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지음
나의 한국현대사(1959-2015, 55년의 기록)
“프티부르주아 계층의 대구 경북 출신 지식엘리트로서 젊은 나이에 이름을 알리려고 출세를 했지만 결국 정치에 실패한 후 문필업으로 돌아온 자유주의자”로 스스로를 규정하는 유시민의 글이다. 그는 1959년생 돼지띠. 인생 사 년 선배지만 베이비붐 세대라는 동질감이 있다. 역사를 과거로만 보지 않고 현재로 보고 1959년부터 2014년까지 55년이란 시간을 대한민국이 뱉어낸 수많은 굵직굵직한 사건과 자신의 삶을 버무려 현재사로 엮는다. 저자의 삶에서(저자처럼 서울대를 다닌 게 아니고 마인츠 대학에 유학한 경험도 없고, 국회의원이나 장관을 해 본 것은 아니지만) 내가 살아온 주변 모습이 보인다.
프롤로그에 감정적, 정치적 공방으로 확산된 뉴라이트 한국 교과서처럼, 이 책이 그런 감정싸움에 휘말릴 위험이 있음에도 저자는 “그것이 감당할 가치가 있는 위험이라고 믿는다.”라고 선언한다. 대개 책을 읽으며 좋은 글, 문장에 밑줄을 긋거나, 메모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건 제대로 하지 않았다. 많은 부분이 함께 경험한 것들이고, 저자가 워낙 글을 잘 쓰는 지라 쉽게 읽을 수 있다.
제1장 역사의 지층을 가로지르다:1959년과 2014년의 대한민국 평등하게 가난했던 독재국가에서 불평등하게 풍요로운 민주국가가 된 힘은 ‘욕망’이라고 푼다. 제2장 4.19과 5.16 : 난민촌에서 태어난 이란성쌍둥이 냉전의 모델하우스가 돼버린 대한민국, 빈민특위의 슬픈 종말과 미완의 혁명, 성공한 쿠데타로 저자가 해석한 해방 후부터 1960년대까지의 모습을 그린다. 제3장 경제발전의 빛과 그늘: 절대빈곤, 고도성장, 양극화 대한민국의 연도별 1인당 GDP(1959~2013) 그래프에서 ‘이륙’(take off)에서 대중소비사회로라는 제목을 뽑아내 한국의 경제 성장을 해석한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대해 <프레이저 보고서>에 비해 약하게(미국의 지원을 약하고, 장면정부의 계획을 계승한 것으로) 서술하지만 공은 인정한다. 한국형 경제 성장의 비결에서 고려치 않았던 것이 낳은 아픔을 소개하고, 외환위기의 원인과 결과, 양극화 시대에 대해 풀어간다. 제4장 한국형 민주화: 전국적 도시봉기를 통한 민주주의 정치혁명 대한민국 민주화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나름대로 정리하고 4장의 제목을 붙인 듯하다. 제5장 사회문화의 급진적 변화; 단색의 병영에서 다양성의 광장으로 단색일 때 효과적이었던 가족계획과 기생충 박멸, 민둥산을 금수강산으로 만든 공을 인정한다. 안보국가에서 북지국가로 가는 길에 들어섰음도. 제6장 남북관계 70년: 거짓 혁명과 거짓 공포의 적대적 공존 레드 콤플렉스는 언제쯤 해소될까 생각하게 한다. 평화통일로 가는 길은 돌아갈 길이 아니라 진보 정부에서 갔던 길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월호의 비극은 총체적 부정과부패에 원인이 있음과 미래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이미 와있다고 말한다.
“똑같은 경험을 해도 철학이 다르면 해석이 달라지며, 경험까지 다르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p105) “지금 우리는 그 광장의 주인으로 살고 있다. 우리는 국가의 부속품이 아니며, 대통령의 부하도 아니다. 우리가 대한민국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우리를 위해 존재한다고 믿는다. 사람은 그 어떠한 위대한 이념이나 가치를 실현하는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인 존재다. 누구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스스로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살 때 행복을 느낀다. 우리 모두는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는 존엄한 인간이다. 우리는 자신의 존엄성을 확신하는 것과 똑같은 무게로 타인의 존엄성을 존중해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자유주의적 각성’ 이라고 부른다.”(p280)
처음 알게 된 사실: 2008년 주한 미대사로 부임한 <성김>이 김대중 납치 사건을 실행하고 후일 두둑한 현금을 들고 미국으로 이주한 주일 외교관의 아들이다.
몇 년 늦긴 하지만, 비슷한 시대를 살아온 기록을 통해 내가 살아온 시대를 뒤돌아보는 귀한 시간이었다. 저자가 고맙다. <나의 한국현대사>는 유시민이 지어 2014년 7월 초판이 나왔고, 나는 2015년 9월 초판 16쇄 본을 읽은 거다. 본문 423쪽 분량으로 돌베개에서 만들었다.
P.S. 2015년 12월 27일 일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