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내미가 독립을 했습니다
얼마전에 트위터에서 자식 대학 등록금 463만원을 빚을 지지 않고 낼 수 있었다고, 하지만 덕분에 명절에 부모님께 적게 돈을 드릴 수 밖에 없었다는 트윗을 보았다. 이 말을 와이프에게 했더니,
"(등록금이 그정도 밖에 안나온 걸 보니) 자식이 좋은 학교 다니네."
이미 딸내미 예원 시절 친구들의 대학교 생활에 대해 그 부모님들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어왔기 때문에, 한국에서 자녀들을 대학에 보내는 것부터 대학 교육을 받게 하는데 얼마나 많은 돈과 노력이 필요한지 누구보다 잘알고 있다. 대학교까지 겨우 보내놓아도 미래에 대한 확실한 보장이 없음에도 여전히 많은 금전적인 부담을 짊어지어야 하는것이 한국 부모들의 현실인 것이다. 예전 와이프의 동네 친구들은 이제서야 겨우 자녀들이 중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보니, 예전에 우리가 딸내미 뒷바라지를 하며 고생했던 이유를 뒤늦게 깨닫는 중이다.
며칠후 딸내미가 학교에서 돈내라고 했다고 카톡을 보내왔다. 이전처럼 학교에 내야되는 돈은 300유로가 안되는 금액이었는데, 벌써 4학기 것이라고 한다. 독일 대학은 학점을 못채우면 한 학기씩 늘어나는 방식인데 다행히 아직까지는 학점을 모두 채웠다고 한다. 3학년부터는 업체에서 실무 인턴쉽을 시작하는듯 하고, 학교에서는 취업을 하든 창업을 하든 다양한 선택지에 대해서 충분히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한다. 알려준 계좌로 송금을 하고, 송금 영수증을 딸내미에게 이메일로 보내주며 등록금 300만원 송금 완료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지난달에는 일년전에 신청한 기숙사 (임대업체가 지어 학교와 계약을 맺고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원룸)에 입주 결정이 되어 딸내미가 그렇게 원하던 독립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와이프는 벌써부터 걱정이 태산같고 20년 넘게 뒷바라지를 했던 딸내미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는 듯했지만, 독일처럼 성인이 되면 대부분 독립을 하는 문화 속에서 일찍 독립하면서 스스로 보고 느끼면서 배우는 것이 딸내미의 장래를 위해 도움이 될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기숙사라고 해서 임대료가 아주 싼편은 아니지만, 전기료나 난방비등에 나흐짤룽이 없기 때문에 상당히 좋은 조건임에는 틀림이 없다. 보증금은 딸내미가 예전에 6개월간 한식당에서 미니잡으로 일하면서 모은 돈으로 냈다. 이삿짐을 차에 가득 싣고 옮겨주면서 보니, 임대용 목적으로 효율적으로 만들어진 건물이지만 샤워실과 주방이 포함된 원룸 치고는 괜찮아 보였다. 지하에 세탁실이 있는데, 가끔 돈 아깝다며 여행가방에 빨랫감을 가져와서 빨래해가기도 한다. ㅎㅎ
딸내미가 대학을 들어간 이후, 내가 내주는 돈은 학기마다 내는 300유로(약 43만원) 전후의 등록금이 전부이다. 여기에 베를린 ABC 교통권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교통비는 무료(0원)인 셈이다. 다만 저녁 늦게 다닐 경우에는 우버를 타라고 내 신용카드를 등록해주었고, 덕분에 아빠보다 더 우버를 타고 다닌다. ㅎㅎ 기숙사 임대료(약 50만원)는 딸내미의 미니잡 수입(약 78만원)으로 충분히 커버가 가능하기 때문에, 우리가 도와줄 필요가 없는 것은 물론 대학생이 알바를 한다고 해서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열악한 환경에서 고생을 하는 것도 아닌 것 또한 다행인 일이다. 그리고 독일에서는 자녀가 25세까지 취업을 하지 않고 교육을 받는 경우에 정부가 킨더겔트를 주기 때문에, 매월 정부로부터 받는 킨더겔트 250유로(약 36만원)를 용돈으로 주고 있다. 즉, 한국에 비하면 부모가 자녀의 대학 교육을 위해 쓰는 돈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1년에 100만원도 안되는 돈만 학교에 내주면 되다니, 내가 대학교를 다니던 1990년대에도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닌가.
어쨌든 이것도 이사는 이사이니 짐정리를 마친 다음에, 주변 한식당으로 가서 자장면을 주문했다. 아쉽게도 면이 없어서 짜장밥과 짬뽕밥으로 만족해야 했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와이프는 여전히 같은 베를린이라 집에서 다니면 굳이 미니잡을 할 필요도 없이 공부만 하면되는데, 왜 힘들게 기숙사에 들어가서 사서 고생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입장이었지만 딸내미도 이제 성인이니 스스로 내린 결정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그래도 주말마다 집으로 와서 지내기로 했으니, 집 나간 딸내미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우리 강아지에겐 다행이다.
지금 고1인 아들내미가 3년후쯤에는 대학교에 들어가서 역시 독립을 하게 될 것이다. 그때쯤 되면 우리 부부는 굳이 베를린이 아니더라도 상관없으니 살기 괜찮은 동네들을 찾아볼 예정이다. 더불어서 은퇴 이후에 지내기에 좋은 국가나 도시를 찾아다니는 것도 해야 할 것이다. 비록 아이들의 교육과 미래를 위해 독일에 오기는 했지만, 그것을 위해 한국에서처럼 우리 부부가 엄청난 희생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다행이다. 작년에는 일부러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여행을 다녀보았으니, 올해부터는 차분히 아이들 독립 이후 우리 부부의 삶에 대해 계획을 세워봐야겠다. 월요일에 수업없다고 일요일에도 알바하고 집으로 와서 잔 딸내미를 위해, 아침부터 아시안마트에서 장을 봐와 딸내미가 좋아하는 돼지고기 김치찌게를 끓이고 있는 와이프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우리 어머님들의 모습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