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찾아온 위 마비로 기약이 없는 금식 치료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함께 시작된 주삿바늘교체하기!
수액의 입자가 큰 편이라서
하루에 서너 번 교체는 예삿일이었다.
"쌤! 여기 수액 들어간 팔이 퉁퉁 부었어요.
너무 아파요. 바늘 좀 빼주세요."
"쏘야야, 잠깐만!"
"담당 간호사 선생님께 바늘 빼줘도 되는지 여쭤보고 올게."
"하아... 쏘야 IV주사 부위가 또 부었다고?"
저 멀리 간호사 스테이션에서 선생님들의 탄식이 들려왔다.
우다다다닥...
'헉... 병동 간호사 쌤들이 다 오셨네?'
"쏘야야! 팔, 다리, 손목, 발목하다 못해 손가락, 발가락까지 봐도 어쩜 이렇게 혈관이 없을 수가
있니?"
"이렇게 하면 우리도 힘들고 너도 힘들어서
안 되겠다."
"주치의 선생님한테 얘기하고 올게!"
주치의 선생님과 담당 간호사 선생님의 언쟁이 수화기 너머로 들렸다.
"하... 아니, 쌤! 제가 지금 할 일이 없어서 이러고 있는 거겠어요? 진짜 노인 환자보다 혈관이 없다니까요!"
간호사 선생님이 전화를 끊자마자주치의 선생님이 한걸음에 달려오셨다.
"하... 진짜 Poor Vein이네요. 그럼 C-line 잡을게요."
'씨 라인?푸어 베인?'
'이건 또 무슨 말이야..?'
'병원에서 쓰는 말들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어!'
잠시 후,
인턴 선생님이 시술 동의서를 들고 오셨다.
"김쏘야님, 지금 C-line 시술하실 건데 시술 설명 및 부작용 설명 해드릴게요."
"네..? 제 목에다 관을 심는다고요?"
"잘못되면 폐에 구멍이 생길 수도 있다고요?"
"아주 드문 부작용이에요. 만약을 위해서 설명해 드리는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김쏘야님, 여기 시술 동의서에 서명해 주세요!"
'아.. 너무 무섭다! 어디로 사라지고 싶어!'
"저 이거 사인 안 하면 안 돼요?"
"아니.. 사인하기 싫어요!"
"환자분이 시술 동의 안 하신다고 주치의 선생님께 말씀드릴게요."
곰돌이 교수님께서오후 진료를 마치고 부랴부랴 병동으로 뛰어 올라오셨다. 평소와 다르게
엄. 근. 진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쏘야야, 지금 우리가 웃으면서 이야기할 상황이 아니야."
"위 마비가 언제 풀릴지도 모르는데 수액을 못 맞으면 영양 부족과 전해질 부족으로 위험한 상황이 올 수도 있어!"
"중환자실에 가고 싶지 않지?"
"아.. 거긴 진짜 가고 싶지 않아요!"
"핸드폰도 못 쓰고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너무 무서워요!"
"지금 당장 C-line 시술해서 말초 중심정맥으로 수액을 넣어주어야 하는데, 워낙 고농도 수액인 데다가 입자가 커서 IV로는 안돼!"
"지금은 인터벤션 교수님이 퇴근해서
다른 건 안되고 C-line만 가능해."
곰돌이 교수님의 논리 정연한 말씀에 어떠한
이야기도 할 수 없었다.
다시 내 눈앞에 놓인 시술 동의서!
'내 목에 관을 꽂다니...'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내가 뭘 잘못해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주르륵 흘러내리는 서글픈 눈물에 수성 사인펜도 함께 울었다.
언제 불려 갈지 모르는 불안함과 걱정 속에
애꿎은 손톱만 물어뜯었다.
"김 쏘야님! C-line 시술하러 처치실로가실게요!"
"김쏘야님 오셨습니다."
"환자분!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생년 월일은요?"
"선생님! 이거 진짜 안 아파요?
"마취하면 진짜 아무 느낌이 안 나요?"
너무 무서워서 똑같은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굵은 바늘이라 조금 아플 수 있어요!"
"쏘야야, 언니가 손 꽉잡아줄게. 걱정하지 마!"
간호사 선생님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무서움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김 쏘야님, 소독할게요. 많이 차가워요!"
"리도카인 투여할게요."
"아아아아악!!!!"
"선생님, 저 마취가 잘 안 된 것 같아요!"
"김쏘야님, 말씀하시면 바늘 잘못 꽂을 수도 있어요."
"김 쏘야님!시술 끝났습니다."
"Chest X-ray 찍어보고 사용 여부 확인할게요!"
"아아아악! 쌤, 저 목을 못 들겠어요."
"목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아요."
"쏘아야,시술할 때 너무 긴장해서 그래."
"한숨 자고 나면 괜찮아질 거야."
"쌤, 저 진짜 괜찮아지는 거 맞죠?"
밤새 아파서 흘러내린 눈물이 베갯잇을 가득 적셨다.
다음날 곰돌이 교수님께서 회진을 오셨다.
"교수님! 저 목에다 관 심은 거 너무 아파요."
"너무 아파서 오른쪽으로 목을 못 돌리겠어요."
"쏘야야, 앞으로 계속 이 라인으로 수액이 들어가야 하는데 네가 이렇게 아파하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다."
"교수님, 다른 방법이 있어요?"
"PICC라고팔에다 시술하는 건데 50cm~60cm정도 되는 관을 심장 근처까지 삽입하는 거야."
"교수님! 그럼 저 이거 빨리 빼고그것 좀 해주세요."
"너무 아파서 빨리 빼고 싶어요."
곰돌이 교수님께서 어디로 전화를 해보시더니
안타까운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말씀을 꺼내셨다.
"쏘야야, 미안하다! PICC 시술하는 담당 교수님이 일주일 동안 학회에 가셨대."
"쏘야야, 우리 일주일만! 딱 일주일만 더 참아보자."
'왜 하필 그 교수님은 지금 안 계신 걸까... '
오매불망 연인을 기다리듯 PICC 교수님을 손꼽아 기다렸다.
'동의서도 빨리 쓰고시술도 빨리 했으면 좋겠다'
'빨리 목에 굵은 바늘 좀 빼주세요!'
고통의 7일이 지나고 드디어 인턴벤션 교수님이
학회에서 돌아오셨다.
일주일 전에 받았던 C-line 삽입 시술과 다르게
이번에는 아무 생각도 아무 감정도 없었다.
"빨리 목에 있는 바늘 좀 빼주세요!"
"김쏘야님, 왼쪽팔에 PICC 삽입 잘 끝났습니다."
'만세, 만세, 만만세! 드디어 해방이다!'
*본문에 나온 의학용어
IV(IntraVenous injection): 정맥주사
대부분의 수액이 IV로 이루어지고 빠른 효과를 목적할 때 정맥주사를 사용.
Poor Vein/ Vein poor
IV 주사를 놓을 수 있을만한 정맥 혈관이 전혀 없음
노티 하다(Notice):(의사에게) 환자의 증상 및 상태를 보고.
말초정맥(peripheral vein)
가슴이나 복부 이외에 존재하는 정맥. 신체 말단의 모세 혈관으로부터 환원된 혈액을 심장으로 흐르게 함.
리도카인(lidocaine)
국소마취제이자 부정맥 치료제
주사제는 국소마취 또는 부정맥 치료 목적으로
사용. 신경자극 시작 및 전달에 필요한 전해질을 차단하여 신경막을 안정화시키고 신경자극이 전달되는 것을 방해하여 마취 효과를 나타냄. 통증이나 촉각에 대한 반응 또한 상대적으로 둔감하게 만듦. 환자를 무의식 상태로 만드는 전신마취제와 달리, 신체의 일부에만 제한적으로 국소 마취 효과.
C-line(Central venous catheter)
중심정맥관삽입술
중심정맥은 손이나 발 등에 위치한 작은 말초 정맥과 달리, 몸통에서 연결되어 심장으로 들어가는 쇄골하 정맥, 경정맥, 대퇴 정맥 등 큰 정맥을 말한다. 중심정맥관은 이러한 굵은 중심 정맥에 삽입되는 관의 일종으로 한 번 정맥관이 삽입된 후 그 기능이 잘 유지되면, 매번 치료 시 정맥 주사를 위한 별도의 혈관 확보가 필요 없이 지속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PICC(Peripheral Inserted Central Catheter)
말초 삽입 중심정맥 카테터
말초 삽입형 중심정맥 카테터. 말초정맥을 천자하여 카테터를 삽입하고 상대정맥(위대 정맥, superior vena cava)까지 진행시켜 유치하는 방법으로, 항암제나 수액을 정맥에 투여할 때 이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