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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권 May 04. 2021

사탕 봉지와 짧은 손톱

고개 들어봐. 곧 밀물이 들이닥칠 거야.

쌓여버린 사탕 봉지들과, 짧아질 대로 짧아진 손톱을 보았다. 불안하구나. 그제야 나는, 지금 내가 쉬고 있는 숨이 얕다는 것을 자각했다. 언제부터 또 이렇게 얕게 숨을 쉬었을까. 마치 썰물이 나가는 것도 모르고 깊숙하게 바다 안으로 들어간 아이처럼. 그러나 몸과 마음은 그저 가만히 참기만 하지 않는다. 썰물이 나가면 어느 순간부터 무서운 속도로 밀물이 들어오듯, 그저 이렇게 몸과 메마르게 방치하면 나는 다시 잠겨서 죽을 것이라는 촉에 점점 더 예민해진다. 한번 물에 휩쓸려 떠내려갔던 경험은, 이제 예전보다는 조금 더 빠르게 정신을 차려서 고개를 들고 내가 이 썰물의 물 빠진 갯벌에서 어디에 있는지 자각하는데 도움이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더 이상 이렇게 그 어떤 상황이든 홀린 듯이 몸과 마음을 메마르게 방치하고, 더 나를 저 먼 갯벌까지 밀어 넣고 싶지 않다고. 이제 나 자신은 나를 흔들어, 썰물에 홀려 내가 걸어 들어간 내 뒤의 긴 발자국들을 마주하게 한다. 그제서야 비로소 나는, 마치 악몽에서 깬 것처럼 퍼뜩,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라고 되뇐다. 솜이 물에 젖듯 축축하게 무거워진 심장과, 물에서 한참을 숨을 참다가 숨을 들이마시는 기분으로.


2021-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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