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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티서 May 18. 2021

[이 시국에 장막 희곡]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보니

5주> 캐릭터 점검. 주연 캐릭터 전사 만들기.

우빈

  3남 중 막내아들. 엄마는 전업주부, 아빠는 큰 건설회사의 차장. 

  아빠는 직업상 외근이 잦다. 잘 마주치지도 않을뿐더러 아들을 남자 대 남자로 대하길 원하는 아빠는 어딘가 대하기 어렵다.

  자신보다 5살, 3살 많은 형들도 거칠고 무뚝뚝하기는 마찬가지.

  제일 막내이기도 하고, 타고난 유순한 성품 덕에 엄마와 가장 시시콜콜한 대화를 하는 아들이다. 흔히 말하는 딸 같은 아들.

  그나마도 이 집안의 기준에서 살갑다는 것뿐이지, 정작 엄마랑 우빈은 서로 싫은 소리도 많이 한다. 서로 지긋지긋해 하면서도 서로의 대인관계나 고민에 관해 미주알고주알 떠드는 편.

  아빠 따라서 건축 사무소에 다니겠다는 큰형. 부모님 속 많이 썩이더니 소방 공무원 준비해 합격한 둘째 형. 엄마, 아빠는 이제 한 시름 놨다는 입장이다. 학교 성적은 중위권 정도이지만, 이미 엄마아빠가 너무 지친 덕(?)인지 그닥 학업에 관한 간섭은 받지 않는다. 

  흰 두부같은 성품. 

  멘탈이 무르기도 하지만 그만큼 맑고, 티 없는 성격이기도 하다.

  어렸을 때 둘째 형이 아빠와 큰형한테 그렇게나 맞고 크는 모습을 보고 지레 겁을 먹었다. 정작 쫄아야 할 것은 둘째 형인데 대신 우빈이가 쫄아서 큰 탈선 없이 화초처럼 컸다.

  우빈이 보기에 아빠와 형들은 도무지 자기와 같은 과의 사람들이 아니다. 남의 감정에 무딘 만큼 자기 감정에도 무딘 사람들. 반면 엄마는? 나랑 통한다, 그래서 서로 신경을 긁는 데가 있다.

  전형적인 아들 엄마인 우빈의 엄마. 성적에 관해서는 간섭 안해도, 우빈 주변의 여자친구들에 대해서는 꼬치꼬치 캐묻는다. 걔는 왜 학생이 염색을 하고 다닌다니? 걔는 왜 이렇게 자주 만나니, 이 밤에 만나려 나가려고? 우빈이 성적인 것에 아예 안 깨였던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부터 우빈이 사고칠 것을 걱정했다.

  ‘참 보는 눈도 없다.’

  우빈은 생각한다. 실은 우빈은 아주 어릴 때부터 자신을 게이라고 생각해왔다. 그 단어에 대해 잘 모르던 순간에도, 반에서 제일 달리기 잘 하던 남자 애가 멋있고 그랬다. 반에 꼭 하나 쯤은 있는 남자 애들 말고 여자애들이랑만 노는 타입. (외향적으로 걸그룹 댄스 따라 추고, 유튜브 방송인이 되고 싶고 이런 타입은 또 아니다.) 체육 시간엔 스탠드에 앉아 있고, 밥은 마시기보다는 천천히 어제 본 드라마 얘기 다 나누면서 먹고, 사실 드라마가 더 유행이니까 따라 얘기하긴 하는데 드라마보다는 책이 더 좋다. 

  체육은 못해서도 싫지만(매일 스탠드에 앉아 있으니 원... 못하지...) 무엇보다 실수 한 번 하면 아이들이 진심으로 빡쳐 하는 게 겁나서 싫다. 노래방에 가면 갑자기 전체주의자가 되듯 코트 위에만 서면 갑자기 마초가 되는 아이들. 그 문화에 우빈은 다른 남자애들처럼 쿨할 수 없고, 서운한 감정도 깊이 남아 언젠가부터는 아예 반 아이들의 단체 구기 종목에서 빠졌다.

  아, 체육시간 때 옷은 꼭 대변기 칸에 들어가 혼자 갈아입는다. 아예 집에서 교복 바지 아래 체육복을 겹쳐 입고 오기도 한다.

  “경우빈 너 여자냐? 게이냐?” 놀리는 말은 싫다. 그건 놀리는 말이니까. 

  하지만 누군가 글씨체가 꼭 여자 글씨처럼 예쁘다는 말을 했을 때, 손이 여자 손처럼 예쁘다고 했을 때, ‘네가 여자면 너랑 사귈텐데’ 드립을 시전하는 아이가 있을 때. 마냥 싫지만은 않았다. 좀 설레기도 했는데, 그 감정이 잘 이해되진 않았다.

  서오와는 중학교 때 내내 같은 학원을 다니던 사이다. 원래도 성격 궁합상 잘 리드하는 서오랑 완전 잘 맞았다. 어느 날 서오와 우빈이에게 빈 강의실에서 수학 오답풀이를 해놓으라고 하고 이들을 까먹은 선생님 때문에 둘만 길게 대화할 시간이 생겼다. 꽉꽉 짜여있던 학원 루틴 속에 갑자기 늘어지는 시간이 생기니 좀 센치하기도 하고, 묘하기도 하고... 사귀는 애, 좋아하는 애 서로 물어보다가 서오에게 자신은 남자를 좋아한다고 고백한다. 뜻밖에 말해줘서 고맙다며 눈물까지 고이는 서오. 그 이후 둘은 전보다 더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같은 고등학교에 배정된 둘. 심지어 같은 반이다.

  원래 유하고 모난 데 없어서 몇몇 남자아이들을 제외하고는 싫어하는 사람 없던 우빈.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속내까지 다 터놓는 그런 친구 사이는 없었다. 그렇게 까지 적극적이거나 걱정 없는 성격은 아니니까. 무엇보다 자신에겐 남들에게 말 못하는 ‘비밀’이 있다는 생각이 알게 모르게 사람을 대할 때 벽을 쳤다. 그런데 그 벽 안을 들여다보고도 자신을 여전히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다니. 우빈에게 서오는 벽을 깨고 다가온 사람 같았다.

  덕분에 우빈은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넘어오면서 캐릭터도 조금 바꿨다. 무조건 나이스한 아이에서 은근 도도한 반전캐로. 경우에 따라선 서오 위세를 등에 업고 나댄다고 생각하는 애들도 있지만 어쩌겠는가. 실제로 좋은 친구가 곁에 있으면 더 힘이 다는 것을.

  (그 외 이 인물이 ‘트랜스젠더’로 정체화 할 수밖에 없는 어떤 전사가 필요할까? 아니 필요하지 않다.)

     

서오

  2살 위 오빠가 있다. 아빠가 대사관에서 일하는 7급 공무원이다. 엄마는 젊었을 적 교회 매체에 여행 에세이를 투고하는 여행 작가였다. 지금은 낮 시간에 현지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다. 

  서오는 원래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교대로 외국에 나가 근무해야 하는 아빠 직업의 특성 상 5살 때부터 1년 반 정도 남아공에 살았다. 물론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그때 오빠가 남아공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했고, 엄마와 서오, 오빠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아빠도 2년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고. 이후 쭉 한국에서 같이 5년 정도 살다가 다시 서오가 중학교 1학년이 될 때 온 가족이 캐나다로 가게 된다. 엄마는 자꾸 서오에게 캐나다 친구들이랑 말을 많이 섞어야 영어가 는다고 말하지만 서오는 한 고집 하는 성격. 자기 의사랑 다르게 자꾸 이곳저곳 이사 다니는 것만 해도 화나는데, 갑자기 말 안 통하는 애들이랑 억지로 친해지기도 싫다. 한인교회에서 알게 된 브리라는 친구랑만 주구장창 시간을 보낸다. 브리랑은 서로 빡치는 것들을 하나씩 나열하며 놀았다. 확실히 크리스천 집안에서 둘째에 여자로 태어나서 집안에서는 전혀 자기들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는 그들. 하지만 브리는 막상 남자친구도 생기고 캐나다 생활에 잘 적응하게 되니까 서오와 보내는 시간을 점점 줄인다. 결정적으로 브리는 서오한테 그렇게 많은 정을 주지도 않았다.

  다시 자식들이 둘 다 외국 생활에 적응 못하던 1년(오빠는 너무 놀러만 다녀서 탈이었다). 엄마는 어차피 애들 대학은 한국 대학으로 가야 하는데 큰애 고등학교 입학부터는 한국에서 살아야겠다고 말한다. 아빠는 가족 없이 따로 떨어져 지내는 거 더는 못하겠다고 말하고, 결국 서울에 집을 구해 오빠와 서오 둘만 보내고, 서울에 있는 이모가 주에 한번 씩은 이들을 찾아오는 걸로 합의를 본다. 서오, 같은 집에 살다 뿐이지 전혀 대화도 않던 오빠와 한 집에 사는 게 불편했으나, 당시 쓸쓸한 외국 생활에 너무 지쳐가던 차였기에 이 결정에 따른다.

  서오 나이 중2때부터 한국에 다시 살기 시작. 그때부터 학원에 다니고 우빈이와도 친해졌다. 전체적으로 기가 센 자기 집 식구들에 비해 너무 순둥순둥한 우빈. 저렇게 착한 사람이 또 있을까 싶다. 자기가 하자는 데로 우빈이가 웬만하면 다 따른다는 점도 정말 좋다.

  한국에서의 생활이 물론 쉽지만은 않았다. 엄마가 이모에게 돈을 부치면 이모가 일주일에 한 번 반찬을 해다 주시는데, 어쨌든 그걸 매끼니 챙겨 먹고 하는 것도 일이다. 또 자존심 강한 서오의 입장에선 안 그래도 이모가 집안일을 봐주시는데, 찾아오실 때마다 집이 정리가 안 되있으면 안될 겉 같아 매우 신경 쓰이는데... 오빠란 놈은 그런 거리낌이 전혀 없는 듯 하다. 결국 오빠가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옷, 설거지. 말해도 바뀌지 않으니 결국 일하게 되는 것은 서오다. 그래도 어쨌든 뭐든 잘 해내는 편인 서오.

  서오가 하나 못 견디겠는 건, 나날이 한국 패치 되는 오빠. 자신은 학교에서 외국물 먹은 쎈캐(?) 취급 받아서 오히려 그렇게 친한 친구가 없는 편이지만

  (사실 할 말 했을 뿐 딱히 유별나게 군 적도 없다. 체육 시간에 옷 남자애들이 화장실 가서 갈아입어라. 여자 화장실은 대변키 칸만 딸랑 세 개라 공간 자체가 더 붐빈다. 그리고 쉬는 시간 1분이라도 아껴서 빨리 튀어나가고 싶은 건 너흰데 왜 너네 때문에 우리가 쫓기듯 나가야 하냐? “뭐야 마서오. 너 페미냐?” “서오야, 아무리 나시 입었다 해도 남자 애들 있는 데서 벗는 건 좀 아니지 않니?” 여기저기에서 까이는 서오.)

  오빠는 사정이 달랐나보다. 남자애들 사이에서 엄청 인기 있는 오빠, 걔들이 쓰는 더러운 욕, 나쁜 습관들 그대로 따라하게 된다. 게다가 엄마아빠까지 곁에 없으니 자기가 대가리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점점 폭력적으로 변하는 오빠가 불편하다.

  중3때 가끔 자기 양말이나 속옷이 사라지는 것이 이상하던 차에 당근마켓에서 입던 속옷을 판다는 글을 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판매자에게 말을 걸어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다 보니 역시나 오빠가 나오고 있다. 황급히 그 자리를 도망가듯 벗어나는 서오. 서오는 놀라 오빠와 같은 집에서 잠도 잘 오지 않는다. 엄마에게 이 사실을 전했지만, 엄마는 오히려 그런 이야기를 전하는 서오를 향해 심란함을 표출하는 것 같다. 그러기에 잘 좀 간수하지 그랬어. 서오가 간수를 잘 못해서 벌어진 일이 아닌데. 며칠 후 엄마에게서 너가 오해한 거라는 소리를 듣는다. 오빠 이제 수능 막바지인데 쓸데없는 걸로 트집 잡지 말자고 말하는 엄마. 오빠는 너도 빨래하다 내 양말 잃어버린 적 많다며, 앞으로 또 엄마한테 쓸데없는 소리 전하면 가만 안 놔둔다고 말한다.

  그래도 가족이 자신이 경험한 첫 번째 사회인데, 그 구성원이 다 서오 자신이 틀렸다고 말하니 혼란스럽다. 이 일을 달리 말할 사람이 없다. 우빈도 남자라 말을 잘 못하겠다. 결국 나아진 건 하나도 없는데 혼자 괜찮아지려고 스스로를 채찍질한다. 잠도 자야지, 자야지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학원도 그만 빠져야지 싶고. 학원에 빠지던 자신을 우빈이 찾아왔는데 자기 자신의 상황을 이해받기는커녕 말할 수조차 없다는 사실에 벌컥 화가 난다. 우빈 입장에선 영문을 모르는 상황에서 벌컥 소리를 지르는 상황이 가족과의 상황이 떠올라서 힘들고... 결국 나중에 찾아가서 서오가 우빈에게 미안하다고 하고 둘은 화해한다. 서오는 제일 힘든 시기를 누구의 지지도 받지 못하고 보냈다.

  이후 서오는 인터넷에서 페미니즘과 관련된 이것저것을 찾아보게 된다. 예전에는 애들이 페미냐고 욕을 하길래 나쁜 것인 줄만 알았는데, 오히려 공감 가는 게 많다. 서오가 이런 이야기들을 전해주면 생각보다 꽤 공감하는 우빈. 

(그런데 적다 보니 인물 전사를 쓰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너무 불편하다. 장면화의 방식이야 나중에 더 고민한다지만... 서오가 이렇게 힘든 일을 연속적으로 겪어도 되는 건가. 청소년 인물이 직접 아웃팅을 당하는 건 너무 힘든 일 같아서 성인 인물인 불어 선생님의 존재를 고안했는데, 서오의 상황도 보기 너무 힘든 광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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