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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한 Dec 05. 2023

노동치료


사람이 어느 환경에 있냐에 따라서 많은 것이 바뀐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요즘이다. 3년 만의 출근은 여러 가지로 나를 귀찮게도 - 편안하게도 만들었다.


집에서 한 시간 반 거리의 먼 기술업계의 회사. 자기 일만 잘하면 서로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인 것도 무척이나 좋지만 어느 면에서는 조금은 삭막해 보이기도 한다. 자기 일만 다 하면 딱히 신경 쓰지 않아서 무척이나 좋지만 재택과 출근이 혼재해 있는 조직에서 서로에게 어느 정도의 선이 그어져 있는 그 분위기는 무엇인가... 확실히 코로나 전의 분위기와는 다르다.


세기말 파리처럼 화려한 세계에 젖어있던 나에게 출근이 좀 더 빨랐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뛰어난 재주가 아니고 별 볼일 없는 재주로 큰돈은 아니라도 캔값을 벌고 있다. 좋은 가방을 들지 않아도 비싼 시계를 차지 않아도 아무도 못 알아보는 이 환경. 그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것은 그냥 나에게 주어진 일을 잘 달성하는 것.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나에게는 이런 환경이 필요했다. 너무 과도한 기대도 아니고 겉으로만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는 것도 아닌 그냥 담백하게 엑스트라 1과 같은 그런 환경 말이다.


그러면서도 뼈저리게 깨닫는 것은 예전과는 무척이나 다른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이다. 여러 가지가 무척이나 많이 바뀌었다. 나이 탓을 하고 싶지 않지만 이젠 젊은 나이도 아니고 - 뭐든지 내가 하고 싶은데로 할 수 있다고 믿었던 패기 넘치던 어릴 때와는 많이 달라졌다. 물론 그만큼 지혜도, 갖고 싶은 것을 뭐든지 가질 수 있는 재력도 있지만 지난 3년을 좀 더 현명하게 썼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화려하고 멋진 부유한 세계. 무척이나 즐거웠지만 꼭 그 세계만이 전부가 아니고 이 세상도 개인적으로 맘에 든다. 업무적으로는 꽤나 복잡하지만 인간관계로는 담백하다. 크게 무언가 될지는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안하게 일하고 있다. 아마 그것은 내가 이미 이뤄놓은 부가 있기 때문에 그런 걸 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갈 곳이 있고 미천한 재주가 쓰일 곳이 있다는 것은 좋다. 과거의 내가 열심히 공부한 것은 쓸모가 없지는 않았던 것이다.


이렇게 안전하게 40대로 넘어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야망이 좀 빠진 나의 모습이 조금 안타깝긴 하지만 언제까지 젊고 예쁠 수도 - 그리고 젊고 예쁘다는 것을 한 밑천으로 살아남을 수도 없다. 나는 지금의 나로서 어떻게든 살아남는 길을 찾아야 한다. 지금 그 과정을 겪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얼마나 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나보다 뛰어난 사람은 너무나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 어딘가에 내가 쓰일 자리 하나 정도는 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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