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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랜맨 Jul 02. 2020

당신의 반려 물건은 무엇인가요?

<반려 물건>, 모호연  |  06/24~25  |  스틸북스

계절이 바뀌면 신발장 제일 위쪽 선반에 놓인 작은 종이상자를 꺼낸다. 종이상자에는 갈색병과 사포, 면포가 들어있다. 먼저 고운 사포로 원목 테이블 위를 나뭇결에 맞춰 쓸어낸다. 얼룩이 있는 부분은 더욱 신경 써서 갈아내고, 흠집이 난 부분은 호두나 땅콩 같은 견과류로 살짝 문질러 주면 감쪽같이 사라진다. 그다음에는 오일을 적당한 간격으로 조금씩 부은 뒤 면포로 잘 발라준다. 원목 표면에 오일이 골고루 스며들게 발라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뭉치지 않도록 꼼꼼히 닦아주는 과정이 더욱 중요하다. 이렇게 여러 가구들을 차례로 작업해준다. 그리고 창문을 열고 서큘레이터를 틀어 잘 마를 수 있도록 도와주면 끝.


독립해서 혼자 오피스텔에 살던 때부터 원목가구를 써왔다. 어차피 나중에 다 새로 사야 한다는 둥, 남자 혼자 살면서 그냥 대충 싼 걸로 쓰라는 둥, 심지어 나중에 여자가 혼수로 해올 가구를 미리 남자가 마련해놓으면 손해라는 말까지... 주변의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그냥 싹 무시하기로 했다. 당시 상수에 있던 가구 제작 업체를 찾아 직접 가구들을 맞췄다. 책상은 서랍을 없애서 가격을 낮췄고, 테이블은 일반적인 사이즈보다 좁고 긴 형태로 바꿔서 활용도를 높였다. 수납장은 아예 새로 디자인했는데 상단 오른편에는 전자레인지 수납공간을 두고, 왼편에는 밥솥을 놓을 트레이를 설치했다. 하단에는 자주 쓰지 않는 주방가전들과 큰 냄비들을 보관할 수 있도록 했다. 책장은 뒤판을 떼어내서 개방감을 준 대신, 상단에는 큼직한 서랍을 달았다. 좁은 공간이었기 때문에 가구를 자유롭게 배치할 수 있도록 책상과 테이블, 수납장의 높이를 똑같이 맞췄다.


5년 하고도 몇 달이 더 지났다. 그 사이에 나는 결혼을 했고 세 번의 이사를 했다. 주변 사람들의 걱정과는 달리 이 가구들은 여전히 나와 함께 하고 있다. 오히려 최근에 이사를 하면서는 예전에 가구를 구입한 업체를 다시 방문해 몇몇 가구를 추가로 맞추기도 했다. 새로 맞추는 가구들을 디자인한 직원분이 마침 5년 전 담당자와 같은 분이셔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직접 배송 오셔서는 예전에 직접 만든 가구를 쓱- 쓰다듬기도 하셨다. 사용하는 나뿐만 아니라, 직접 만든 그에게도 추억이 담겨있겠지.


원목으로 만든 가구들은 가공된 가구임에도, 자연스럽게 숨을 쉬고 계절에 따라 수축하고 팽창한다. 그 과정에서 갈라지기도 하고 얼룩이 생길 수도 있다. 내 테이블도 예전보다 전체적인 톤이 약간 밝아졌고, 책장의 나이테와 옹이는 진해졌다. 하지만 소중한 내 공간을 채우고 있고 내 삶이 녹아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는 조금도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함께 나이 들어가는 모습이 멋스럽다. 가구 업체 직원분께서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가구를 보물 모시듯 귀하게 안고 있을 필요 없어요. 마음 편하게 쓰고, 대신 그 이후 관리를 더욱더 신경 써 주세요. 그럼 10년이고, 20년이고 계속 옆에 있을 겁니다." 아마 이 가구들은 앞으로도 꽤 오랜 시간을 함께 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물욕이 없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내 아내처럼 쇼핑몰 위시리스트에 천 개가 넘는 물건을 담아놓지도 않고, 뭔가 갖고 싶은 거 없냐는 질문에 즉각 답이 나오지도 않는다. 그래서 처음 이 책을 발견했을 때에는 나에게는 공감되지 않는 이야기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는 자연스레 내가 아끼고 좋아하는 물건을 떠올리게 되었고, 구구절절한 원목가구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말았다. 새로운 물건을 들이고 싶은 것뿐만이 아니라 내 물건에 애착을 주고 꾸준히 관심을 가지는 것 또한 물욕이라면, 나도 물욕이 넘쳐흐르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자칭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표한다는 작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당장 필요하지 않고 당장 쓰지 않아도 되지만 지름신 때문에 덥석 샀다가 방치하고 있는 물건들, 오래 써서 이제 보내줄 때가 되었지만 버리지 못하고 있는 정든 물건들에 대한 이야기. 다양한 경로를 통해 들어와 오랫동안 곁에 살아남은 물건들에 관한 이야기다. '예쁜 물건은 쓸모 있다. 왜냐하면 예쁘기 때문이다' 라거나, '모으는 게 아니라 보관하는 겁니다. 보관하다 보면 언젠가 쓸 것이다'처럼 각 챕터의 소제목부터 시선을 끌어낸다.


집에 사람이 없는 시간이 길다 보니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지는 못하지만.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섰을 때 나를 따뜻하게 위로해주는 반려 물건이 있다고 생각하면, 왠지 조금은 더 살만해질 것 같다.




어느 날 서랍을 뒤지다가 온전한 양말이 하나도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스스로의 미련함에 화가 나 양말을 전부 꺼내 버렸다. 물건을 아끼는 것도 정도를 지나치면 생활을 망친다는 걸 실감했다. 아껴 살고 있다는 안심을 하려고 양말을 열심히 꿰매 신었지만 정말로 그것이 절약이었는가 생각하면 입이 다물어진다. 스스로 생활을 돌보면서 잊지 말아야 하는 한 가지가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의 목록에서 '양말 꿰매기'를 없애도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부자가 되는 것도 누구한테 혼이 나는 것도 아니다. 양말에 구멍 좀 낸다고 그렇게 큰 잘못이겠는가.

(p.57)


친구가 많은 것은 죄책감 없이 물욕을 마음껏 표출할 수 있는 좋은 핑계다. 함께 여행을 갔던 친구가 시장 구경을 하다 말고 아쉬워하면서 "물건은 더 사고 싶은데, 친구가 부족해"라는 말을 했다. 나는 그 말에 적극 동감했다. 친구들에게 줄 선물을 다 사고 나면 마음껏 구경할 수가 없다. 그때부터는 쇼핑이 온전히 나만을 위한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합리적인 소비를 하는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에 물욕을 부리는 자신을 깨닫는 것은 썩 달갑지 않다. 그러니 물욕이 많은 사람에게 친구가 많은 것은 쇼핑하기에 아주 좋은 구실이 될 수 있는 것이다.

(p.147)


비싸고 예쁜 물건은 많다. 모든 사람이 가질 수 없을 뿐이다. 싸고 흔한 물건은 구하기 쉬운 대신 필연적으로 마감이 부실하다. 물건과의 만남을 나의 운명이라고 결론짓는 것은 그 미묘한 경계선을 넘어 '이걸 사겠다'라고 마음먹기까지 여러 계단을 올라서야 하기 때문이다. 가성비라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다. 결국 취향을 휘어잡는 것은 한 끗 차이이고, 특별한 기능보다 개인적인 감상이나 주변 상황에 치우치기 마련이다.

없어도 괜찮지만 있으면 더 즐거운 어떤 물건. 복잡한 내 마음의 회로를 통과해 전기가 짜르르 통하고 마는 어떤 물건. 마주치기 전에는 설명할 길이 없지만 첫눈에 반할 그 어떤 물건을, 나는 또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언젠가 아주 운명적으로.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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