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배나무집 셋째 딸 Vol.27

by 루파고

지유는 소망하던 전원생활에서 욕심 없이 소박하게 살고자 했지만 삶은 지유를 그대로 두지 않았다. 지유는 진수의 간곡한 부탁으로 인천의 아파트와 시골집 두 채를 담보 잡혀 주었고, 진수의 사업은 보란 듯이 망해버리고 말았다. 어쩔 수 없이 지유는 짧은 섬 생활을 접고 지인의 소개로 강원도 평창의 폐가를 얻어 이사했다.

그렇게 보낸 평창에서의 겨울은 이번이 벌써 다섯 번째였다. 평창의 겨울은 예상보다 춥기만 했다. 시월부터 추워지기 시작해서 이듬해 사월까지 매서운 겨울이 이어졌다. 체감적으로는 오월까지 겨울이나 마찬가지였다. 십이월부터 이월까지는 어디에서도 느껴본 적 없던 시베리아 같은 추위를 견뎌내야만 했다. 수리했다고는 하지만 말 그대로 폐가나 마찬가지였다. 살면서 조금씩 고쳤지만 여름이면 천장에서 물이 새고 겨울엔 찬바람이 들어왔다. 전기 패널로 난방시설을 만들었지만 엉덩이만 뜨거울 뿐인지라 대낮에도 두꺼운 점퍼를 입고 있지 않으면 버텨낼 수가 없었다. 진수가 사다 준 화목난로는 나무를 계속 때어 주어야만 난방 유지가 됐다. 그것도 나무가 많이 들어가면 너무 더워져 온도 조절이 어렵고 매캐한 탄 냄새가 온 집안을 장악했다. 강원도 사람들의 인심은 섬사람들보다 차가웠다. 지유는 무려 일 년이 넘어서야 이웃들의 마음을 열 수 있었다.

강원도에서의 생활이 사 년째 접어들던 해에는 진수는 명절에도 찾아오지 못할 정도로 형편이 좋지 않았다. 지유는 진수의 아이들이 보고 싶었지만 진수의 집까지 다녀오는 것도 탐탁지 않았다.

지유의 강원도 생활이 시작된 후로 좋아진 것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진해에 사는 형제들이 가끔 지유의 집으로 왔다. 인천보다 평창까지 오는 게 빠르고 편하다고 했지만 지유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노년기에 접어든 형제들은 지유의 삶에 간섭을 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형제들은 어떤 방법으로도 지유의 마음을 돌려놓을 수는 없었다. 고향에 집을 마련해 줄 테니 내려오라는 제안도 거절했다. 그렇다고 돈을 쥐어 주어도 받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형제들은 지유가 경작한 농산물과 산에서 캔 약초들을 사 가지고 갔다. 지유가 인정하는 건 딱 거기까지였다.






하늘은 파랗고 깊어 보였다. 구름은 하얗고 높았다. 하늘 위엔 어디론가 잽싸게 날아가는 새떼가 보였다. 그 뒤로는 송골매 두 마리가 새떼를 쫓고 있었다. 송골매 한 마리가 갑자기 하늘 위를 선회하더니 낮은 구름 위에 선 사내의 어깨 위로 내려앉았다. 구름 위의 사내는 아버지 홍명덕이었고 그의 어깨에 앉은 송골매는 지유의 엄마였다. 하늘 위에 남은 송골매는 홍명덕 주위에서 빙빙 돌며 내려오지 못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지유를 보며 웃었다. 아버지는 삼십 년 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지유가 서울로 떠나던 날, 그날의 아버지였다.

“사랑하는 지유! 우리 지유! 힘들지?”

“네~ 아버지. 너무 힘든데, 힘든 모습을 보이고 싶지가 않아요.”

“그래~ 넌, 강한 녀석이니까! 이젠 힘들면 내려놓아도 돼! 그동안 넌 충분히 했어. 이젠~ 힘들면 내려놓아도 돼!”

엄마 송골매는 길고 화려한 날개를 펴서 푸드덕거리며 말했다.

“지유! 내 딸! 그만 힘들어해도 돼! 너의 아들 진수도 널 닮아서 어깨가 무거운 거야! 제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게 한스러운 거야! 사랑한다!”

지유 엄마 송골매는 다시 하늘로 날아올랐다.

“아버지가 너에게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 결국엔 너와 진수에게 한이 되었구나. 미안했다! 지유도, 진수도 이젠 모두 내려놓아야만 해! 꼭 그래야만 해! 네가 행복해야 우리도 편안하게 지낼 수 있을 거야. 저 위에 니 남편 봐라! 미안해서 네게 다가서지도 못하고 있잖니? 네가 행복하게 살아야 해!”

지유가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지만 아버지 홍명덕은 하늘 위에 걸친 구름을 타고 걸어 사라져 갔다. 지유는 그저 아버지의 뒷모습만 바라볼 수 있었다. 엄마의 송골매도 정미소의 송골매도 보이지 않았다.






인천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멀미를 하던 지유는 저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가 깊은 꿈을 꾸었다. 지유는 너무 울어서 얼굴이 눈물범벅이었다. 꿈속에서 울고 있는 줄로 알았던 것이 실제였던 것이다.


진수의 사업이 힘들어져 지유의 아파트와 섬에서 새로운 삶을 찾게 해 준 집까지 팔아버리게 되었을 때 주변에 남의 말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랬다.

“그 녀석, 그럴 줄 알았어~”

그러나 지유도, 진수도, 명수도 진수 사업이 그럴 줄 알고 그러지는 않았었다. 그저 운명에 충실했고, 감정에 충실했을 뿐이었다. 지유는 울부짖었다.

나도 내 인생에 충실했을 뿐이야. 나도, 누구도, 내 인생도, 내 아이들 인생도 그럴 줄 알았을 수가 없어! 너희들의 인생도 니들이 그렇게 살 줄 알았냐? 그 누구도 그럴 줄은 본인도 누구도 모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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