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9년 만에 등산을 다녀왔다. 산은 타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이라는 말을 어디서 들은 적이 있는데, 나도 그런 쪽에 가까워서 필히 산을 올라야만 하는, 예를 들어 수학여행이나 인턴 워크샵 일정 중 등산이 속해있지 않고서야 내가 자의로 산을 올라본 적은 없었다. 9년 전 청계산을 마지막으로 등산과는 아주 멀리 떨어진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친구들끼리 이야기하다가 가을이 가기 전에 산을 올라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나도 오랜만의 산행이라 좋다고는 했지만, 막상 오늘 아침에 눈을 뜨니 가기가 너무 귀찮았다. 배낭에는 주전부리와 탄산수를 담고서는 ‘오늘 하루도 엄청 피곤하겠고만‘ 하고 속으로 투덜거리며 집을 나섰더랬다.
우리 셋 다 산을 자주 타지는 않아서, 서울의 산 중에서도 초보자들이 가장 오를만하다는 인왕산을 올라보기로 결정했다. 등산복이라고는 전혀 없어서, 후드티에 자켓 하나 걸치고 청바지에 스니커즈를 대충 신었다. 인왕산이야 뭐, 우리 후배도 그랬다. 야트막한 높이라 동산 올라간다고 생각해도 크게 무리가 없을 거라고. 분명히 쉽다고 그랬다.
그런데 웬걸, 누가 쉽다고 그랬냐! 물론 우리가 초보자라 더 힘들었을 수도 있지만, 코스를 따라가지 않고 수다 떨다가 잘못된 길로 오른 탓이 컸다. 가장 쉬운 길을 선택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길을 잘못 들어서 올라가는 코스로 곧장 질러가는 바람에 가파른 경사와 높은 계단이 계속 이어졌다. 더군다나 셋 중에서 누구보다 운동 부족인 나는 두 자릿수로 계단을 오르다 보니 체력이 급속도로 떨어졌고, 맥박은 매우 빠른 속도로 뛰고 있었다. 말 한마디 하기 힘들었다. 머리가 핑 돌 지경이 되자, 도저히 못 가겠다 싶어 쉬면서 다시 한숨 돌리고 출발하기를 세 번쯤 반복했다.
그렇게 오르다 보니 어느새 정상이 400m. 조금만 더 오르면 되겠다 싶어서 다시 힘을 내고 출발했는데, 여전히 계단을 수없이 올라서 이미 지쳐버린 나는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서울의 풍경을 눈에 담기도 어려웠다. 그냥 빨리 가자, 못하겠다~ 하는 생각으로 앞만 보고 계속 올랐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는 정상을 ‘거의’ 눈앞에 두고 포기했다. 사람들이 사진을 많이 찍는 스폿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사진을 찍고 다시 올라가 보자며 정상을 향해 바라봤는데 우리가 올라가야 할 계단이 아찔하게 느껴질 정도로 많았다. 이미 많은 계단을 올라온 터라, 우리 저건 가지 말자고 입을 모아 합의했고, 우리는 멈춰버린 그곳에서 ‘여기도 뭐 거의 정상이지!’ 하는 합리화와 함께 사진 찍고 웃으면서 그 순간을 즐겼다.
그때부터는 조금 수월했다. 힘드니까 에라 모르겠다 싶어 그냥 내리막길처럼 보이는 곳으로 내려갔는데, 그곳이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코스가 아니었던 것 같다. 우리 셋만 있다는 느낌과 함께 서로 우리의 선택이 옳았다며 엄청난 합리화를 하고서는 깔깔댔다. 그제야 서울의 건물들이 보였고, 단풍이 보였고, 흙바닥이 느껴졌다.
보통 등산을 인생에 많이 비유하고는 한다. 짧은 산행으로 깊은 통찰을 얻었다기에는 겸연쩍지만, 그럼에도 몇 가지 되짚어볼 수 있는 부분들이 있었다. 오늘 산을 오를 때처럼 내 눈앞의 일만 생각하다가 주변을 보지 못한 채 좁은 시야로 일상을 보내지는 않았는지? 내 페이스를 생각하지 않고 무리하게 남들의 속도를 따라가려다 제풀에 지쳐버린 적은 없었는지? 마치 오늘의 등산처럼 말이다.
정상에서 포기한 일이 아쉽기는 한데, 그래도 오늘의 내 페이스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즐겁게 오르지는 못했을 것이다. 산행에 거의 준비가 되지 않았던 오늘보다 조금 더 준비하고 시도하면 산행이 훨씬 재미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오늘 못 올라서 아쉽다면 다음에 다시 올라보면 되겠지. 한번 올라봤으니 한번 더 오를 때는 지금보다 조금 더 낫지 않을까? 가끔은 스스로 생각해도 억지스러운 정신승리가 필요할 때가 있다. 아무튼 우리끼리 즐거웠으면 되는 거겠지! 9년 만의 등산이었으니까 힘든 건 당연하다! 계속 시도하다 보면 어느샌가 산을 올라가는 와중에도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