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배나무집 셋째 딸 Vol.25
바지락 농사가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다. 이제 한 달가량 바지락을 캐고 나면 고추 농사에 전념해야 한다. 지유의 생활비는 당분간 바지락을 팔아서 벌어들인 수익으로 충당할 수 있다. 고추 농사가 잘되면 뙤약볕에 말린 태양초 고춧가루를 팔아서 긴 겨울을 날 계획이다. 정성 들여 키워 꼼꼼하게 말린 지유의 고춧가루는 지인들에게서 인기가 좋았다. 모두들 지유의 고춧가루를 사기 위해 미리 예약을 했다. 선금을 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섬에서의 생활은 겨울에 훨씬 바빴다. 매서운 바람이 불고 발가락이 떨어져 나갈 것처럼 추운 날에도 물 빠진 바닷가에 나가 굴을 깠다. 물이 많이 빠진 날 나가야 더 많이 캘 수 있었다. 원래 섬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손도 빠르고 어느 위치에 좋은 굴이 많은지 알겠지만 지유는 그렇지 못했다. 그들도 나름의 생계 수단이기에 외지에서 들어온 지유에게 정보를 공유하지 않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텃세를 뚫는 게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섬에 정착하기 전 지인들을 통해서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직접 부딪치고 보니 상황은 달랐다. 그래도 지유는 그들과의 유대관계에 소홀하려 들지 않았다. 게다가 지유는 지금이야 젊고 기운이 있어서 다행이지만 나이가 들어 힘이 줄면 수입도 줄어들 것을 알고 있었다. 힘 있을 때 벌어놔야 한다는 강박증도 뒤따랐다. 봄에는 자투리 시간이 날 때마다 산에 가서 고사리를 꺾고 둥굴레를 캐서 말렸다. 수확량이 많지는 않았지만 가계에 약간의 도움이 되어주었다. 여름이면 빈 방에 민박을 줘서 간간히 오는 손님을 받아보았지만 여름 내내 백만 원도 채 벌어들이지 못했다. 그보다 장사가 목적이 아닌지라 민박 손님에게 받은 돈보다 퍼주는 게 더 많았으니 사실상 적자나 마찬가지였다.
봄볕이 따스한 날이었다. 밭에서 일을 하고 들어와 샤워를 하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지유는 물기 젖은 몸으로 전화를 받으러 나갈까 고민하다가 다시 걸려오겠지 싶어 받지 않았다. 그런데 전화벨은 끊기지 않고 계속 울려댔다.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하는 것을 느꼈다. 익숙한 느낌이었다. 지유는 얼른 물기만 닦아내고 거실로 뛰어나왔다. 하지만 전화벨이 끊어졌고 다시 전화가 걸려올까 싶어 전화기 앞에서 몇 분을 기다렸다. 불안한 느낌은 가시지 않았다. 남은 샤워를 마치고 나와 잡일을 하는데 삼십 분쯤 지나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지유는 빠른 걸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지유야~ 어디 갔었어? 큰아들한테 전화 왔었어. 빨리 전화해 봐! 뭔지 모르겠지만 엄청 급한 일 같던데.”
동네에 가깝게 지내는 동갑내기 친구였다. 지유는 전화를 끊고 진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계속 통화 중이었다. 지유는 불안한 마음이 가득하고 답답했다. 자꾸만 하지 말아야 할 상상을 하는 자신을 떨궈 내기가 쉽지 않았다. 이상하게 가슴이 먹먹한 느낌이 들었다. 몇 번을 시도한 끝에 진수와 통화를 할 수 있었고 수화기 너머로 전달되어 온 진수의 첫마디에서 변고가 생긴 것을 직감했다. 지유는 제발 명수 일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랐다.
“진수야. 무슨…… 일이니?”
지유는 크게 숨을 쉬고 최대한 침착하게 말했다.
“엄마. 놀라지 말고 들어.”
“뭔데? 혹시 명수에게 무슨 일 생긴 건 아니지?”
“아니야. 엄마! 침착해야 해!”
“알았으니까~”
“엄마!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어! 엄마가 연락이 안 된다고, 나한테 전화가 왔어……”
진수의 말에 지유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분명 머지않아, 언젠가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접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건강하기만 했던 그의 사망 소식은 예상보다 너무 일찍 닥쳐온 것이다.
지유는 인천에 사는 남동생 지행의 차를 얻어 타고 진해로 떠났다. 진수와 명수는 기차를 타고 진해로 출발했다. 거의 십 년 만에 찾아가는 고향이다. 지유는 자신의 삶이 먹고사는 데 부대껴서이기도 했지만 부모와 형제들에게 망가진 자신의 삶을 보이는 게 싫어서 고향집에 가는 것을 꺼려왔었다. 그런 지유를 다시 진해로 불러들인 건 아버지 홍명덕의 죽음이었다. 어쩌면 지유를 진해로 불러들일 수 있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지유를 서울로 보낸 사람도 아버지 홍명덕이었고 다시 진해로 불러들인 사람 역시 그였다. 다행히도 형제들 대부분이 진해와 창원, 마산, 포항에서 살고 있었다. 지유는 그가 지유가 곁에 없어도 외로움을 느끼거나 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새엄마도 있었으니까. 지유는 가끔씩 전화를 통해 음성으로 아버지를 만난 게 전부였지만 언제나, 언제나 목소리에서 그의 건강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유는 지행에게서 그의 사인을 들었다. 아버지는 오토바이를 타고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 교통사고를 당해 뇌진탕으로 사망한 것이라고 했다. 정미소와 같은 사인이었다. 뇌진탕! 지유는 그 세 음절의 글자가 가슴을 후벼 파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는 정미소를 매우 좋아했다. 무뚝뚝한 편인 아버지와는 달리 항상 유쾌하고 유머감각이 뛰어난 정미소는 언제나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게다가 아버지의 테니스 파트너를 하고, 학교 선생님들은 물론 타 학교 교장 모임에서도 사위 정미소를 자랑스러워했었다. 테니스로 연결됐던 그들은 죽음에서도 뇌진탕이라는 같은 사인으로 연결된 것만 같았다.
“큰 누나가 그러는데 아버지 유언이 있었대. 아버지는 계속 누나만 찾으셨대. 누나만…… 의식이 돌아오신 것도 아주 잠깐이었는데 아버지는 누나 생각만 나던가 봐! 보고 싶긴 하셨을 거야! 누나~ 거의 십 년은 됐지? 진해 다녀간 지가 말이야.”
“그러고 보니까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본 게 벌써 육 년은 된 것 같다.”
지유는 아버지 홍명덕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죄스러웠다.
“그래도 누난 행복한 거야. 아버지가 누나만 생각해 왔었다는 건 우리도 다 알고는 있었어. 하지만 무의식 중에서도 아버지한테는 누나밖에 없었던 거잖아.”
“그러게~ 이렇게 갑자기 돌아가실 줄 알았다면 미리미리 찾아뵀었어야 했는데…… 늦었지만 너무 후회스…….”
지유는 말을 잇지 못했다. 진해까지 가는 내내 지유는 울컥거리다 못해 목이 메어 통증이 느껴졌다. 멀미가 나는 것인지 두통까지 겹쳐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지유의 두통은 진해까지 가는 내내 지속되었다. 그 때문에 휴게소만 해도 여섯 번을 들러야 했다. 휴게소 화장실에서 구토를 하던 지유는 참았던 슬픔과 두통의 고통이 겹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눈물은 한동안 멈추지 않았다. 토사물을 타고 내장이 거꾸로 다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속을 다 뒤집어 놓으면 조금이라도 마음이 놓일 것 같아서였다. 지유는 아버지에게 미안한 마음을 삭힐 수가 없었다. 게다가 후회되는 마음도 이미 돌이킬 수가 없다는 현실이 지유를 더욱 괴롭게 했다. 갑자기 망망대해를 건너 보이지도 않는 곳으로 멀리 떠나가버린 아버지가 마냥 보고 싶었다. 지금껏 지유는 한 번도 아버지를 잊은 적이 없었지만 한동안 아버지의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도, 사랑도 이제는 후회만 남아 버렸다. 이제는 ‘아버지!’라고 불러볼 수도 없고, ‘지유야~’라고 지유를 찾던 아버지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이 가슴을 후벼 파는 것처럼 아프고 서글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