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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한 Nov 19. 2023

캣맘

나는 고양이 15마리의 밥셔틀이다.


글쎄, 누군가는 비난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고양이 15마리의 밥을 주고 있는 - 캣맘이다.

추가로 내가 밥을 주는 고양이들은 우리 집 마당에 있는 고양이다. 내가 이사오기 전부터 그들은 거기서 살고 있었고 나는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이다 보니 바깥에 있는 마당의 수호신들을 지나치지 못했다.


고양이의 밥셔틀로 사는 것은 정말로 많은 에너지와 - 비용을 소모한다. 하루도 쉴 수 없으며 (언제나 기다리고 있다) 겨울에는 뜨끈한 온돌용 핫팩을 흔들고 여름에는 벌레를 내쫓는 아이템들을 밥자리에 달아둔다. 보양용 캔을 하루에 10개씩 딴다. 밥은 우리 집 아이들이 먹는 것과 똑같은 것을 준비한다. 내 레스토랑의 철칙이 사는 곳은 달라도 먹는 것은 똑같이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내 집 마당에서 밥을 주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길에 있는 아이들의 밥을 주는 것은 얼마나 힘들까. 생각이 든다.


요새는 고양이를 도시의 증오동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아마 개에 비해서 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고 - 그리고 연약하기에 쉽게 괴롭힘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난 생각한다. 자신보다 약한 생물을 괴롭히는 사람은 사람에게도 똑같을 것이다. 나보다 약한 사람이라면 얼마나 손쉽게 사람이 아닌 고깃덩어리 취급을 하겠는가. 고양이라서 특별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증오의 말을 내뱉는 사람들, 동물 학대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보다 약한 것에 대한 관용이 없어지는 시대라는 것을 온몸으로 느낀다.


물론 그들이 말하는 '사람 앞에 동물'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역시 잘 안다. 얼마 전에 유명 개인플루언서의 항공기 탑승사건이 그랬고 나도 고양이를 먼저 생각하느라 사람의 복지를 생각하지 않는 캣맘들을 많이 만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캣맘이 그런 식으로 호도되고 있는 것에는 무척이나 우려를 표한다. 그리고 왜 도대체 '맘'인 건가. '대디'는 없는 것인가?


어떤 사람은 캣맘이 모두 고양이를 자기 집으로 데려가면 해결되지 않느냐.라고 말할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해결될까? 고양이가 멸종한 다음에는 사람들은 다음 증오의 대상을 찾을 것이다. 약한 것을 괴롭히는 걸로 스스로의 저렴한 자존감을 찾는 사람들이 그것을 멈출까? 고양이가 없어지면 사람이 될 것이고 그것은 아마도 장애인이 될 것이다. 끊임없이 나보다 모자란 것들을 찾을 테니. 그게 유대인과 장애인이라고 다 가스실에 밀어 넣었던 3세계의 독일과 뭐가 다른지 나는 잘 모르겠다


가장 좋은 방법은 도시의 다른 구성원들과 인류가 공존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제일 베스트지만 적어도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관심을 끄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괜찮을 텐데, 혐오와 증오의 말을 내뱉기를 멈추지 않는다. 거창하게 지구는 인류의 것만이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것을 벗어나 어느 날 인류보다 더 월등하게 뛰어난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해서 인류를 미개한 생물체라고 괴롭히고 먹어도 된다고 한다면 어떨까? 지적 능력이 우월하면 이용하고 괴롭혀도 되는가?


이해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적어도 관심이라도 꺼주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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