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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가 맺어준 인연

남이섬 전명준 사장과의 오찬





며칠 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안녕하세요. 남이섬 고객관리팀장입니다.”


남이섬...

그 아련하고도 켜켜이 기억이 쌓인 장소. 하지만 왜 내게 전화를 걸어왔을까. 난 그곳에서 무단으로 쓰레기 하나 버린 적이 없는데 말이다.


“저희 대표님께서 작가님을 뵙고자 하십니다,”


“네?”


 이야기인즉슨 얼마 전 브런치에 남이섬에 대한 이야기를 2편 정도 연재했던 적이 있었다. 이 글을 우연찮게도 남이섬 대표가 읽게 되었고, 대체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이가 누군지 궁금하여 얼굴을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만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원체 사람을 만나 ‘사는 이야기’를 나누기 좋아하는 탓에 이러한 제안들이 온다면 두 손 들고 만나는 성격인지라 기분 좋게 승낙을 했다. 


 전화를 끊고 이렇게 긴 글과 사진을 온라인상에 올릴 수 있는 플랫폼이 생긴 것에 새삼 감사함이 밀려온다. 아마 이렇게 긴 글을 올리고, 또 누군가 그것을 읽어줄 공간이 없었다면 이러한 행운은 찾아오지 않았을 테니까.


 물론 이러한 경우가 처음은 아니다. 브런치에 올라오는 글을 보고 잡지사에서도 필진 요청들이 들어왔고 책을 내주겠다는 이도 생겼으니 말이다. 하지만 당시 남이섬에 대해 쓴 두 편의 글을 읽어보신 분들은 공감하겠지만 개인적으로 특별한 장소인 남이섬에서의 초청은 그것만으로도 내게 의미가 있었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남이섬을 방문하게 되었다. 가는 길에 김현철의 ‘춘천 가는 기차’를 들으며 액셀을 밟았다. 타고 가는 승용차는 덜컹이는 비둘기호 마냥 설레었다. 도착하니 역시나 이곳은 인파들로 북적였다. 언제나 이 섬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으며, 기분 좋게 내리쬐는 햇살로 풍만했다.   



 10여 분간 배를 타고 섬에 당도하니 말끔한 유니폼을 입은 팀장이 반긴다. 

 팀장의 안내를 받고 도착한 사무실에는 한 남자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170 중반을 넘는 키에 편안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희끗한 반백의 머리는 세월의 기억을 한 움큼 담고 있었고, 반무테의 안경은 학자풍의 예리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하지만 전체적인 인상은 깔끔하고 단정하여 같이 있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매력이 있었다. 바로 전명준 남이섬 사장이었다. 


 서로 통성명을 하고 앉아 달짝지근한 믹스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었다. 그는 남이섬에 대한 글에 대한 인상이 매우 좋았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남이섬에 대한 글은 꽤나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써주고 있습니다. 일주일에도 언론사부터 개인까지 20건에 가까운 글들이 매주 작성되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작가님의 글처럼 서정적이고 남이섬의 정서를 잘 표현했던 글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서정적인 글은 없었어요


 감사할 따름이었다. 요즘엔 내가 사진쟁이인지 글쟁이인지 헷갈리고 있는 시점. 하지만 무엇인가를 짓는(作) 직업을 가진이들이라면 모두 공감할 것이다. 글이나 사진 아니 통칭해서 본인들이 수단으로 삼고 있는 콘텐츠가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감동을 주고, 행복함을 준다라면 이 어찌 기쁜 일이 아니라 할 수 있겠는가.


 남이섬이 운영된 지 이제 50여 년이 되어간다고 한다. 아마 그 50여 년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추억과 기억들이 담겨있겠는가. 남이섬은 이러한 추억의 힘으로 지금의 모습을 완성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중에 나도 한명일뿐이다.

'


남이섬의 작은책 도서관



가장 좋은 콘텐츠는 '추억'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은 콘텐츠는 ‘추억’이라 생각한다. 일각에서는 추억팔이라고 해서 이를 호도하긴 하지만 추억이라는 것은 만국 공용이면서도, 그 시대를 살아왔던 사람들의 가장 큰 공통분모일 것이다.


 이러한 추억을 전명준 사장도 꽤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운영에 3가지 대원칙이 있는데 첫 번째가 외부인에게 투자를 받지 않는 것이며, 두 번째가 개발을 하지 않는 것이라 했다. 외부의 의견에 끄달리지 아니하고, 누군가 항상 이곳을 찾아왔을 때 옛 추억을 떠올리며 다음 세대와 또 다른 추억을 만들기를 원하기 때문이라 했다. 세 번째는 여기 구성원들이 평생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라 했다. 그래서 이곳의 구성원들은 정년이라는 개념이 없다. 죽을 때까지 일을 할 수 있으며, 대표 본인도 대표직을 물러나면 남이섬에 남아 청소를 하거나 표를 받으며 오는 이들과 어울리고 싶다고 말했다. 말을 하는 대표의 눈빛에는 대표로서의 위치보다는 남이섬에 대한 애정이 담뿍 담겨있었다.




 식사를 하며 팀장이 내게 물었다.


 “사진에서 콘탁스 색감이 묻어 나오는 듯합니다. 사실 저희가 지향하는 남이섬의 색감을 너무나 잘 표현해주셨어요. 남이섬은 너무 알록달록하지 않은 것이 더욱 어울리는 것 같거든요.”


 “네 잘 보셨습니다. 사진이라 함은 보정의 부분까지 들어가야 완성이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남이섬을 보았을 때 가장 눈에 띄는 색상은 Green 계열이었어요. 사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사진의 전체적 tone은 다운되어 있지만 Green 계열은 살아 있습니다. downtone은 남이섬의 바랜듯한 추억을 표현하고 싶었고, Green계열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이섬이 가진 생동감을 표현하고 싶었었거든요. 감사합니다.”



(왼쪽부터)전명준 사장과 혜류 


 그 외에도 수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그들은 문화를 사랑하는 민족이었다. ‘나미나라’라고 이름까지 지어났으니 그들에게 민족이라는 말을 붙이더라도 어색하지 않아 보였다. 특히나 전 세계 많은 작가의 작품들을 전시하고 후원받고 모두 즐기고 있었다. 연간 600회 정도의 공연을 한다고 하니 그것만 보더라도 그들의 문화, 예술 사랑을 알 수 있었다.


 점심을 먹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사실 역시도 바로 이 부분이었다. 점심 메뉴는 할랄푸드였다. 모슬렘들은 이슬람 율법에 따라 조리된 음식들만 먹는데, 이것이 바로 할랄푸드이다. 할랄은 그 종교적 신념에서 비롯되었지만, 그 조리과정이나 도축과정이 매우 정갈하고 깔끔하여 전 세계 16% 정도의 인구들이 할랄푸드를 소비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경제적 효과 때문에 할랄푸드에 대한 정책이 마련되고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할랄 정책은 너무 경제적 효과에만 중점을 두고 있는 듯하다. 이곳의 할랄푸드 레스토랑의 2층에는 기도실이 있다. 시간에 맞춰 기도를 해야 하는 모슬렘들을 위한 배려이다.



 음식을 먹으며 남긴 전명준 대표의 말이 인상 깊다.


문화적 철학적 접근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경제적인 접근도 중요하지만, 문화적 철학적 접근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실제 사용하는 이들에게 불편함이 있으면 안 되지요. 저희도 예산이 많이 들긴 했지만 의무적으로 기도해야 하는 모슬렘들이 이곳에 왔을 때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어야 그게 진정한 할랄 푸드 레스토랑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남이섬의 운영에 대해 앞으로도 100년을 넘게 생각을 하고 있어요. 일희일비하는 사업방식으로는 결코 성장할 수 없죠.”


 그렇게 참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새로운 인연은 또 다른 화두를 낳고, 이러한 화두는 생각의 폭을 넓히고, 폭넓은 생각은 우리에게 행복감을 준다. 오늘의 만남이 그러했다.


 저녁 일정이 있어 오랜 시간을 같이 하지 못했지만, 짧은 만남에서 우리는 또 한 번 삶의 교집합을 나눌 수 있는 기회였다. 우리는 지금 누구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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