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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챠챠 Jun 04. 2024

자연과 함께 짓는 농사

4화_넉넉하게 만든 길과 함께


5월 13일, 눈부신 날이었다.

나는 1차시 이후 합류했기 때문에 정식 수업 2차시 처음 참석날이고, 밭에서 강사님을 만나는 경험도 낯설어서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몰라 점심 반찬(미역줄기, 총각무)과 텃밭 장비만 챙겨서 나섰다.


오늘 주제는 '토종 고추'

고추는 자기 그림자도 싫어하고, 주변에 물이 고인 것도 싫어하는 예민한 식물이라고 한다. 잘 모르지만 지들끼리 키재기 하다가 그림자 져도 싫어할 것만 같다. 축축해도 안 되고 적당히, 마르지 않은 흙을 좋아한다는 건데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한낮에는 물을 주면 타버릴 정도로 뜨겁고 밤공기는 차다. 아마 습기를 머금은 공기도 싫어하려나. 나는 장마가 오기 전, 눅눅한 방을 싫어한다. 비 오는 날도 물론 싫다. 끈적하거나 축축하거나. 덥지 않고 따뜻한 날씨에 시원한 바람이 부는 날을 좋아한다. 그런 날 얇은 겉옷 하나 걸치고 다닐 수 있으면 더 좋다. 1년에 몇 없는 날인데 점점 줄어든다.

그런 고추의 예민함 때문에 장마 때 탄저병에 걸려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배수가 잘 되어야 고추가 잘 자랄 수 있으니 짚을 깔아주거나 대비를 해야 한다. 고추 농사를 짓는 사람들도 탄저병 피해에 속수무책인 걸 보면 어느 정도는 어쩔 수 없는 것 같기도 하다. 거름과 물을 많이 주면 고추가 덜 매워진다고 하는 설명을 들으니 참 손이 많이 가는 식물이다. 


공동 텃밭을 먼저 가꾼 뒤에 개인 텃밭을 가꾸어야 한다. 개인 텃밭은 각자 임무처럼 손을 대지만, 공동 텃밭은 누군가에게 미룰 수 있기 때문에 우선순위가 그렇다. 그러나 나는 개인 텃밭이 문제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6월 4일이다. 한 달째 내 텃밭을 돌보러 가지 못했다. 내 삶의 우선순위에서 저 멀리 밀려나 버린 것이다. 동안 책에 매달려 있었다. 사람에게 먹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마음으로 텃밭 가꾸기에 호기롭게 도전했지만 결국 일에 밀려버렸다. 인쇄 기간이라 어쩌지 못했다. 기념행사 전에 책이 나와야 하니, 밀어붙여야 하니까 힘을 쏟아버렸네. 이제 걱정된다. 주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기간을 잘 버텨줬으려나.

농사는 자연이 짓는다지만 농부가 모른척해도 될 정도는 아닐 텐데. 다음 주 수업날이나 되어야 상태를 보러 갈 수 있겠다. 


강사님이 텃밭에 사람이 다니는 길을 넉넉하게 만들어 두었다며 칭찬했다. 우리처럼 취미로 농사짓는 사람에게는 어느 정도 편한 농사 환경이 필요하다. 사람이 다닐 공간이 넓어야 밭 사이를 걸어 다닐 맛이 나고, 그래야만 자주 돌아보게 된다. 불편하면 발길이 끊어지는 법이다. 

아파트 도서관에서 아이들과 식물을 기르기로 했다. 



화분 놓을 위치를 고민했다. 화분 두 개를 붙이자는 말에 아이들이 다닐 공간을 주자고 제안했다. 아이들이 걸어 다니며 물을 주고 가꿀 수 있는 공간. 

화분 두 개를 붙이자고 했던 이유는 아파트 내 공간이라 양해를 구하고 쓰는 것이기 때문에 사용 범위를 최소화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문득 강사님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텃밭에 사람이 다닐 공간이 중요하다는 말. 그래야지만 편하게 자주 드나들며 가꿀 수 있으니, 아이들이 지나다니면서 보려면 쪼그려 앉을 공간 정도는 마련되어야 한다. 

화분 위치를 잡고 배양토를 쏟아부었다. 무사히 잘 키울 수 있을까, 아이들이 수확의 기쁨을 누릴 수 있기를 바라며...^^




<강사님께 배운 팁>


추 뜯법: 상추 가운데를 누른 끝동을 잘라 상추대만 남게 한다. 잎은 서너 장만 남겨둔다. 그래야 다시 상추가 잘 자란다.


진딧물: 개미는 진딧물 똥을 좋아한다. 식물 근처에 개미가 보인다면 진딧물이 생겼다는 뜻이다. 땅이 메마르면 진딧물이 더 잘 생긴다.


파: 동반 작물이다. 식물 사이 군데군데 심으면 좋다.


열매작물: 키를 먼저 키워야 한다. 


토종씨앗: 씨를 많이 받는 것이 목표이다. 옛날에는 씨를 귀하게 다뤘다. 씨앗이 없으면 굶어 죽으니까 집 안 깊숙이 감춰두고 소중하게 여겼다. 

작년 열무씨앗을 받아서 심었는데 잘 자란다. 열무 씨앗은 물기 묻은 손에 쥐고 있으면 손이 붉게 변한다. 씨앗 색이 벽돌색과 비슷하다. 혹시나 하고 밭에 뿌리고, 우리 집 화분에도 뿌렸다. 그런데 화분에 뿌린 건 잘 자랐고 밭에 뿌린 건 거의 자라지 않았다. 이유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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