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배나무집 셋째 딸 Vol.29
진수는 아직 깨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위독한 상태가 아니라는 소식에 지유는 한숨을 돌리기는 했다. 하지만 자살까지 생각했고, 그것을 실행까지 옮긴 진수가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지 애처로웠다. 게다가 그것을 자신에게까지 숨겨가며 그 어려움을 어떻게 참아내었는지 잠들어 있는 진수가 너무 불쌍해 보였다. 명수의 말대로 의료보험 혜택도 받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면 자살까지 생각했었는지 이해되지 않는 것만은 아니었다. 누구에게도 입 밖에 낸 적 없었지만 지유 역시 진수와 명수를 키우며 자살을 상상해본 적이 있었다. 두 아들이 잠든 모습을 보며 밤새 눈물을 흘렸던 날도 있었다. 정미소에 대한 그리움이 하염없이 사무쳤던 밤이다. 지유에겐 갱년기가 너무 일찍 찾아왔다. 남들보다 십 년은 이른 것 같았다. 정미소를 잃은 지유는 마음의 벽을 닫았고 그것은 결국 여자로서의 생식 활동마저 멈추게 만들었다. 이른 폐경이 그 증거였다. 지유는 당시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으로 밤새 아이들의 잠든 모습을 지켜봤었다. 지유는 차마 두 아들을 세상에 던져두고 떠날 자신이 없었다. 만약 의지가 조금만 더 약했더라면 어땠을까, 지유는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진수에게 자신감을 잃지 않기를 기도했다.
새벽 동이 트기 한참 전에야 진수는 의식을 회복했다. 지유는 약 삼십 년 전 뇌진탕으로 머리에 붕대를 칭칭 감아 맨 채 병상에 누워있던 정미소의 모습이 오버랩됐다. 마치 그날 정미소를 지켜보던 기분이 영화처럼 다시 재생되는 것처럼 생생했다. 지유는 이불속에서 진수의 손을 꺼내어 잡았다. 진수는 그런 지유를 인지했는지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진수야~ 니 아빠 죽던 날도 꼭 오늘 같았어. 넌 기억이 잘 안 날 수도 있을 거야. 그때 엄마가 이렇게 아빠 손을 꼭 잡아주었어. 아빠가 뭐라고 그랬는지 모르지? 아~ 니 아빠는 참 용기 있는 사람이었어. 어떻게 죽음 앞에서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던 걸까? 삼십 년을 생각해왔어. 니 아빠는 죽기 전에 너희들을 부탁한다고, 사랑한다고 말하곤 엄마가 끓여준 만둣국이 먹고 싶다고 하더라. 엄마는 너희들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왜 엄마가 아빠 기일만 되면 꼭 만둣국을 끓이는지 알겠지? 진수야~ 엄마가 왜 니 아빠를 선택한 줄 아니? 서울에서 처음 데이트하던 날이었어. 엄마는 니 아빠가 종로에 있는 파고다 공원에서 제일 고수라는 할아버지하고 장기를 두는 모습을 보고 결정했어. 불과 십삼 년 동안 뿐이었지만, 너희 아빠하고 정말 행복했었다. 아마 니 아빠가 아니었다면, 엄마는 프랑스 유학을 포기한 것을 평생을 두고두고 후회하며 살았을지도 모르겠어. 그게 사랑의 힘이 아닐까 싶어. 진수야! 힘내야 해! 니 아빠는 정말 강한 남자였어! 그리고 너는 니 아빠를 그대로 빼다 박았고…… 실수? 그런 건 누구나 해! 실수 몇 번 했다고 포기하면 안 되는 거야!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매도하고 욕을 해대더라도 나 자신만 똑바로 면 되는 거야. 실수한 게 있으면 바로 잡으면 돼! 세상에 실수 안 하는 사람도 없고 완벽한 사람은 더더욱 없어. 산에서 사고로 죽었다는 후배를 생각한다면 절대로 이런 일은 없어야 돼! 엄마는 너희들에게 해준 게 너무 없지만, 있다고 해도 모두 아깝지가 않아. 후회되는 게 있다면 더 좋은 길, 바른 길로 인도하지 못한 걸 거야. 진수 너도 니 가정이 있잖아. 자살 같은 건 정말 비겁한 거야. 엄마에게 미안할 게 있다면, 니 새끼한테 그만큼 잘해주면 되는 거야. 엄마는 그거면 충분히 행복해. 오는 길에 엄마가 잠시지만 정말 깊고 긴 꿈을 꿨어. 진수 니가 좋아하던 외할아버지께서 꿈에 나와서 그러시더라. 내려놓으라고~ 그 말 뜻은 더 설명하지 않아도 될 거야. 그냥, 내려놓자. 니가 쓴 글처럼 말이야. 그리고 진수 니 글 보면 너는 니 아빠하고 엄마의 아빠를 동시에 닮았어. 그래서 진수가 엄마 아들인 거야. 진수야!”
지유는 진수의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엄지손가락으로 훔쳐 내며 말했다.
“진수야~ 정말 힘들 땐 엄마가 있잖아. 왜 니가 혼자라고 생각하는 거야? 힘들 땐 언제나 엄마를 찾아와도 돼! 아빠가 그토록 먹고 싶었다는 따끈한 만둣국에다가 엄마랑 소주 한잔 하면 어떨까?”
하얗게 부서지는 바다. 수평선이 보이는 동해바다를 끌어다 숨어버린 강릉의 외딴 바닷가 주문진이다. 바다에 닿을 듯 말 듯 애처롭게 선 빨간 등대가 바닷가 하얀 집을 지켜주듯 자리 잡고 있다. 허름해 보이는 건물에는 예쁜 간판 하나가 새로 걸렸다. 간판에는 <미소만두>라고 적혀 있다. 주변에 번듯한 건물 하나 없이 한적한 바닷가임에도 불구하고 유난히 주차된 차량들이 많다. 미소만두를 찾은 손님들의 차량들이다. 삼십 평도 채 되지 않아 보이는 작은 식당 앞마당에는 수십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플라스틱으로 된 대기표를 하나씩 쥐고 있다. 그들의 표정은 기대로 가득 차 있다. 미소만두는 지유와 진수가 새로 개업한 식당이다. 식당을 열고 만 사 년 만에 강원도에서 유명한 맛집으로 소문이 났다. 지유의 만두는 이북에서 내려온 시어머니에게서 전수받은 함경도식 만두였다. 미소만두에서는 군만두, 물만두, 찐만두 세 가지를 팔고 있었다. 지는 걸 유난히도 싫어했던 지유는 만두피를 잘 빚지 못한다는 시어머니 핀잔을 듣기 싫어서 명절이 오기 전에 몇 달씩 연습했었다. 시어머니를 넘어선 실력은 미소만두에서 신들린 솜씨로 손님들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들었다. 신기에 가까울 정도의 만두피 빚는 지유의 손놀림에 감탄해 마지않았던 진수의 제안으로 시작된 것이다. 미소만두에서 판매하고 있는 만두는 시어머니에게서 배운 만두를 지유 나름대로 변형을 가해 새로 개발했다. 지유의 만두는 언제 또 만두를 빚을 계획이냐는 이웃들의 질문이 쇄도했었다. 언젠가 진수는 그런 지유의 만두를 상품화하고 싶었다. 진수는 모든 것을 내려놓으라는 엄마의 한마디에 성공을 향한 뭔가 끝도 답도 없는 것을 살며시 내려놓았다. 그리고 진수는 지인이 소유하고 있던 강릉의 바닷가의 폐가가 되다시피 한 식당을 빌려 만두 가게를 연 것이다. 진수는 식당 운영을 준비한 후 평창의 지유를 강릉의 외딴곳에 보금자리를 옮겼다. 지유는 빨간 등대가 보이는 아름다운 바닷가를 매우 만족해했다. 해수욕장도 멀고 바닷가 주변에는 인가도 많지 않아서 좋았다. 그곳 앞바다는 어청도의 바다색과 비슷했다. 식당을 운영하기에는 그야말로 최악의 조건이었지만 진수는 자신이 있었다.
얼마 전 진수는 지유만의 삶을 누릴 수 있는 조그만 단독주택을 지었다. 삼백 평 남짓한 텃밭이 딸린 집인데, 진수가 직접 구들을 놓아 황토 찜질방도 만들었다. 돌아오는 가을이면 지유의 프랑스 유학이 기다리고 있다. 불과 삼 개월짜리 유학이지만 지유는 패션 대신 요리 공부를 하러 가기로 계획이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