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막엔 박수의 아이들인 기정과 달래, 명수가 된 아이, 죽은 할망의 아이 둘 그리고 관음사 아래편 숲에서 데려온 아이 여섯이 더 붙었다. 전에도 좁아터졌던 움막은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었다. 박수는 어린아이들의 힘을 빌어 움막 하나를 더 짓기 시작했다. 부모를 잃은 아이들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금세 적응해서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아이들도 자기 안에 내재된 슬픔을 힘든 노동으로 중화시키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기정은 아이들의 대장이 되어 일을 주도했다. 숲 속에서 나물 뜯는 일도, 대나무를 꺾어 집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울타리를 보강하는 일도, 어쩌다 보니 제일 큰 어른이 된 박수를 도와 사냥을 하는 일도, 아이들은 일사불란하게 자기 역할을 찾아갔다. 밤이 되면 잃은 부모 생각에 훌쩍이는 아이들이 있었지만 비슷한 상처를 입은 아이들이 서로 보듬고 다독여 아픔을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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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봄은 언제나처럼 빠른 속도로 훌쩍 날아가고 무더운 여름이 왔다. 한라산 깊은 숲 속은 서늘하기만 했다. 제주의 개활지는 볕이 너무 뜨겁지만 나무그늘 아래에 서면 숨이라도 쉴 수 있는 여유를 주었다. 빨갱이를 소탕한다는 명목으로 양민들을 살해하던 자들 역시 한라산 숲 속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원래 길이 없던 곳도 수십 명의 군인들이 지나간 곳은 길이 됐다. 아무리 우거진 숲도 그들이 며칠을 묵으면 집터가 됐다. 야영하는 동안 떌감으로 쓸 나무들을 마구 베어 주변이 초토화됐다. 심지어 일부러 불을 지르기도 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대부분 빨갱이를 잡겠다며 숲을 태웠다는 거다.
박수는 언젠가 사냥을 나갔다가 관음사보다 더 깊은 한라산 암자에 기거하던 스님을 만난 적이 있었다. 군인과 경찰들이 거기까지 다녀갔고 암자에 머물면 죽이겠다는 협박을 받은 스님은 잠시 사람 사는 곳에 머물기로 했다는 말을 들었다. 이젠 숲도 안전할 것 같지 않았다. 산불이 나서 불에 타서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몸서리치는 게 하루이틀이 아니었다. 듣기 좋은 얘기는 아니었지만 암자의 스님은 많은 소식을 전해주었다. 관음사뿐만 아니라 천황사 등 제주 곳곳의 암자들 역시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고 했다. 암자의 스님은 자신이 불의에 맞서지 못해 암자를 떠나는 게 아니라고 했지만 박수는 그의 표정에서 죽음에 대한 공포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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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고 하더니 정말 그렇다고 느낄 수 있었다. 박수는 아이들이 자라는 속도와 먹성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처음엔 힘들다는 소리를 않던 도지도 열한 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단속하려니 힘에 부치는 모양이었다. 도지는 하루가 다르게 말라갔다. 명수는 다른 아이들보다 점잖았다. 말을 하지 못하니 과묵해 보이긴 했지만 눈에는 영혼이 삭제된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다른 아이들과 뛰어놀거나 하지도 않았고 그저 높은 하늘을 보는 게 대부분의 일상이었다. 물론 박수가 집에 있을 땐 박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도지는 몸도 마음도 불편하고 힘들었다. 달래는 여전히 철이 없고 기정은 박수만큼이나 다정하고 듬직했다. 습하거나 찌는 듯이 덥거나 하던 여름 내내 한라산 모기들은 그렇지 않아도 말라가는 사람들의 피를 빨아댔다. 해가 지면 움막은 사람이 사는 곳으로 변했다. 날이 길어지자 해가 지기도 전에 밥을 달라며 채근하는 아이들 때문에 도지는 짜증이 더했다. 이젠 산짐승들에게도 소문이 났는지 사냥도 시원치 않았고 버섯과 나물도 씨가 말라가고 있었다. 영역을 넓혀야 하지만 집에서 멀어질수록 불안함은 더해졌다. 큰맘 먹고 동선을 확장한 박수는 그때마다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왔다. 그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숲 속 구석구석 많은 사람들이 숨어들어 있었던 것이다. 사람 수가 많지는 않겠지만 산짐승 수는 한계가 있었다. 계절이 바뀌어가는 시점인데 멀리 밭담 사이 경작하던 농산물들은 수확을 했는지 그대로 썩어 문들어졌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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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점점 여의치 않았다. 앞날이 걱정된 박수는 고민 끝에 산 밑으로 가볼 작정을 했다. 도지는 극구 반대했지만 상황을 모르지 않았기에 박수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박수는 한사코 같이 가자는 도지를 움막에 두고 산 아래를 향햤다. 대신 기정을 동행시키기로 했다. 도지의 요청이었다. 혼자 내려가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냐고 했다. 둘 다 위험에 빠질 수도 있겠지만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라도 생기면 날쌔고 발이 빠른 기정이 연락을 전할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기정이 도움을 요청한다고 해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도지의 마음을 알기에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산을 내려오며 살던 집 주변을 살폈는데 불과 몇 개월 사람이 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폐허처럼 변해 있었다. 조상 대대로 지켜왔던 집이 흉가로 변한 모습에 박수는 마음이 무거웠다. 어떻게든 다시 집으로 돌아가리라 다짐하며 산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다. 산 아래로 가면 갈수록 마음은 점점 무거워졌다. 많은 마을들이 자신의 집처럼 혹은 그보다 더한 모습으로 변해있을 게 분명했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보리밭은 밭주인이 다녀간 것처럼 말끔히 수확되어 있었다. 흔한 이삭조차 보이지 않았다. 군데군데 밭담이 무너져 있는 걸로 보아 제대로 관리를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주인 없는 농작물을 누군가 도적질해 간 것이다.
기정의 눈에도 비슷하게 느껴졌다. 사람이 많은 동네는 아니지만 그래도 사람 사는 냄새가 나던 지역이었는데 사람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게 너무 쓸쓸했다.
"아방! 마음이 아파요."
"나도 그렇단다. 세상이 어찌 되려고 이러는지……. 너희들은 이런 고통 없는 세상에 살아야 하는데 말이다. 설문대할망이 너희들을 굽어 살피시면 좋겠는데. 그놈의 할망은 이놈의 땅만 만들어 놓고 이렇게 무책임했는지 모르겠구나."
그동안 말은 하지 않았지만 박수는 설문대할망에 대한 기대보다 불신이 더욱 커진 상태였다.
"아방. 저는 할망과 설문대할망을 믿어요. 그리고 아방이 명수와 달래를 지켜주신다고 했잖아요. 명수는 설문대할망을 모실 아이라고 했고요. 저는 설문대할망이 좋은 세상을 만들어 주실 거라고 믿어요."
기정이 박수의 손을 꼬옥 잡았다. 박수는 하염없이 정겹던 고향의 모습이 스산하게 느껴졌다. 그는 여전히 설문대할망을 탓하고 있었다.
박수의 조심스러운 발걸음은 다시 웃인다라를 향했다. 웃인다라 마을 어귀에서 밥을 짓는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혹시 모를 위험을 감수해야 하지만 그냥 모른 척하고 지나치고 싶지는 않았다. 밭담 뒤로 몸은 최대한 은폐시켜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게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때론 빨리 뛰었고 때론 지렁이처럼 느리게 움직였다. 마을 근처에 들자 사람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들 떠드는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마을사람들이 돌아온 모양이었다. 웃인다라 사람들이 죽어 나가던 모습을 본 게 기억났다. 전부 죽거나 한 건 아닌 모양이었다. 박수는 그래도 경계를 풀 수 없어 집담에 붙어 살금살금 걸음을 옮겼다. 마을 사람들이 돌아온 것이라는 확신이 들자 안도한 박수는 굽혔던 허리를 폈다. 마침 마당에서 솥을 걸고 있던 하르방을 발견하고 올래 안으로 들어섰다. 하르방은 박수를 보고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 얼마 전에만 해도 사람들은 사람을 보고 놀라는 게 일상이었는데 이제 다시 평화가 찾아온 것 같았다. 이제 산중 생활도 끝이라는 생각에 어두웠던 마음이 환하게 밝아오는 것만 같았다.
"하르방. 안녕하세요?"
"어쩐 일이시오? 그 산에서 약초 캐던 무당집 아들이구먼."
하르방은 긴가민가 하더니 박수를 알아보고 반가운 기색을 보였다.
"마을 사람들이 전부 돌아온 건가요?"
"한참 됐지. 자네는 아직 산중에 있나? 자네 집에 사람이 살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는데 죽거나 한 건 아니었군. 그래도 자네 식구들은 신들이 지켜준 모양임세."
하르방의 말에 박수는 그냥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사실 그날 마을을 떠나는 걸 봤습니다."
"그날 몇 사람이 죽었어. 누가 신고했는지 모르겠지만 빨갱이 짓을 했다나 봐. 우린 경찰들에게 잡혀서 경찰서까지 다녀왔어. 마을 사람들 모두 조사받았지. 경찰이 빨갱이가 아니라는 종이 쪼가리를 주더라고. 그게 무슨 소용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우리 목숨이 달린 거라 하길래 받아오긴 했지."
"그럼 바로 마을로 돌아온 거네요?"
"그렇다고 봐야지. 자네도 경찰서 다녀오는 게 어떤가?"
"그건……. 일단 알아보겠습니다. 그나저나 요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해서……."
"뭐가 어떻게 돌아가나! 우리 같은 농사꾼들이야 알 것도 없고 알아야 할 이유도 없지. 듣기로는 본토가 반으로 갈라졌다느니 하는 소리는 들었어. 빨갱이들이 그랬다는데 말이야. 얼마 전에는 육지에서 경찰들이 엄청나게 많이 들어왔다고 하던데 또 무슨 일이 터지지나 않을런지 걱정이네. 그리고 말일세. 나도 얼마 전에 들어서 알게 된 사실인데 말이야. 그 일이 있기 전부터 못 보던 사람들이 자꾸 산으로 가길래 무슨 일인가 했더니 선거 때문에 피신한 거라고 하더구먼. 아무튼 이유는 모르겠네만 산에 가면 뭐가 해결되나? 그리고 요즘 경찰들은 따발총까지 갖고 다닌다고 하니 자네도 빨리 증명서 쪼가리 받아서 다니게. 그거 없으면 그 자리에서 총살한다고 하더라고."
오지랖 넓은 하르방은 품 안에서 자신이 빨갱이가 아니라는 증명서를 꺼내와 박수에게 보여주었다. 하르방이나 박수나 글을 모르기에 무슨 내용인지도 알 수 없었지만 박수는 그게 목숨을 부지하게 해주는 거라고 하니 꼭 가지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은 이미 경찰인지 경찰의 수하인지 모를 사람을 죽였으니 증명서 따위는 받을 수 없을 게 분명했다. 하르방이 자신을 경계하지 않는 것으로 봐선 그런 소문은 퍼지지 않은 게 분명했다.
박수는 웃인다라 마을을 떠나 죽성큰가름을 향했다. 멀리서 지켜보니 그 마을 역시 사람들이 돌아와 있었다. 그가 갔을 땐 마을 사람들이 경찰서로 잡혀갔었던 모양이었다. 하르방의 얘기를 종합해 보면 삼의악오름에서 죽임을 당한 사람들은 빨갱이였을 수도, 빨갱이로 몰렸을 수도 있다. 집에 숨어들었던 할망이 빨갱이였는지, 관음사 아래 숲에 숨었던 사람들은 빨갱이였는지 박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빨갱이가 뭔지도 잘 모르는데 무턱대고 사람들을 빨갱이라고 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박수는 빨갱이라는 개념보다 살인자로 낙인이 찍혔다. 세상이 어떻게 변했든 숲 속에서 나올 수 있는 형편은 아니게 된 것이다. 박수는 곡식을 구해보겠다는 생각을 접고 허탈한 마음으로 움막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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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면 시원했던 숲은 어느새 추위를 느끼게 했다. 숲 속의 나무에선 이름 모를 열매들이 열리고 가을에나 볼 수 있는 버섯들이 여기저기 솟아났다. 다래와 으름이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보관하기 어려운 게 문제였지만 산에는 여름에 없던 먹을거리가 풍성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숲에 살던 사람들이 다시 그들이 살던 곳으로 돌아갔고 한라산 위로는 비행기가 자주 떴고 낮게 날았다. 산짐승들은 겨울을 준비하려는지 살이 통통하게 올라 기름졌다. 산중 생활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이제 나름의 역할을 맡아 자기 밥값은 하고 있었다. 이젠 누구도 부모를 찾으며 울지 않았다. 아이들은 친형제처럼 다투었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산 아래쪽에서 총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전과 달리 총소리가 잦았다. 때론 멀지 않은 곳에서도 총소리가 들려왔다. 평화롭던 움막엔 다시 공포와 불안이 자리 잡았다. 총소리가 날 때마다 아이들의 표정은 굳어버렸다. 딸꾹질을 하는 아이도 있었다. 도지는 말이 없었지만 알 수 없는 미래가 두려웠다. 식구가 많다 보니 움막 주위는 사람의 흔적이 적나라했다. 원시림 속에 숨겨진 듯 보였던 작은 움막은 이제 사람 사는 집이 됐다. 손을 대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살다 보니 움막은 마을에 있는 집의 모양이 되어 있었다. 추운 겨울을 대비할 생각에 온돌까지 만들었을 정도였다. 하늘 위에서 보면 어떻게 보일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불안은 상상을 낳았고 불안은 새로운 상상을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