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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호 May 25. 2021

유배와 비극의 섬이 휴식의 섬으로

18구간 (4.18)

바람 때문에 추자도 예약을 연기하고 관덕정 분식에서 걷기에 나섰다. 오늘은 제주시에서 조천 만세동산까지 걷는 구간이다. 관덕정 분식은 간세다리 휴게소로 올레길을 걷는 사람들의 휴게소 역할을 하는 곳이다. 구 제주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관덕정 분식에서 시작한 길은 동문시장을 지난다. 시장은 오전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활기가 가득하다. 제주 명물 오메기 떡과 다양한 종류의 귤을 파는 가게가 늘어서 있는 시장통을 지나 길을 건너면 산지천이다. 산지천은 구시가지에서 제주 앞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개천인데 복개천이었다가 2002년에 복원되었다.


산지천을 따라 제주항까지 가면 사라오름 자락에 주정 공장터가 나오고 이곳은 4.3 사건 당시 주민들이 학살당한 곳이라는 안내표지가 있다. 이념의 차이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4.3 사건은 최근에 재조명되고 있다. 시대에 따라 가치가 변하는 이념으로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어 마음이 무겁다.


사라오름 쪽으로 계단길을 올라서면 주택가가 나온다. 주택가 끝쪽에서 사라오름 정상으로 오르는 계단길이 나온다. 사라오름 정상에서는 제주항과 시가지가 보이고 한라산 전경도 한눈에 들어온다. 사라오름을 내려서서 알오름 쪽으로 향하면 길은 알오름 옆면을 비스듬히 이어진다. 알오름 정상을 오르지 않고 아래쪽으로 내려서면 곤을동이다.


곤을동은 산비탈에 옹기종기 돌담만 두른 집터가 모여 있는 곳으로 4.3 당시 부락 전체가 불타고 주민들이 학살당한 곳이다. 지금은 잡초가 무성한 집터만 남아있고 주변으로 새로 지은 집들이 들어서 있어 역사는 기억으로 남고 남은 사람들의 삶은 또 이어지고 있다. 곤을동을 지나면 화북포구가 나온다. 방파제가 어지럽게 늘어서 있는 안쪽으로 포구마을이 있다. 포구마을 골목길을 돌아 나가면 어귀에는 규모가 큰 환해장성이다.


고려시대 삼별초를 막기 위해 축조된 후 시대별로 제주를 지키는 역할을 해온 해안의 돌로 쌓은 성이다. 성 끝 쪽에 신호용으로 봉수대와 같은 역할을 하던 연대가 복원되어 있다. 연대를 지나면 삼양포구다. 제주시에서 가까운 삼양포구에는 검은 모래 해수욕장이 있다. 모래가 검고 수심이 얕다.


삼양해수욕장 끝 쪽에는 화순포구와 같은 화력발전소가 있다. 발전소로 가는 길에서 원당봉 쪽으로 길을 오르면 원당사와 불탑사로 가는 길이 나오는데 그 길을 지나쳐 표지 리본은 아래쪽 밭으로 길을 이끈다. 두 절집을 지나는 길이 무슨 이유인지 발전소 뒤 언덕을 따라가는 길로 바뀌었다. 길이 끝나는 지점에 삼양리와 신천리를 있는 제삿밥 먹으러 가는 길이라는 간세다리 안내표지가 있는데 길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시멘트 밭길과 시공 중인 아스팔트 길이다.


아스팔트  중간쯤에서 바다로 내려서는 오솔길로 접어든다. 바닷가로  오솔길을 따라가면 시비코지다. 해변 바위 끝에 시비가 하나 서있다. 시비를 둘러보고 해변 바위길을 따라가니 해변 바위 위에 정자가  있다. 닭모루다. 닭이 들어앉아 있는 모습이라고 붙여진 아름인데  머리  부분에 정자를 세웠다. 닭모루를 지나니 신촌 포구다. 골목길을 이리저리 돌아 포구를 벗어나면 길은 대섬 위로 이어진다. 용암이 퍼지면서 넓은 표면을 만든 섬인데 지금은 용도를 모를 전신주가 여러  일렬로 서있을 뿐이다.


대섬과 조천포구는 현무암으로 된 둑길을 따라가야 한다. 맞은편에 사람이 오면 잠시 피해 줘야 할 정도로 좁은 길이다. 길가에는 누가 쌓았는지 모를 돌탑이 여러 개 서 있다. 조천포구도 여느 포구와 마찬가지로 골목길을 지나면 넓은 부두가 나오고 길은 연북정으로 이어진다. 연북정은 제주도로 유배 온 관리들이 북쪽을 바라보며 한양으로 돌아갈 좋은 소식을 기다리던 곳이다. 한없이 외롭고 힘든 유배지였던 제주가 지금은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의 성지가 되었다.


역사는 유배지에서 이념의 전쟁터 그리고 최고의 관광지로 돌고 돌았다. 연북정에 서서 북쪽을 바라본다. 나는  길을 마무리하고 북쪽으로 가면  무엇을 할까를 생각해본다. 연북정에서 조천 만세동산은 지척이다. 오늘 걷기는 만세동산에서 마무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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