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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잡러 민수르 Jan 01. 2021

여권 없이 공항행

스무 살에 떠난 세계여행

''아들! 집에서 나갈 때 여권 잘 챙기고 빠진 것 없나 한번 더 확인하고 나가!''


아들을 향한 엄마의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길을 걷다가 수시로 가방을 열어 확인하는 습관을 가지게 된 것도, 어렸을 때부터 귀가 닳도록 들었던 엄마의 쓴소리로 인해 생긴 것이 틀림없다.


 “엄마는 물어볼 걸 물어봐야죠. 필수템인데 당연히 챙겼어요!”


남들이 무언가를 잃어버릴 때, 무언가를 얻어오는 게 나였기에, 여느 때처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출국 당일 아침, 이 날을 위해 3년간 가슴 달구며 밤잠 설쳤던 날들을 생각하니 괜스레 울컥해진다. 오래전부터 여행을 준비해온 게 혹여 실패로 끝날까 봐 걱정이 되기도 하고, 흔하지 않은 인생의 첫 경험을 하자니 설레기도 한다.


‘에라 모르겠다, 그래도 설레는 마음이 더 크니까 일단 떠나보자!’.


앞집 세탁소에서 박은 국기 패치가 붙은 55L 가방을 당차게 메고 인천공항행 버스에 올랐다. 포항에서 인천 공항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5시간. 지루할까 봐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기대감으로 인해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그 순간 온몸에서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 잠깐만, 내 여권......’ 출발 전 항공권을 확인한다고 꺼냈다가 가방 안이 아닌 책상 위에 두고 온 여권이 갑자기 생각났다. 당혹스러운 마음에 어찌할 바를 몰랐고 머리를 쥐어짜기 시작했다.‘아 진짜, 평소에는 안 그러더니 오늘 왜 그러냐...’ 한동안 자책에 빠져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봤지만 이미 버스는 출발했기에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마도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해 발생한 내 인생 최악의 불상사로 기록되지 싶다. 비행기 이륙까지 남은 시간은 단 4시간. 버스에서 내려 집까지 갔다가 다시  타더라도 불가능한 시간이다. ‘’아, 망했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렇게 혼비백산하던  마음을 다잡고 조심스럽게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 엄마... 저 여권... 집에 두고 온 것 같아요”


떨리는 목소리로 힘겹게 말을 꺼내자 엄마는  언성을 높이며 말을 이어갔다.


 “ 야, 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나? 여행이고 뭐고 다 때려치워 뿌고 나는 모르겠으니까 니 알아서 해라” 


엄마의 투박한 사투리가 평소보다 더 날카롭게 느껴진다. 그렇게 30초간의 전화가 끝났다. 그동안의 준비가 물거품이 된다는 걸 생각하며 허탈함에 힘겨워하던 찰나에 전화벨이 울렸다.


‘’ 엄마가 ktx 특송으로 여권 보냈으니까 공항 도착하면 찾으러 가라”


신경을 안 쓰려고 했지만 마음이 무거워 운영 중이던 가게문을 닫고 ktx역까지 찾아가서 부탁을 했다고 하셨다.'이게 부모님의 마음인가 봐..' 죄스러운 마음과 감사한 마음이 교차했고,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진땀을 빼며 도착한 공항은 각국의 사람들로 붐비며 여행길의 출발점을 알리고 있었다.

느슨해진 배낭끈을 다시 메며 마음을 다잡았고 안내데스크에서 여권 찾는 일부터 시작했다. 다행히  여권은  공항 직원분의 안내로 쉽게 찾을 수 있었고, 90도 인사를 수 차례 하며 감사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여행이란 것, 출발부터 쉽지가 않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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