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확행이라는 단어는 이미 유행이 꽤 지난 단어이기는 한데 최근 그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 다시 그 개념을 꺼내어 보았다. 최근에는 유행이 너무 빨라서 좋은 것들 중에서는 좀 더 오랜 시간 지속되었으면 좋았으련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기도 전에 사라져 버리는 개념들이 많아서 안타까울 때가 많다. 소확행도 그런 개념 중에 하나이다.
< 스마일 이미지 > (출처 : 게티이미지)
삶에서 매일매일 행복한 일이 있으면 좋으련만 행복한 일보다는 힘든 일이 더 많은 것이 일상이다. 그런 일상 속에서도 알고 보면 우리가 쉽게 스쳐 지나가는 많은 행복들이 있다는 것을 찾아냈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서 소확행이라는 단어를 다시 꺼내 본 것이다.
소확행이라는 단어는 누구나 알다시피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약자로 실패할 일이 없는 작은 행복들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소확행이라는 단어가 생각보다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늘은 그런 소확행이라는 단어의 뜻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를 가져보고자 한다.
Ⅰ. 소확행의 어원
소확행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축약어이다. 단어의 뜻에서 알 수 있듯이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하게 실현할 수 있는 행복이나 그러한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경향을 뜻한다. 소확행이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사용된 곳은 소설에서이다.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랑게르한스 섬의 오후'(1986)에서 쓰인 말이다. 소확행이라는 단어는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을 때',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정리되어 있는 속옷을 볼 때' 느끼는 행복처럼 바쁜 일상에서 느끼는 작은 즐거움을 뜻한다.
일상에서 행복이 부족해서였을까? 행복한 일들이 부족해서였을까? 소확행이라는 단어가 부각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원인은 우리의 소비문화와 관련이 있다.
< 청소년이 생각하는 10대 명품 소비 문화는? > (출처 : 디지털조선일보)
우리는 소비와 소비문화가 갈수록 중요해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현대의 시대는 자신의 존재를 소비를 통해서 확인하는 시대라고도 여겨지기도 한다. 즉, 소비라는 단어는 단순한 행위를 지칭하는 것이 아닌 인간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행위라고 여겨지게 되는 시대인 것이다.
이렇게 소비가 우리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은 우리 사회가 생산 중심 사회에서 소비 중심 사회로 변화했기 때문이다. 물건이 부족했을 때에는 공급이 수요를 만들어 낸다는 세이의 법칙이 이론을 넘어서 진리에 가까웠다. 물건이 부족했고 식량도 부족했던 시대에는 선택의 시대가 아닌 무조건적으로 물건이 필요한 시대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전통적으로 소비는 사회의 주요 관심사가 아니었다. 생산이 사회 활동에서 더 중요한 일이었고 소비는 생산의 부산물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옷이나 쌀, 말이나 소 돼지 모든 것이 귀했던 시절에는 생산이 중요했지 소비가 중요하지 않았다. 생산이 부족하니 절약은 생존을 위한 당연한 선택이었고 낭비는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소비는 일종의 낭비이자 쾌락으로 평가절하돼 왔고, 그 결과 소비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문화가 일반적이었던 것이다.
< 대량 생산 체제 > (출처 : 서울신문)
그렇지만 산업 혁명을 거치면서 인류는 대량생산 체계를 만들어 냈고 풍요로운 생산의 시대를 맞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대량생산으로 인해서 우리는 더 적은 노력으로 더 많은 소비를 할 수 있는 시대에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소비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소비는 인류의 삶과 일상을 이루는 주요 영역으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소비는 개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가 된 것이다. 오늘날 개인의 삶에서는 어떤 일을 하느냐 못지않게 무슨 옷을 입고, 어디서 식사를 하며, 어느 곳에서 사느냐가 중요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소비는 계급적, 사회적, 정체성을 보여주는 지표로 기능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소비 일변도의 사회가 되면서 소비에 의해서만 행복을 느끼는 감정에 대한 실망감이 사회적으로 팽배해지면서 우리는 작은 일상에서도 행복을 찾기를 원하게 되었다. 이를 대표하는 말로서 소확행이 뜨거운 호응을 얻어낸 것이 아닌가 싶다.
Ⅱ. 소비 사회로 변화되면서 나타난 현상들
소확행,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소비사회로 변화된 사회에서의 피로감 때문에 사람들이 적은 소비 혹은 작은 일상에서도 행복감을 느끼기 위해서 사랑하게 된 단어라고 했다. 결국 원인은 소비사회 때문이라는 것인데 소비 사회의 변화에 무슨 문제가 있었던 것인지 조금 들여다보도록 하자.
소비 사회로 변화하면서 나타난 현상들을 예로 들어보자. 먼저 베블런 효과로 유명한 베블런의 유한 계급론을 참고해 보자. 베블런은 유한계급론(1899)에서 과시적 소비라는 개념을 처음 사용했다. 과시적 소비란 화폐의 위력과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기 위해 소비하는 것을 말한다.
과시적 소비는 소비의 목적이 개인적 효용 추구가 아닌 위세와 명성과 같은 사회적 상징으로 변화했다는 것을 말한다. 대표적인 예로 명품 소비를 들 수 있다. 그리고 이를 명명한 것에 베블런 효과인데 공급과 수요의 접점이 가격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비싸면 비쌀수록 더 잘 팔린다는 이론이다. 실제로 베블런 효과는 마케팅에서 다양하게 활용되어서 명품 판매, VVIP 판매, 상위 1%를 위한 선택 등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과시적인 소비는 명품이나 특정 제품의 판매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부동산 같은 자산시장에서도 나타난다. 부동산의 상위 지역은 비싼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지속해서 상승하고 오히려 가격 상승에 대한 이슈가 만들어지면서 더 가격이 상승하는 현상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서 강남권이라는 말이 생기고 부동산 주요 지역 중에서 규제가 많으면 많을수록 가치가 있는 곳으로 평가받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소비를 통한 차별화가 계급적 차이를 드러내기 위한 전략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 현대사회의 현상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소비 일변도의 사회에서 소비가 물질적 욕구 충족을 넘어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까지 자리 잡게 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소비는 단순히 물건을 사는 행위를 넘어 개인의 이미지와 스타일, 개성과 자유, 쾌락과 환상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써의 의미까지도 갖는다. 요약해 보면 소비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의 욕망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하나의 문화적 생활양식이 된 것이다.
Ⅲ. 소비의 순기능
앞서 설명한 내용은 소비 일변도의 사회가 되면서 우리는 소비로 인해서 계층 간의 차별화가 나타날 수도 있다는 설명을 했다. 그렇지만 소비가 활성화된 근본적인 목적은 계층의 차별화가 아닌 풍요로운 생산의 시대로의 변화였다는 것을 있지 말자. 여기에 소비라는 단어를 쓸 정도로 우리가 물질적인 풍요를 가지게 된 것은 역사적으로 봐도 100년이 채 되지 않는 기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비는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행위라는 대전제는 분명 맞다. 일 년에 몇 번 되지 않는 명절에 옷을 새로 입을 수 있었고 졸업식이나 생일 같은 중요한 날에만 맛있는 음식을 먹기도 했다.
형제들로부터 책이나 옷을 물려서 입을 만큼 물질적인 부족은 우리 사회 어느 곳에서나 있었고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었기 때문에 이런 것을 부족하다는 생각을 떠나 불편하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그렇기 때문에 물질적인 풍요는 우리 삶에 다양한 행복을 준 것임에는 맞지만 누군가와의 비교로 인해서 스스로의 행복을 깎아내려서는 안 된다.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고 감사해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 소확행이 말하고자 했던 근본적인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 글을 마치며 ]
1억을 가지면 10억을 가지고 싶어 지고 10억이 생기면 그다음은 20억 30억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인간의 욕심은 점점 커지게 되는 것이 당연한 본능이다. 그렇게 좀 더 큰 것을 원하기 때문에 우리는 발전해 나갈 수 있었고 문명사회를 이룩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더 많은 것을 가지게 된다고 해서 더 행복해지는 것인가를 보면 그렇지도 않다. 적은 것보다는 풍요로운 것이 더 좋지만 풍요로운 미래만을 바라보면서 오늘의 행복을 내일로 미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일에만 집중하고 모든 것을 경제적인 발전에만 최선을 다해가게 된다면 그 안에서 분명 누군가는 희생당하고 있는 것이다. 가족이 될 수도 있고 친구가 될 수도 있고 가까운 동료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모두 나에게 안 좋은 일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소확행이라는 단어를 다시 생각해보자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행복이라는 것을 너무 소비와 경제력과 연관 지어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행복이라는 것이 아침에 눈을 떴을 때에 사랑하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는 것이 될 수도 있다. 혹은 오늘 하루 건강하게 집에 돌아온 것이 행복한 일일 수도 있다.
매일매일 최대한으로 행복한 것들이 내 주변에서 많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찾아낸 행복으로 오늘 하루를 알차게 꾸며보고 싶다. 그리고 그렇게 채워진 행복이 한 개가 되고 두 개가 되면 하루에 행복한 것이 많아진다. 그리고 행복한 하루가 되고 나아가 한 주 한 달이 된다. 그것이 행복한 인생이 아닐까?
가끔 내가 가진 것들에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도록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세를 가질 수 있도록 해야겠다. 오늘 하루 행복한 하루 되시기를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