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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의 이유로 살아라


오늘 길을 걷다가 한 단독주택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대문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자기의 이유로 살아라'


이 한 줄의 문장은 아무 미사여구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장이 주는 울림은 걸음을 멈추게 만들었다. 우리가 사회에서 살고 있는 한 타인을 의식하지 않은 채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사회라는 체계는 수많은 이들이 같이 살기 위해 구축한 틀이고, 그 안에서 서로를 판단한다는 것은 매우 당연한 현상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도 사회는 적응하지 못한 많은 이들을 축출해 왔고, 많은 구성원들은 생존하기 위해 사회에 적응하려 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조금 더 보편적이고 성공한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동양에서는 문화적 특성상 주변인에 대한 감정적 종속을 많이 겪는다. 그들 중 일부는 스스로를 정의 내리기 힘들어한다. 타인에 의해 칭찬받거나 부러움을 샀을 때 비로소 나의 존재 의미를 느낀다. 

예를 들면 기능과 스펙이 거의 비슷한 국산차와 수입차가 있다고 가정했을 때 사람들은 수입차를 구매하는 것을 선호한다. 왜냐하면 수입차는 사회에서 '경제적인 여유로움', '잘 나가는 사람' 등을 의미하는 여러 상징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제품의 기능만을 보고 구매를 결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제품을 샀을 때 따라오는 여러 무형의 편익을 고려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보통 브랜드가 하는 일인데, 브랜드는 보통 이러한 사람들의 사회적 욕망을 건드리곤 한다. 


하지만 이렇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이다. 메슬로는 욕구 계층설을 통해 상위에 있는 욕구중 하나가 '인정에 대한 욕구' 임을 밝힌 바가 있다. 그래서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는 인간에게 매우 당연한 현상이며, 이러한 욕구가 없을 땐 자아발전의 동기 자체가 없을 수도 있다. SNS를 보면 과도한 인정의욕구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은 매일 골프를 치러 다니고 명품을 구매하고, 오마카세를 먹으러 다닌다. 그리고 그러한 글에는 수백 개의 좋아요가 달린다. 글을 올리는 이와 좋아요를 누르는 이는 같은 욕망을 공유한다. 그들은 누군가에게 인정 받고 싶어 하고 인정 받음을 동경한다. 그들은 이런 인정을 받기 위해 명품을 대여해서 인증샷을 찍고, 골프장에 가서 옷을 갈아입으며 사진을 찍은 후 나누어서 계정에 올리곤 한다. 




이러한 삶의 방식이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는다면 괜찮다. 하지만 이런 방식이 나를 지치게 만든다면 한 번쯤 저 위의 문구를 떠올려봐야 한다.


우리는 어찌 됐건 나의 이유로 삶을 지속해야 한다.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은 내가 진짜 원하는 선택이어야 한다. 내가 명확히 A라는 방향을 원하면, A를 해야 한다. B라는 행동을 했을 때 주변 모든 이들이 내게 박수를 보낸다고 해도 A라는 행동을 해야 한다. 남들이 다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라고 조언해주더라도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야 한다. 반대로 남들이 모두 만류해도, 하고 싶은 일을 해봐야 한다.


어떤 쪽을 선택해도 후회는 남을지 모른다. 거기에 B를 선택했을땐 자주적인 선택을 하지 못한 내 모습에 대한 후회까지 남을 것이다. 글을 쓰고 있는 나를 포함해 모든 사람들은 살면서 이런 선택의 기로에 지속적으로 노출된다. 그때마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을 더 진실되게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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