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국어 교원 Apr 15. 2024

<다문화 박사의 '진짜' 다양성 이야기> 독서감상문

대학원 과제 독서감상문



이 책은 미국에서 이민자 언어 교육과 다문화-이중언어교육을 전공하며 이민자 가정으로 살았던 저자가 한국으로 돌아와 자신의 경험을 통 한국의 다문화 사회를 주관적이면서 객관적으로 통찰하는 책이다. 주관적으로는 미국에서 이민자 신분으로서 한국에서 표현하는 ‘다문화 가정’이었던 엄마의 입장으로, 객관적으로는 '교육자'의 입장으로 한국의 다문화 현실을 ‘다양성’이라는 관점에서 통찰한다.


왜 저자는 ‘다양성’을 강조하는가? 저자는 다양성을 인정해야 하는 이유로 한국의 인구 문제를 들었다. 현재 한국은 출산율 문제가 심각하다. 2023년 출산율은 0.72명인데, 출산율은 매년 감소하기 때문에 앞으로는 점점 더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적 인구 학자인 데이비드 콜먼은 한국을 ‘1호 인구 소멸 국가’라고 경고했다. 태어나는 인구가 없어 국가가 소멸할 것이라는 말이다.

      

"미국은 출산율이 높지 않아도 이민 정책으로 끊임없이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다문화 박사의 진짜 다양성 이야기> 중에서

     

즉, 한국의 인구 감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이민 정책이 답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통계청이 발표한 ‘장래 인구추계를 반영한 내·외국인 인구추계’를 보면 내국인은 2022년 5002만 명에서 지난해 4985만 명으로 17만 명 줄었지만 외국인 체류자가 22만 명 늘어나 전체 인구는 소폭 증가했다. 그러나 저자는 무조건적으로 이민 정책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적극적인 이민 정책으로 이민자를 더 많이 받아들이는 경우(예를 들면 본국에서 가족을 초청할 수 없는 이 없는 E-9 비자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가족 초청을 하게 해 주는 것) 나타날 수 있는 사회 복지 비용의 증가와 그로 인한 국민의 부담도 언급하며, 한국 사회가 이민자들을 받아들여 인구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책적 준비가 먼저 필요함을 주장한다.


한국이 이민자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 한국은 2000년대 결혼이민자들의 증가로 ‘다문화 정책’을 펼치면서, 이민자들을 한국 문화에 동화시키려는 동화주의 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현재는 동화주의가 문화를 계층화할 수 있는 차별 정책이고 현실적으로도 맞지 않는다는 문제점이 드러났다. 그래서 소수 문화와 타문화를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다문화주의, 상호문화주의에 입각한 정책을 하지만, 동화주의 정책의 부정적 영향은 남아 있다.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엄마 나라와 아빠 나라 정체성을 모두 가지고 있을 때, 한국인들은 아이가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다고 생각하여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해 주려고 하는 것이 그 예이다. 저자는 아이들은 두 개의 문화를 자유롭게 횡단하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을 뿐이라며, 정체성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다양성이 인정될 때 한국은 진정한 다문화 선진 국가가 될 수 있다.


이 책은 크게 4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1장에서 다루는 내용은 ‘다문화 교육’으로, 미국에서 다문화 교육이 시작된 원인과 다문화 교육의 정의를 설명한다. 또한 한국의 교육(특히 다문화 교육) 현황을 미국과 비교하며 개선 방안을 제시한다. 


이 장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내용은 중도입국 학생과 외국인 유학생에 대한 챕터이다. 중도입국 학생은 외국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한국에 온 학생을 말한다. 이들은 언어적, 문화적으로 국내에서 출생한 다문화가정 아이들보다 한국 생활에 어려움을 더 많이 겪는다. 특히 한국어가 안 되어 학교 수업에 따라오지 못하는 문제가 심각하다. 그렇다면 이들을 위한 별도의 학교를 만들어야 하는가?  무엇이 더 학생들을 위하는 방법일까. 이 문제에 대해 저자는 답한다. 중도입국 학생을 위한 학교를 따로 만드는 것은 ‘분리 교육’이자 차별이라고 말이다. 오랜 세월 여학생들이 남학생과 분리되어, 그리고 장애인들이 비장애인과 분리되어 상대적으로 열악한 교육을 받은 것처럼 말이다. 저자는 중도입국 학생을 일반 학교에서 다니게 하되, 학생의 한국어 수준과 정서적 상태를 고려하여 일반 학교에 적응이 도저히 되지 않을 경우에 분리된 위탁 교육 시설에서 일시적으로 다문화 학생들과 수준에 맞는 한국어로 교육을 받도록 하여 숨통을 틔워주는 방법을 제시했다. 저자는 중도입국 학생을 위한 별도의 학교는 사실은 학교의 교육역량이 중도입국 학생을 품을 수 없다는 자기 고백일 수도 있다고 한다. 이는 학교의 역량을 키워서 대처해야 하는 문제이지, 중도입국 학생을 분리하는 것이 해결 방법은 아니라고 한다.


또한 저자는 한국의 대학이 유학생을 포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에서는 ‘아시아계 학생은 똑똑하다’는 고정관념이 있다. 고정관념이지만, 미국에서 많은 아시아계 학생이 정말로 우수한 성적을 받았기에 생긴 것이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그렇게 학업 성적이 좋고 모범적인 아시아계 학생이, 왜 한국 대학에서는 수업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 한국 학생들과 교수들의 불만이 많은 것인가? 왜 일본에 사는 한국인 후손인 재일한국인 ‘자이니치’는 학업 성취도가 낮은가? 이에 저자는 특정 집단이 더 똑똑하거나 머리가 나쁘다는 증거는 없고 교육열, 인종 편견 및 환경적 요인 등이 있을 뿐이라고 하며, 한국에서 아시아계 유학생의 성취도가 낮은 것은 대학의 교육 역량과 학생의 수학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입학시킨 탓이라고 한다. 저자는 이에 대한 방안으로 유학생들의 입학을 위한 한국어능력시험 기준을 상향 조정할 것과 학부에서 외국인 유학생만을 대상으로 한국어로 진행하는 인터내셔널 코스 강의를 개설할 것을 제안한다. 강의 교재, 교수자가 사용하는 한국어 수준을 외국인 유학생에게 맞추고, 외국인 유학생들에게 한국 학생과 듣는 수업을 신청할지 인터내셔널 코스를 신청할지 선택권을 주는 것이다.


2장 ‘문화 다양성’에서는 문화가 나라마다 달라 갈등을 겪을 수도 있다며 다양성 · 다문화 교육의 필요성을 저자 자신의 경험과 영화 <미나리> · <기생충>을 인용해 설명한다.      


“미나리는 어디서든 잘 자라”.  - 영화 <미나리> 중에서


영화 <미나리>에서 할머니가 우거진 땅에 미나리를 심으며 손자에게 한 대사이다. 이 말은 한인 이민 1세대의 삶을 대변하고 있다. 어디에서든 잘 자라는 굳센 미나리처럼, 한인 이주민들도 낯설고 힘든 환경에서 꿋꿋하게 자라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자신도 문화의 용광로라고 불리는 미국에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여러 차례 고민하며 이빨에 낀 미나리처럼 낑낑대었다며, 이주민에게 정체성이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지독한 질문이라고 한다.      


“그 냄새가 선을 넘지. 가끔 지하철 타면 나는 냄새잖아”  - 영화 <기생충> 중에서


영화 <기생충>에서 부자인 박 사장이 부인에게 하층민인 운전기사에게서 맡은 냄새 이야기를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이에 작가는 1657년 런던에서 있었던 일을 언급한다. 한 이발사가 냄새 때문에 이웃에게 기소를 당한 일이 있었는데 냄새의 정체는 바로 ‘커피’였다. 작가는 아마 귀족이 커피를 마셨더라면 이야기는 달라졌을 거라고 한다. 또 작가가 미국에 살면서 미국인에게 나는 냄새에 예민해져, 자신도 한국인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을까 염려하여 향수를 사용했었다고 한다. 작가는 이렇게 ‘냄새’는 주류가 문화적 약자에게 내리는 고약한 문화적 수치심이거나 소수자가 스스로를 규제하게 만드는 사회적 열등감일 수도 있다고 한다.


3장 ‘인종 다양성’에서는 인종주의의 허구성을 설명하고 인종 차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그리고 저자는 인종 차별이 과거에 비해 많이 없어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생활 속에 녹아 있음을 말한다. 이 장에서는 미국에서 다문화주의가 인종 차별 철폐 의식으로부터 시작했다고 알려주며, ‘인종’이라는 것은 유럽인이 비유럽인에 대한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든 유사 과학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한국인에게는 ‘황인, 백인, 흑인’으로 구분되는 인종이 백인 사회에서는 훨씬 복잡하고, 인종을 보는 시각도 다름을 작가의 경험을 통해 알려 준다. 친하게 지내는 백인이 자신은 영국계 혈통도 있지만 이탈리아계, 스페인계, 폴란드계 혈통이 모두 섞여 있어서 백인이라고 말하기 애매하다고 했다는 것이다. 백인들에게 ‘완전한 백인’이란 북유럽 앵글로색슨족인 것이다. 이렇게 백인들에게 ‘인종’이라는 것은 우리가 피상적으로 아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것이다. 인종은 다문화주의의 출발선이다. 인종 차별을 없애고, 다양한 인종끼리 한 사회를 이루는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다문화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 이러한 서구 사회의 인종 개념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4장 ‘언어 다양성’에서는 인종을 포함한 여러 형태의 차별은 언어와 관계가 있으며,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부모 나라 언어를 배워야 하는 이유를 역설한다. 


“흡연 장소는 날개 위입니다. 흡연 중 감상하실 영화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되겠습니다.” 


유머를 섞어 안내하기로 유명한 미국 사우스웨스트항공사에서 내보낸 안내 방송이다. 고객들은 대부분 재미있어하지만, 과연 영어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재미있는 유머일까? 영어가 서툰 사람은 자칫 ‘이 비행기의 흡연 장소는 날개 쪽에 있구나’ 혹은 ‘흡연실에서 고전 영화를 보여주는구나’ 생각할 수도 있다. 


푸에르토 리코는 미국 연방에 포함되기를 원하나 포함되지 못한 미국 자치령이다. 푸에르토 리코는 주로 스페인어를 사용한다. 이 책에는 미국 본토로 이민을 간 푸에르토 키로 소녀가 출신을 숨기기 위해 스페인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척 했다는 일화가 있다. 출신이 밝혀지면 차별적 시선을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푸에르토리코 인은 스페인어 정체성이 너무 강하다. 언어 정책 연구자들은 푸에르토 리코 주민의 85~90%가 영어로 소통이 가능할 때 미국 본토에 편입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렇듯, 언어는 소수자에게 공평하지 않고 차별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작가는 이 장에서 엄마가 이주 여성인 다문화 가정에서 아이들이 엄마 나라의 말을 배우지 못해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이 되면 엄마와 소통이 어려운 문제를 짚었다. 그리고 아이가 엄마 나라 언어를 하지 못할 때, 자신의 이중 문화 배경과 이중 언어적 정체성을 증명할 수 없어 자괴감을 느낀다고 한다. 작가는 언어는 정체성을 확립해 주는 도구라고 말한다. 그리고 다문화가정 아이에 대한 이중 언어 교육의 필요성을 ‘미래 사회의 인재’의 관점이 아닌 ‘엄마, 아빠와 함께 인생을 걸어간다’는 관점으로 봐 주기를 바라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개인적으로 느낀 것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는 내가 외국인과 다문화가정 학생들을 가르치며 옳다고 생각했던 것이 틀렸거나 틀렸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사실 나는 '중도입국 학생을 위한 별도의 학교를 만드는 게 좋지 않나'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다. 입장을 바꾸어 내가 미국으로 이민을 갔는데 나 혹은 나의 자녀가 이민자라는 이유로 미국인과 분리된 학교에서 공부를 한다면 어떨까 생각하니, 그것이 차별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민자 자녀 학교가 일반 학교처럼 많지는 않을 테니 집을 그곳과 가까운 곳으로 알아봐야 하고, 그렇게 하지 못하면 힘들게 학교에 다녀야 한다. 또 일반 학교와 이민자 자녀 학교 교육 환경이 같을 거라고 기대할 수 없다. 또한 나는 한국 국적의 다문화가정 학생들에게 부모 나라 언어를 교육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하고 있었지만, 학생들이 다른 친구들과 잘 어울리려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국적이 한국이라도 베트남에서 살다 온 학생은 베트남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더 강할 수 있다. 또 학생들은 이중 문화적 정체성을 가질 수도 있다. 학생들에게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질 수 있게 도와주는 게 아니라, 학생들의 본인의 정체성을 스스로 확립할 수 있게 도와주는 교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로 느낀 것은 자기반성이다. 책을 읽으며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던 지난 10년을 돌아보게 되었다. 과연 나는 다문화적 관점으로 학생들을 가르쳤을까? 이 책 3장에서 작가는 미국에서 박사 과정 강의를 들었을 때 일화를 이야기한다. 중국의 영어 학원에서 자격이 훌륭한 중국 출신 미국인 영어 강사보다 자격이 부족한 백인 영어 강사를 채용한다는 발표를 듣고 아시아인과 흑인은 인종차별이라고 생각한 반면 강의실에서 유일한 백인이자 아시아에서 영어 강사로 일했던 한 학생은 인종차별이 아니라고 강하게 주장했다는 것이다. 인종주의의 수혜자로 살아온 이들은 일상화된 인종차별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다. 같은 사회에 살아도 인종이 다르면 경험이 달라지고 일상의 경험이 다르면 문화가 달라지는 것이다. 


“한국 생활이 힘들 때가 많죠? 저는 베트남에서 몽골에서 살았어요. 그래서 한국에 유학 온 여러분을 이해할 수 있어요.” 


내가 가르치는 외국인 유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이 책의 3장을 읽고 나는 나를 다시 돌아봤다. 과연 나는 베트남과 몽골에서 살았다고 한국에 온 유학생들의 어려움을 ‘잘’ 이해할 수 있었을까? 나는 외국에서 외국인이어서 불편한 점은 있었지만, 그것은 내가 그들의 문화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혹은 언어가 통하지 않았기 때문에였다. 그 외로는 외국인이라서 바가지를 쓴 경험밖에 없다. 하지만 난 사회적으로 ‘차별’을 당한 적은 없었다. 누군가가 나를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혹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싫어하거나 차별한 경험은 없었다. 이는 아마도 한국이 경제적, 문화적으로 힘이 강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가르치는, 상대적으로 약소국에서 온 외국인 유학생들은 한국에서 국적으로 차별받은 적이 없었을까? 내가 아는 한국은 인종보다는 경제력으로 사람을 차별한다. 같은 사회와 상황에 있었더라도 이 책에서 말한 것처럼 나 또한 수혜적인 입장에서 외국인 유학생들의 입장을 이해한다고 오만하게 생각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반성이 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