매는 모습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술처럼 이토록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의 미움을 동시에 받는 것이 또 있을까. 그렇기에 이 책의 제목 <아무튼, 술>은 위험하게 여겨졌다. 술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간혹 취향을 벗어난 강요를 당한 적이 있었던 평범한 보통 사람으로서, 이 책이 또 다른 강권으로 느껴지지는 않았으면 했다.
이 책은 술과 관련된 많은 에피소드를 담고 있지만, 정확히는 술보다는 작가의 인생 이야기다. 첫 술에 대한 추억부터 진로에 대한 고민,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의 고민, 친구들과의 우정, 배우자와의 만남 등. 인생의 굴곡 가득한 곡선들을 술을 통해 시끌벅적하게 고백할 뿐이다. 보통은 '담담히 고백한다'는 관용어구가 많이 쓰이지만, 이 책은 말 그대로 시끌벅적한 고백이 가득하다. 하지만, 그것이 마치 나와 마주 보고 술 한 잔 하면서 꺼내는 이야기처럼 친근하게 느껴져 귀를 막고 싶지는 않다.
작가는 전작인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축구>에 이어,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도 본인의 취향이 상당히 마이너함을 고백하고 있다. 그러한 작가의 앞날을 응원하고 싶다. 세상이 메이저로만 가득하면 재미없으니까. 작가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취향이 존중받는 그 날이 오길 바라며,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도 내가 마실 술은 내가 결정하는 걸로 하자.
나는 어려서부터 힘내라는 말을 싫어했다. 힘내라는 말은 대개 도저히 힘을 낼 수도, 낼 힘도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에서야 다정하지만 너무 느지막하거나 무심해서 잔인하게 건네 지곤 했고, 나를 힘없게 만드는 주범인 바로 그 사람이 건넬 때도 많았다. 나는 너에게 병도 줬지만 약도 줬으니, 힘내. 힘들겠지만 어쨌든 알아서, 힘내. 세상에 "힘내"라는 말처럼 힘없는 말이 또 있을까. 하지만 이때만큼은 "힘내"라는 말이 내 혀끝에서 만들어지는 순간, 매일매일 술이나 마시고 다니던 그 시간들 속에서 사실 나는 이 말이 듣고 싶었다는 걸, 스스로에게 말하고 싶었다는 걸 깨달았다. 누가 무슨 의도로 말했든 상관없이. 그냥 그 말 그대로, 힘내.
(p.60)
냉장고 문을 닫는 순간 몇 시간 후 시원한 술을 마실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듯이, 신나서 술잔에 술을 따르는 순간 다음 날 숙취로 머리가 지끈지끈할 가능성이 열리듯이, 문을 닫으면 저편 어딘가의 다른 문이 항상 열린다. 완전히 '닫는다'는 인생에 잘 없다. 그런 점에서 홍콩을 닫고 술친구를 열어젖힌 나의 선택은 내 생애 최고로 술꾼다운 선택이었다. 그 선택은 당장 눈앞의 즐거운 저녁을 위해 가까이 내일의 숙취를 선택하는 것과도 닮았다. 삶은 선택의 총합이기도 하지만 하지 않은 선택의 총합이기도 하니까. 가지 않은 미래가 모여 만들어진 현재가 나는 마음에 드니까.
(p.90)
그러니 작은 통 속에서 살아가는 동료들이여, 지금 당장 감당할 수 없다면 때로는 나의 세계를 좀 줄이는 것도 괜찮다. 축소해도 괜찮다. 세상은 우리에게 세계를 확장하라고, 기꺼이 모험에 몸을 던지라고 끊임없이 메시지를 보내지만 감당의 몫을 책임져주지는 않으니까. 감당의 깜냥은 각자 다르니까. 빚내서 하는 여행이 모두에게 다 좋으란 법은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