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보물상자

돌배나무집 셋째 딸 Vol.26

by 루파고

지유가 진해 고향집에 도착했을 땐 이미 홍명덕의 빈소를 집에 모시고 있었다. 이미 늦은 시간인지라 많은 조문객들이 다녀간 후였는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빈소를 찾고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조문객들 중 지유를 알아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정미소의 마지막 출장 이후로 고향집을 거의 찾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점점 제 아빠를 닮아가는 진수는 이모들의 관심을 가득 받고 있었다. 지유는 문득 정미소와 진수의 모습이 교차하는 착시가 보이는 듯했다.

염을 마친 아버지의 시신을 마주한 지유가 울음을 참느라 이를 악무는 바람에 빠드득거리는 소리가 형제들의 귀에까지 들렸다. 다섯째 지서는 뒤에서 지유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등에 볼을 파묻었다.

“언니~ 아빠는……”

지서는 울먹거리는 것을 참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아빠는~ 항상 언니가 제일 불쌍하다고, 미안하다고, 나보고 언니를 데리고 내려오라고 그랬는데 언니한테 차마 그 이야길 못했어. 언니가 내려오면 또 아빠는 언니만 끼고 살 테니까. 미안해! 언니~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내가 어떻게 해서라도 언니를 데려오는 건데 그랬어. 정말 미안해!”

“아니야! 어차피, 내려오고 싶지 않았어. 미안해할 필요 없어! 괜찮아! 다 언니 잘못인 걸.”


아버지 홍명덕의 상여는 엄마의 묘가 있는 장복산의 양지바른 언덕으로 향했다. 지유는 엄마의 꽃상여 행렬을 따라가던 그날이 기억났다. 울며불며 어떻게 그곳까지 갔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질 않았는데 아버지의 상여를 따라가면서야 삼십 년도 훌쩍 넘어버린 잊힌 옛 기억이 투명하게 되살아났다. 그런데 이제는 엄마의 꽃상여 길에서처럼 눈물이 쏟아지지 않았다. 상여 길은 거의 변함이 없었다. 그저 달라진 것이라면 엄마 대신 아빠의 상여라는 것과 형제들이 모두 나이가 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진수는 묘소 아래쪽 둔치에서 홍명덕의 이불과 옷가지들을 태우고 있었다. 진수가 자처했던 것이다. 진수는 할아버지 묘가 안장되는 것이 보이는 아래쪽 둔치에서 검은 연기를 날리며 할아버지 흔적을 하늘 높이, 멀리멀리 날려 보내고 있었다. 지유의 눈엔 진수가 외할아버지와의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홍명덕이 사라진 고향집, 형제들은 누구도 새엄마를 모시려 들지 않았다. 새엄마가 친엄마의 빈자리를 대신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을 형제들 모두 잘 알고 있었지만 부양하는 것까지는 마음을 열지 못했다. 지유 역시도 형제들과 다르지 않았다. 새하얗게 늙어버린 새엄마는 근처의 조그만 집으로 짐을 꾸려 이사했다. 지유는 새엄마가 너무 불쌍했지만 저로서도 모시지 못하는 것이 아쉽기만 했다.

아버지의 유산은 이미 여섯째이자 첫째 아들인 지행이 많이 소진해 버린 상태였다. 그래도 아직 많은 재산이 남아 있었고 형제들은 다툼 없이 유산을 분배했다. 지유는 고민 끝에 아버지 유산을 상속받지 않기로 작정하고 형제들에게 알아서 나눠 가지라고 통보했다. 아버지에게는 죄인 같은 맘이 가득했던 지유는 아버지가 남긴 유산을 받는 것이 탐탁지 않았다. 적어도 다른 형제들은 아버지를 모시며 살아왔지만 지유는 십 년이 넘도록 직접 찾아온 적이 없었으니 유산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물론 현실적인 부분을 생각한다면 받는 것이 바른 선택이었다. 형제들은 지유의 결정을 꺾지 못했다. 한번 마음을 먹고 나면 어지간해서는 마음을 바꾸지 않는 지유의 고집스러운 마음을 돌려놓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형제들은 잘 알고 있었다.

진해 고향집에서의 마지막 밤. 몇 년 만에 정미소가 지유의 꿈에 나타났다. 아버지 홍명덕과 함께였다.

“여보! 아버지를 부탁해요~ 아버지! 진수 아빠를 부탁해요.”

홍명덕과 정미소는 지유의 꿈속에서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는 듯했다. 지유는 꿈속에서조차 아버지의 마지막 한마디를 들을 수 없었다. 그들은 지유가 내민 손을 잡아주지도 않았다. 다음날 아침, 지유는 엄마의 그네가 없어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지난 태풍에 나무가 쓰러져 죽어버렸다고 했다. 이제는 아빠의 집 어디에도 엄마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엄마가 키우던 화단에 있던 문주란도, 행운나무도 이제는 모두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엄마의 나무 의자도 없었다. 단지 대문 옆에 있는 나이가 많아 돌배조차 잘 열리지 않는 돌배나무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오로지 돌배나무만이 그들 가족의 평생을 지켜보며 묵묵히 그 자리에 있었다. 지유의 고향집에서 가장 가치가 없어 보였던 돌배나무는 변함없이 지유를 맞아주었다. 담벼락을 넘긴 돌배나무의 가지에 열린 돌배는 동네 아이들의 간식거리였다. 형제들을 기다리던 연인들은 집 안을 훔쳐보기 위해 담장 너머로 가지를 뻗은 돌배나무를 의지했었다. 게다가 대문을 드나들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곳이 지유의 집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마스코트 같은 상징이기도 했다. 지유의 엄마가 집을 떠나는 마지막 길도, 아버지 홍명덕이 떠나던 길도 돌배나무는 같은 모습으로 배웅했다. 돌배나무는 지유의 고향집에 터줏대감이자 집안의 길흉화복을 모두 지켜봤던 장승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홍명덕이 세상을 떠난 후 만 이 년이 지나지 않아 새엄마 역시 세상을 떠났다. 새엄마의 장례는 간소하게 진행되었다. 새엄마의 사랑을 먹고 자란 막내는 그래도 아빠 곁에 모시는 게 낫지 않겠느냐 했지만 다른 형제들은 절대 그럴 수 없다며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결국 새엄마의 묘소는 홍명덕 부부의 묘 근처에 마련했다. 지유는 김선명과 재혼을 했다면 지금 같은 경우가 자신에게도 벌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재혼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유의 고향집은 재개발로 인해 강제수용될 상황이 되었다. 형제들이 모두 모여 대책을 강구했지만 별다른 대책은 없었다. 장고 끝에 결국 고향집을 추억 속에 남기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났다.

“대문 옆에 있는 돌배나무를 뽑아서 장승으로 만들자. 나는 돌배나무가 엄마 아빠 무덤을 지켜주면 좋겠어. 돌배나무는 우리 추억을 모두 알고 있잖아.”

지유는 돌배나무의 이야기를 형제들에게 설명했다. 형제들 모두 동의했다. 돌배나무는 유명한 조각가의 손을 거쳐 두 개의 장승으로 변신했다.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이 된 돌배나무는 부모님의 무덤 양 옆에서 지유네 가족의 추억을 지켜주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온 지유는 홍명덕의 서재로 들어가 유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서재는 지유와 아버지의 추억이 공유된 곳이었다. 지유는 어릴 때부터 서재에서 아버지에게서 글을 배우고, 아버지의 글쓰기를 도왔었다. 가끔은 아버지 옆에 대자로 누워 아버지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들었고, 서재에 꽂힌 셀 수도 없는 양의 수많은 책을 읽으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 지유는 그곳에서 프랑스 유학을 꿈꿔왔지만 끝내 그 꿈은 이뤄지지 못하고 좌초됐다. 홍명덕이 세상을 떠나고 세월이 그렇게 흘렀어도 서재는 가지런히 정돈된 채로 있었다. 책 위에는 그간의 세월의 흔적과 아버지가 떠난 후 이 년간 쌓인 먼지로 가득했다. 막내는 아버지 서재만큼은 그대로 보존하고 싶었다고 했다. 어쩌면 막내 역시 서재에서 기어 다니다 걸음마를 배웠던 것을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지유는 가능만 하다면 아버지의 서재를 그대로 옮겨가고 싶었다.

서재에는 아버지의 오랜 보물들이 뽀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이미 몇 번을 고쳐다 썼는지, 트랜지스터 라디오 케이스는 모양새가 이만저만 아니었다. 배터리는 완전히 방전되었는지, 작동이 되지 않아 지유는 막내에게서 새 배터리를 받아 연결했다. 지지직 거리는 소리가 났다. 아버지의 트랜지스터 라디오는 작동에 이상이 없는 듯했다.

“막내야~ 이거는 누나가 가져간다. 괜찮지?”

“그래~ 누나! 어차피 나도 여기 아버지 물건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어. 그 라디오…… 나도 기억난다. 아버지는 그 고물 라디오가 뭐가 그렇게 좋은지 여태 버리지도 않고~ 내가 아는 것만 해도 네 번은 고쳐다 썼었거든. 아무튼 엄청나게 아끼시던 물건인 건 확실해!”

지유는 트랜지스터 라디오의 다이얼을 돌려 주파수를 맞춰보았다. 요즘 라디오들처럼 좋은 음질은 아니었지만 작동만큼은 멀쩡한 것이 아직 십 년이라도 더 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지유는 어릴 때처럼 뒤로 벌렁 눕곤 이내 눈을 감았다. 마치 아버지 홍명덕이 옆에서 글을 쓰고 있을 것만 같았다. 서재는 그런 추억이 남아 있는 곳이었다. 한참이 지나 다시 일어선 지유는 책장을 뒤적였다. 어렸을 때 읽었던 책도 보이고 지유의 일기장도 보였다. ‘아버지는 내 일기장도 가지고 계셨구나.’ 지유는 떨리는 가슴으로 일기장을 펼쳤다. 일기장 속의 지유는 진수, 명수의 어릴 때처럼 순진하고 순수했다. 지유의 일기장 옆에는 홍명덕의 일기장도 있었다. 사고가 나던 전날까지도 일기를 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무려 팔십여 권은 되어 보였다. 거의 일 년에 한 권씩은 쓴 것이다. 그 옆에는 홍명덕의 보물상자가 있었다. 보물상자는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열쇠의 행방을 찾아 뒤적거리자 막내가 아버지 열쇠 꾸러미를 찾아들고 왔다. 다행히 홍명덕의 낡은 열쇠 꾸러미 중에 보물상자의 열쇠도 있었다.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아버지의 보물상자. 지유에게 그것은 판도라의 상자였다. 왠지 아버지의 모든 비밀을 하나씩 파헤쳐볼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이 있었다. 자물쇠를 풀고 상자 뚜껑을 열기까지 보물섬의 보물상자를 여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보물상자 안에서 찬란한 금은보화가 나온 것은 아니었지만 아버지 홍명덕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보물이라고 할 수 있었을 만한 것들이 들어있었다. 지유 형제들이 그에게 썼던 편지들과 잡다한 선물, 엄마가 아버지에게 주었을 만한 선물 그리고 정미소가 선물했던 테니스 라켓도 있었다. 엄마가 쓴 편지도 몇 통 보였다. 그중 하나는 정성스럽게 수를 놓은 옥색 비단 봉투에 끈을 달아 만든 것이 어머니의 마음이 그대로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지유는 우선 비단 봉투를 열어보았다. 편지의 내용은 결혼 후 첫 번째 아버지 생신 때 쓰신 편지였다. 한자와 구식 한글을 섞어 쓴 편지는 지유가 보기에도 간지러운 느낌이 가득했다. 아빠의 트랜지스터 라디오는 아빠의 첫 번째 생일에 엄마에게서 받은 선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고물 라디오를 끝까지 고치고 고쳐서 썼던 이유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기 전, 지유는 엄마와 아버지의 추억이 남은 것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트랜지스터 라디오에는 지유가 함께 공유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유는 아버지의 보물상자 속 그 무엇보다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가장 중요한 보물처럼 느껴졌다.

지유는 형제들의 동의를 얻어 아버지 일기와 보물상자를 가져가기로 했다. 아버지의 재산에는 전혀 관심도 없던 지유는 아버지 보물상자와 일기만큼은 욕심이 생겼던 것이다. 형제들 역시 마찬가지였겠지만 지유는 아버지를 영원히 추억하고 싶었다. 아버지와 함께하지 못했던 십 년이라는 시간을 아버지의 일기 속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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