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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티서 Jun 02. 2021

[이 시국에 장막 희곡] 뚜렷한 하나의 공간

7주차> 희곡의 배경이 되는 공간, 무대 정하기

  <동승>. 다른 희곡에서 장소와 무대를 어떻게 사용했는지 살펴보기 위해 읽었다. 처음엔 이게 왜 장소를 잘 설정한 희곡이지 싶었는데... (무대가 막 돌아가고, 분리되고, 확장되고 이런 눈에 띄는 역할을 하진 않아서) 다 읽고 나니 잘 썼다 싶었다. 꼭 장소 뿐 아니라 이모저모로 잘 썼다.

  우선 무대 후면에 이미 비탈길이 제시되어 있었다는 점. 어쩌면 결말을 암시하는. 그래서 결말이 더 군더더기 없어 보이는 듯도 했다. 산중의 절이라는 공간감을 산울림이나 퍼지는 범종 소리를 통해 자연스레 전달하는 것도 좋았고. 또 제한되었지만 나름대로 등장인물이 오갈 수 있는 장소를 무대로 삼은 점도 좋았다. 덕분에 등장인물들의 등퇴장 부분이 모두 자연스럽게 보였다. 

  (으으, 이런 게 단막인가 싶다. 내가 공모에 제출한 그 작품은... 장소 자체가 산만한 느낌이 헤헤.)

  그으...런데. 내 작품은 단막이 아니라 장막이다. 장소도 한 곳으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최소 4번은 바뀌어야 할 텐데.(4도 사실 대중없는 숫자다.) 장소가 바뀌는 희곡들은 보통...? 같은 분장실로 공간을 고정하고 시대를 다르게 설정했던 와이프. 흠... 그런데 내가 지금 이렇게 무대 어디에 뭐가 있고, 어떤 연출은 이렇게 해야하고를 다 짜는 게 맞는 일인가 싶기도 하고. 그보다는 동승과 같은 이유들을 만들어야 한다. 이 공간을 선택한 이유. 이 공간에서 이런 이야기가 펼쳐질 수밖에 없는 개연성.

  일단 내 작품에 나오는 공간들을 다 나열해보자.

  교실. 운동장 벤치. 교직원 화장실. 교실 복도. 상담실. 동아리실. (서오네 집), (서오네 집 앞 골목). 학교 앞 하교길, 운동장 조회 단상, 교문 앞, 청소년보호센터, 불어선생님과 만나는 카페....

  와우. 나 정말 생각 없이 많이도 돌아다녔네. 아무리 옛날처럼 장소가 한정된 연극만 존재하는 건 아니라고 하지만.... (심지어 공간이 바뀌는 어떤 메리트도 없다. 공간 자체가 재미있는 공간들이면 체험하는 재미라도 느끼지. 방, 방, 방, 방. 통일되지 않는 많은 그 많은 방들.)

  공간을 대립시켜볼 수 있을 것 같다. 

  자신만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공간. 혹은 보금자리. 그리고 개방적인 공간. 운동의 공간, 혹은 폭로의 공간. 좁고, 넓다. 높이의 차이는 없는가? 크게는... 어쩌면 설 지평의 점점 더 사라진다는 의미로 좁고 높은 단상을 사용할 수도 있지만. 아무튼 핵심은 좁고 넓다는 대비. 그리고 좁기만 하던 방들은 서로 연결된다. 칸막이를 열고 부수는 행위도 존재하지 않을까. 뻥뻥 차버리는 축구공처럼 남의 사생활을 무턱대고 침범하는 행위. 아웃팅. 혹은 일방적인 고백. / 그리고 스스로 문을 여는 행위, 남의 문을 두드리는 행위. 멀리서도 연결되는 행위.

  실제 벽이 뚝딱뚝딱 만들어졌다 순식간에 사라질 수는 없는 연극 무대. 이런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 유리칸막이로 나눠진 무대 공간? 무대를 염두에 두고 쓰자는 취지가 여기까지간다고...? 게다가 실험관 속 쥐들 느낌일 것 같다. 괜시리 어려워 보일 듯. 

  조명, 땅따먹기, 립스틱, 선 긋기, 무형의 선 긋기, 몸짓..? 혹은 무대의 전면과 후면으로 나뉜다면 어떨까. 무대 전면의 사람은 후면의 사람을 볼 수 없으니까. 시선으로 표현되는 권력관계. 어쩌면 가장 좁은 꼭짓점으로 내몰린다는 의미도... 근데 무대 맨 앞이 좁고 게다가 책걸상까지 있으면 관극하기 개불편하겠지? (아니 근데 이게 어떤 도형 모양 무대에서 공연될지 고민해보라는 취지의 활동은 아닐 텐데. 허허, 정말 혼자 헤매고 있네...)

  마른대지도 사실 비밀에 관한 이야기. 수영장 라커룸이라는 공간이 따로 공간 대립을 작위적으로 연출하지 않아도 그런 의미를 전달했다. 또한 성별이 분화된 공간. 무슨 이야기든 나눌 수 있는, 그리고 어떤 비밀도 고통도 지워질 수 있는. 그래서 피를 지우는 장면을 길게 연출했던 것 같다. 장막이지만 어쨌든 주요한 공간적 배경은 있었다. 나도 일단 어느 정도 하나로 통일은 필요할 것 같다. 

  내가 학교를 다닐 때 아지트처럼 느낀 공간? 그 공간성 자체가 무언가 나와 닮았다고 느꼈던 공간? 나야... 아무도 찾지 않아 역설적으로 친구들과 개시끄럽게 수다 떨 수 있던 도서관. 운동장 스탠드, 언제든 축구공이 날아올 수 있는. 다목적실, 친구들과 피아노치고 놀았다. 공부한다는 이유로 키를 받은. 방과 후 교실, 그냥 교실과는 또 다른 공간감. 고등학교 때는? 사물함이 놓인 교실 뒤편? 혹은 애들이 모여 노느라 쉽게 침해당하는 교실 뒷자리...? 연극부 애들이랑 발성 연습하던 운동장 구석... 몰래 야자 튄 적도 많고. /흐음! 도대체 내가 짜놓은 사건들이 다 자연스럽게 벌어질만한 공간이 없다. 심지어 고등학교 때의 장소들은 떠올리니까 좀 우울하기까지 함.

  동아리활동도 교실에서 할 수 있고. 어쩌면 시간에 따라 교실의 공간감이 더 프라이빗하게 더 개방적이게 바뀌는 사실에 집중할 수도 있겠다. 불어 선생님 바지 벗겨지는 장면은 무대 밖에서까지 함성이 튀어나오며 (방송 조회인 거지...) 공간이 더 확장되는 느낌으로. 그래 ‘공동생활공간과 비밀, 관계’에 집중하자. 운동장, 교직원 화장실 정도야 곁가지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 듯. 휴, 이번 주 치의 찔끔찔끔 끝났다. (찔끔찔끔이라도 계획을 따라 쓰다보면 그래도 쓰게는 된다는 생각. 일단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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