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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Jan 02. 2024

[食] 고구마

식(食)에 대하여

  오늘도 어김없이 고구마를 에어프라이기에 구웠다. 오늘도 어김 없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에어프라이기에 구워진 고구마를 일 년 만에 먹는다. 오늘은 떡국을 먹은 어제의 다음날, 새해의 첫 평일이다. 달 거라고 생각했던 고구마가 유독 맛있지 않다. 매년 새해 다짐으로 다이어트를 하고, 천고마비의 계절이 오면 말보다 빠르게 살을 찌웠다. 겨울잠을 잘 수 있다면, 봄이 오기 전까지 충분한 에너지를 비축했으리라. 이러한 루틴이 매년 반복될 때쯤 이제는 마지막이길 소원하며 신년 계획으로 다이어트를 다시 입 밖으로 끄집어냈다. 그러한 이유로 지금 내 손에는 고구마가 쥐어 있다.


  1월 1일 유해 기간으로 최후의 만찬을 끝으로. 오늘 점심으로 고구마를 집어 잘근잘근 씹어 먹었다. '이제 벼랑 끝까지 왔구나.' 하는 절망감이 씹던 고구마 속으로 스며들었다. 아무 맛도 없는 고구마를 씹으며. 고독을 즐겼다. 식사 시간은 5분 남짓. 줄어든 식사 시간에 대해 다시금 내 삶의 일부를 다른 곳에 내어준 상실감 마저 들었다. 저녁 식사도 이렇게 단조로울 것이다. 내일 식사도. 모래 식사도. 다이어트를 시작한 오늘, 나의 다짐은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약속이 없다면 말이다.


  누군가를 만난다면 이 식사가 잠시 멈출 것을 안다. 방에만 있어 사람을 잘 만나지 못 하지만, 만나는 그 시간마저 고구마를 내보일 순 없다. 그렇게 약속이 있는 캘린더를 보며, 이번주 토요일 있을 약속을 생각하며 잃어버린 식사 시간과 맛을 추억한다. 고구마라고 생각했던 것이 이윽고 나무가 되어 쓴 맛을 남긴다.


  나에게 고구마란, 간편한 음식이다. 또, 구황작물은 소화가 늦다고 이전 피티 선생님이 알려주셨다. 그럼에도 지금 허기진 이유는 지난날 가득 채워 늘어난 위장 탓이 분명하다.


  이번에는 얼마의 기간을 두고, 어떤 목표를 가지고 다이어트를 할지 아직 정하지 못했다. 아니 정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고구마를 먹으며 그 고민을 충분히 하기란 단연코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목적 없이 하면 실패를 한다고 하지만, 나는 가끔 그냥 하기도 한다. 누군가 보면 그냥 하는 것에 웃음을 보일 수 있지만, 전혀 내 상황이 웃기지 않다. 나는 웃음기 없이 고구마를 노려 본다. 내일 먹을 고구마가 벌써 식탁 위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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