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한 번째 기록
일상은 언제나와 같이 그럭저럭 돌아갑니다.
어쨌든 프라하에서 배워 온 것들로 저의 요가는 조금 더 풍성해진 것이 사실입니다.
발달의 움직임 원리를 요가에 잘 녹여 수업을 하는 것이 한결 수월해졌습니다.
보통의 클래스는 수지와 유라이처럼 요가 강사가 아닌 수많은 사람들이 요가를 하러 옵니다.
한 번의 수업에 스무 명 남짓의 사람들이 모입니다.
이 중에 요가 강사는 오직 저 하나입니다.
새로 구성한 시퀀스는 그 전보다 심플해졌습니다.
그리고 저의 이해는 조금 더 명확해졌어요.
그러나 여전히 머릿속은 복잡합니다.
프라하까지 갈 때에는 다녀와서 하고 싶은 일이 분명했습니다.
바로 요가 프라하 분야의 강사를 양성하는 일입니다.
떠나기 전부터 어느 정도의 계획을 세우고, 교재의 초안도 짜 두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움직임을 만난 후 저의 요가는 180도 변화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클리닝의 기억을 떠올리니 도대체 그것을 할 수가 없습니다.
굳이 제가 클리닝을 할 필요가 없다고 해도 그것이 안에 들어있는 요가를
감히 해낼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클리닝.
그 안에 있는 뜻을 다시금 복기해봅니다.
요가의 정화작용.
물에서 다시 태어나는 몸.
모체의 양수 안에서 태어나는 몸.
태어나 양수를 토해내는 과정.
이 모든 과정과 제가 경험한 정화의 모습은 닮아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여전히 머리가 복잡합니다.
머리칼을 더 짧게 자를 수는 없습니다.
책을 좀 읽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