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수의 뇌진탕

돌배나무집 셋째 딸 Vol.28

by 루파고

터미널에 도착하자 명수가 마중 나와 있었다.

“명수야. 니 형은?”

지유는 명수를 보자마자 진수의 상태부터 물었다.

“엄마! 형이 자살을 시도했어. 그 미친놈이~ 차라리 죽어버리기라도 하지. 의료보험도 안 되고, 보험도 하나 없는 놈이 왜 살아나서 가족까지 힘들게 하는 건데……”

명수는 화가 나서 중얼거렸지만 진심은 아니었다. 진수의 소식에 충격도 많이 받았지만 아무런 의료혜택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된 게 더 답답한 것이다.

“명수야. 그래서~ 니 형이 지금 어떤 상황인데?”

지유는 속이 탔다.

“절벽에서 투신했대. 머리가 깨졌어. 아빠처럼…… 뇌진탕이래. 죽으려면 깨끗하게 죽지. 왜! 미친놈이~”

지유는 뇌진탕이라는 단어에 어지러움을 느끼며 쓰러질 뻔했지만 명수가 냉큼 잡아주었다.

“그래서~ 지금 어떻냐고!”

“그래도 형은 아직 죽을 때는 아닌가 봐. 머리뼈만 깨진 상태래. 뇌는 전혀 이상 없지만 전날 과음이 심해서 지금은 수술할 수가 없대. 의식은 있으니까 걱정은 안 해도 돼!”

진수가 응급차로 실려간 병원은 정미소가 뇌진탕으로 두개골을 열고도 고치지 못했던 곳이었다. 의식이 살아있던 진수는 그곳에서 죽을 수는 없다며 다른 병원으로 보내주던가 그냥 혼자 죽게 내버려 두라고 소동을 피웠다고 했다. 그래서 결국 다른 병원으로 이송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엄마! 이거~”

명수는 지유에게 봉투 하나를 건네주었다. 풀로 봉해져 있는 편지 봉투 겉에는 유서라고 쓰여 있었다. 아래에는 엄마에게 라고 쓰여 있었다.

“엄마한테 쓴 유서 같아서 뜯어보지는 않았어.”

명수는 유서의 내용이 궁금한지 지유에게 뜯어서 보여달라고 졸랐다.

“그런데, 니 형이 왜 자살까지 시도한 거니? 대체 무슨 일이야?”

“사실 엄마한테는 끝까지 알리지 않으려고 애썼어. 몇 년 전부터 형이 다시 사업을 시작했어. 항상 생각이 팔랑거리니 직장생활이 분에 안 찼겠지 싶어. 분명 걱정할 거니까 엄마에게는 말하지 말라고 했고. 형도 엄마 집 날려먹은 죄가 있으니 엄마가 아는 게 껄끄러웠겠지. 아무튼 회사가 부도나면서 문제가 좀 커졌나 봐. 그리고 많이 힘들었던 모양이야. 나한테도 한 번도 도와달란 말이 없었고…… 힘들다는 말도 해본 적 없었어. 형 성격상 사람들한테 힘든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아니고, 형수하고도 사이 나빠진 건 이미 오래됐으니까 엄마도 잘 알고 있을 거고……”


진수가 남긴 봉투 겉에는 이런 글이 쓰여 있었다.

<깨우쳤을 땐, 다 흩어져 버리고 없었다. 그저 아련함 뿐이었다.>


봉투 안에는 두 장의 종이가 더 들어 있었다. 진수의 심경이 드러나는 진수의 글이었다. 지유는 진수의 글을 읽으며 혼자 끙끙거리며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차츰 잊고 싶어 진다.

차츰 잊혀 간다.

사람도 잊고, 추억도 잊고, 성도 잊고, 이름도 잊어간다.

미치도록 그리웠던 마음이 그 언제였던가?

서글프도록 아련했던 마음이 기억나지 않는다.

눈물 쏟아지게 울어봤던 적이 언제였던가?

가슴속 깊이

슬픔을 달래던 느낌이 기억나지 않는다.

스스로가 귀찮아지고

미련도 사라져 간다.

모든 게 귀찮아질 그때

나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어느 세상에나 있을 그것인가?

몸도 울고, 가슴도 울고, 기억도 울어버릴

그때가 머지않았을 수도 있겠다.

귀찮아진다.

심약해진다.

포기하고 싶다.

희망도, 욕심도, 미련도, 사람도

부질없는 나 혼자만의 부르짖음.

그 누구도 듣지 않는 처절한 절규.

그것이 아니면

세상을 향한 비웃음이리라.



인생은 장기판과 같다.

무리수를 두면 큰 피해로 다가온다.

예측을 한 무리수는 감당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아니한 경우에는 망하고 만다.

팔 하나 내어주고 목을 따는 장수처럼,

큰 결정을 해야 할 때에는

욕심을 버릴 때 승부가 결정 난다.

지금의 나는 무엇인가

하나를 버려야 할 때.

무엇을 내어 줘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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