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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ie May 30. 2021

달이 뜨는 방

영월 한달살이 집을 구하다

5월 5일

전날 술은 가볍게, (외지 살이를 다시 해보려니) 감정은 격해져 대성통곡까지 했던 어른은 슬프게도 나름 짧은 휴가였지만, 업무일이랑 똑같이 눈을 떴다. (5am)


호텔 밖을 보니 비 오던 전날과는 달리 날이 맑았다.

장날 들렀던 이달의 영월 사장님이 지낼만한 곳 한 곳을 알려주셔서 우선 그곳을 가보기로 했다.


장소는 남면이었는데 여기 오기 전까지는 위치 공간에 대한 아무런 이해도, 관심도, 중요함도 깨닫지 못하던 그냥 나오면 된다는 상태였다.

카카오 맵에서 찍어보니 한 시간 안되네? 오 괜찮은데? 서울 시내에서 움직여도 기본 30분인데, 하면서 우선 가봤다. 물론 차로 가면 시간은 다를 수 있으나, 서울의 차 타고 10분과 영월의 차 타고 10분은 근원적으로 다른 형태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 영월의 10분은 정말 말 그대로 10분일 수도 있지만, 굽이굽이 고개를 넘어 하루 종일 가야 하는 곳이 될 수도 있다.

 


남면의 숙소는 내가 바라던 리틀 포레스트, 윤스테이, 여름방학, 오눅님의 유튜브 등등 내가 좋아하는 모든 걸 갖추고 있었다. 집에서 내가 쓰는 타올과 똑같은 브랜드에서 같은 색 제품을 구비해놓으신 걸 보고 오오 하다가 라탄 바구니까지 똑같이 (택 안 뗀 것도 나랑 똑같...) 사놓으신 걸 보고 이건 운명의 데스티니라고 생각했다.


지금 사는 전셋집도 첫 뷰잉에 꽂혀 계약금 지르는 노빠꾸 인생 3n년차는 바로 계약금을 보내려고 했지만, 주변 지인들한테도 톡 해보고 의견을 종합해보니 "네가 거기서 차 없이 어떻게?"라고 계속 물었다. 하긴, 여기서 버스 타고 읍내 가려면... 서울처럼 택시를 마구 탈 수도 없을 테고(물론 실제로 와서는 매일 탄다^^)


잠시 마음을 추스르고 어제 뵌 청년사업단 분께 추천받은 산속에서 점심을 먹고, 영월 읍내로 돌아가 다시 정처 없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읍내의 영월 성당 앞에 서서 강을 내려다보며 자비로우신 성모마리아님이 도와주시기를 바라며 (불교임) 영월 신문에 나온 집들에 다 일일이 전화를 했다.


타샤의 정원이 생각나던 산속의 친구. 달방 말고 여기서 살고 싶었다.


달방은 놓지 않는다, 혹은 달방을 놓을 경우에는 정말 잠만 자는 집 - 부엌 없는 고시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이 많았다. 오무개길 근처에 집이 하나 나왔는데 지나가 보니 그 동네에 벽화도 그려놓고 집들이 아기자기하고, 읍내랑도 너무 가까워서 여기가 딱 내 스타일인데. 하고 있었다.


우선 그 집주인분은 전화로 안된다고 하셔서 어제 본 동강 변의 펜션에 하나 전화를 걸었다. 모두가 안된다고 할 때 한 곳에서만 된다고 하셔서 우선 그 집을 보러 가기로 했다.



펜션은 동강 어라연으로 가는 길에 있고 (어라연이 동강이라고 했다...) 그 펜션이 있는 동네는 삼옥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지나가는 길에 얼핏 봤지만 강변에 예쁘게 옹기종기 몇 펜션이 있는 게 보였다.


뜬금없는 당일 방문에 주인 내외분은 당황스러울 수도 있었을 텐데 빈 펜션 몇 곳을 보여주셨다. 단독인데 작은 방, 큰 방, 2층에 좀 떨어진 방까지.


사실 내가 생각하던 '리틀 포레스트'는 남면에 이미 있었기 때문에 마음 한 켠은 Go South 였지만, 거리가 계속 걸렸다.



펜션이라 커틀러리나 조리 시설, 기구는 다 갖춰져 있고 침대/침구도 있는 게 마음에 들었다.

그래도 뭔가 100퍼센트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 제대로 보지도 않았다. 나는 남면의 그 집에서 이미 토스터로 빵을 구워 커피 드리퍼로 커피를 내리는 내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다시 연락드린다고 한 후 오무개로 향했다. 내 성격상 다시 보고 올게요 하는 건 완곡한 거절이다.

읍내로 다시 나온 건 오무개길 앞에서 그 집주인분에게 다시 한번 통사정을 해서 집을 보기로 했기 때문이다.


서부시장의 메밀전병 거리의 어떤 아주머니께 키를 받아 집을 보라고 하셔서 미션을 수행하듯 서부시장을 찾아 그 집을 찾았고, 키를 받았다.


집은 내가 카카오 맵으로 보던 도로변은 아니었고 안쪽이었다. 방은 세 개에 엄청 널찍했지만 냉장고를 제외하면 아무런 집기가 없었다. 빈 집이 된 지 꽤 된 것 같아서 들어올 때 입주청소를 한 번 해야 할 것 같은, 거미줄도 좀 보이고, 옆의 창고 같은 데는 먼지가 켜켜이 쌓여 이 집의 세월을 보여주는 집이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또 철없이 house makeover를 생각하면서 이 집을 내가 살고 싶은데로 예쁘게 꾸미면 어떨까, 이게 바로 리틀 포레스트지, 에이프런 두르고 먼지떨이 들고 다니며 먼지 총총 터는 그런 모습을 생각하며 미소 지었는데 또 현실적으로 여기 가져올 집기들부터 침구는 어떻게- 그리고 펜션과 달리 여기는 내가 공과금을 다 일일이 치르고 계산해야 했다. 와이파이도 없고..


종합하면


1. 남면 집

예쁨. 내가 생각하는 모든 게 다 있음

세탁기가 없음 - 운동 자주 하는데 빨래가 어려우면 힘들 수도

읍내랑 거리 있음


2. 펜션

읍내랑 차로 10분, 택시 부를 수 있음 (만원 내외) 버스도 간간히 지남

집기구 다 있음

벽지가 살짝 내 취향 아님

마당 갬성이 나랑 살짝 결이 다름


3. 읍내 집

모든 게 zero, 내가 꾸밀 수 있음

꾸미다가 한 달 다 갈 수 있음


였다.



아무리 예쁘고 뭐 꾸미고 싶고 이런 게 있어도 나는 업이 있고 이곳에서 놀기만 하는 게 아니라 일도 해야 하는지라 여기 '생활' 공간 만들기에 올인하기는 어려웠다.


올라가는 길에 펜션 주인분께 입금을 하고 '오늘의 집' 어플을 켜서 내가 거슬리던 그 부분을 가릴 무언가가 있는지를 찾기 시작했다.


이제 5월 16일에 여기에 오는 게 공식 확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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