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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날의 정원

삶의 여유를 잊은 그대에게






여름날 정원을 방문하다


여름날의 정원은 고요하고 청명했다. 정원이라는 말은 참 개인적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공원은 공공의 정원이다. 누구나 와서 쉬고 즐길수 있는 곳을 의미한다. 하지만 정원이라고 칭하게 되면 아주 사적인 공간으로 변모한다. 집앞에 조그만 정원을 놓고 홀로 즐기거나 지인들과 소소한 만남을 할 수 있는 공간의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원은 누군가의 삶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 인간의 태초적 관음증을 불러일으키는 단어 정원. '다도 박물관'은 정원이다. 시에서 지원을 해주기는 하지만 그래도 개인이 가꾸고 정성스레 만들어온 곳이다. 그래서 더 고요하고 신비스러웠다. 삼복 더위에 찾아간 다도박물관은 인적 하나 없었다. 세상이 멈춘듯 했다. 스치는 바람의 고요한 떨림과 함께 메마른 햇살이 태극기 위로 쏟아진다. 어디선가 거위의 꽥꽥되는 외마디 소리가 들릴뿐이다.   



정원에는 2층 벽돌집이 존재한다. 이 정원의 주인이 사는 곳이다. 주인은 이 넓은 곳에서 살고 있으니 왕후장상이 부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 위로 구름이 미세하게 바람을 탄다. 아름다웠다. 하지만 이 집의 속이 궁금했다. 이 집이 거주공간외에 단체관람시 다도 체험관으로 사용된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폭염을 피해 안쪽으로 걸음을 옮겨보았다. 




내부는 정갈했다. 90년대 중산층이 살법한 공간이었다. CD장이 있었고, 초콜릿색 소파와 검은 그랜드 피아노가 집의 한편을 장식하고 있었다. 넓은 통유리 사이로 짙은 빛이 들어왔다. 그리고 유리 너머에는 아름다운 우리네 정원이 존재하고 있었다.




정갈하게 정리된 다기들이 놓여있었다. 뜨거움이 빠진 빛들이 다기들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그것은 다기들의 농밀한 빛들을 희석시키고 있었다. 다기들에게서는 은은한 묵향이 풍겼다. 그것이 나의 머릿속 향기였는지 기억 속의 향이었는지, 실제 다기의 향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식탁이 있었다. 정갈한 풍의 식탁. 아무도 없는 빈집의 식탁은 시장기를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대신 오래 묵은 그리움이 묻어난다. 의자의 모서리를 만져본다. 손때 묻은 부드러운 모서리는 사람의 온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그리움은 모든 것에서 흘러나왔다.




밖을 걸어 나오니 뜨거움이 빠진 빛들이 다시 열기를 품고 달려든다. 녹색의 빛과 블루톤의 빛이 한꺼번에 시야로 몰려들며 잠시나마 시각적 시원함에 빠진다. 저 멀리 백일 동안만 핀다는 백일홍이 낭창낭창하게 피어있다. 그렇게 여름은 가고 있었다.




그늘 아래에서 잠시 쉬어볼까. 햇살 사이로 나무다리에 그늘이 진다. 아 좋다. 조용하다. 나만 남겨진 느낌.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처럼 나체로 누워 시크하게 알렉산더 대왕을 맞이할 수는 없지만, 잠시나마의 온전한 휴식을 누려본다. 





  키우는 강아지가 새끼를 가졌단다. 오롯이 여섯 마리. 여섯 마리의 똑같이 생긴 녀석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그들만의 왕국을 만들고 있었다. 다들 더운지 혓바닥을 길게 내밀고 어쩌다 한 점씩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맡긴다. 어미개는 연신 새끼들을 보며 낯선 사람을 경계한다. 그래도 너는 마당 있는 집 하나 가지고 있지 않니. 부럽구나.




그렇게 시간이 멈춘 그곳의 방문을 종료했다. 

여름날의 정원은 침묵하는 스콜처럼 그렇게 내 곁을 떠났다.

정원을 나서니 시끄러운 인간세상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다음을 기약하며...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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