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제주 생활을 마무리할 때가 되었다. 마지막 날을 장식하기 위해 신비의 도로에서 차가 언덕을 올라가는 경험을 해보고 내처 영실로 올라갔다. 오전 11시 반 경 영실 입구에 도착했는데 차가 긴 줄을 이루고 있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한라산 등산길 입구 주차장에서 차가 한대 나오면 한 대씩 들여보내고 있다.
한 시간 정도 기다리다가 차례가 돌아왔다. 등산길 입구까지 걸어가기에는 좀 먼 거리다. 입구 매점에서 점심 요깃거리를 사서 배낭에 넣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성판악 코스는 여름과 겨울에 올라봤는데 영실 코스는 이번이 처음이다. 영실 코스로는 백록담까지 오를 수 없다. 윗세오름에서 2km 더 올라가면 백록담으로 오르는 길을 폐쇄해 놓았다. 그런데 윗세오름에서 바라보는 한라산이 아름다워 이 코스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
소나무 숲에서 시작된 등산길은 1km 정도 완만하게 오르다 가파른 오름길이 시작된다. 등산길 옆 능선은 499개의 설문대 할망의 아들들이 굳어서 된 바위로 가득하다. 금강산의 일만 이천봉 중 일부가 드문드문 능선에 내려앉은 느낌이다.
설문대 할망은 제주도를 만든 여신으로 500명의 아들이 있었다. 아들들을 먹이려고 죽을 끓이다가 가마솥에 빠져 죽었는데 499명의 아들들이 죽을 맛있게 먹었는데 막내아들이 솥 속의 뼈가 할망의 뼈로 죽었다는 걸 알고 울며 제주도 서쪽 끝으로 가서 차귀도가 되었다. 나머지 형제들은 이곳에서 통곡하다가 돌로 굳어 499개의 장군상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경사길을 힘들게 오르면 넓은 평원이 나타나고 한라산 정상부가 눈에 들어온다. 산아래에서 볼 때 백록담이 있는 정상부의 돌출부로 아름답고 잘생긴 거대한 바위 덩어리이다. 영실코스 아니면 볼 수 없는 장관이다. 이 모습을 보는 것으로 백록담에 못 오르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하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