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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 농부 Jan 27. 2021

아빠 무서워요

어릴 적 나의 아빠는 무서운 존재였다.

툭하면 새벽에 깨워 천자문을 읽게 하기도 하고 공부를 시켰다. 아빠는 어릴 적 무조건 올백점을 맞았단다. 

그렇기에 시험 결과에서는 항상 꾸짖음이 뒤따랐다. 어릴 적 색연필로 채점하던 시절 전과목에서 몇 개 미만으로 틀리면 그에 따라 상장을 주었었다. 내가 전과목에서 6개를 틀려 나름 의기양양하게 시험 결과를 보여줬어도 칭찬 한마디 없었다. 심지어 시험지를 찢어버린 적도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죽고 싶단 생각을 했었던 거 같다.  물론 공부에 대해서만 이랬다면 무섭게 여기지도 않았을 거다. 엄마에게도 항상 폭언과 가끔 폭력도 있었다. 중학교 시절에는 그런 아빠가 빨리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 적이 있다. 아빠는 항상 술을 드시며 할아버지에게 10원 한 장 받은 적이 없다며 같은 레퍼토리를 반복해서 얘기하곤 했다. 그렇게 스무 살이 넘도록 난 아빠를 싫어했다. 집에 들어가기 싫을 때도 많았고 집에 들어가면 항상 방문을 굳게 닫아 버렸다. 아빠는 그렇게 항상 술로 지새며 어느 날 갑자기 쓰러져 그 후로는 일어나지 못하셨다. 돌아가셨을 때도 눈물이 나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철이 좀 들었다 싶을 때 아빠가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외로웠겠다. 좀 더 사랑이 필요한 사람일 뿐이었을 텐데...


 그래서  난 절대 나의 아빠 같은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 굳게 다짐을 했다. 그렇게 결혼을 하고 어렵게 너무 사랑스러운 딸이 생겼다. 올해 나이 7살이다. 지금까지 딸을 위해 큰소리도 안 내고 놀아주고 선물도 사주고 난 나름 좋은 아빠야 라고 생각해 왔다. 캠핑도 꽤 자주 다니며 딸에게 좋은 추억들을 많이 남겨주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을 먹는 중에 딸이 갑자기 한마디 한다. "아빠 무서워~" 벽에 걸린 결혼사진을 보며 "저렇게 웃지도 않아~" , "풍선 놀이도 안 해주고~" 순간 충격이어서 뭐라 말을 하지 못했다. 딸은 내가 큰소리로 혼내서가 아니라 단지 말도 잘 안 하고 웃지도 않으니 아빠가 무섭게 느껴졌던 것이다. 작년에 갑작스레 찾아온 우울증이 심해졌다 좋아졌다 하면서 집에선 말을 점점 안 하기 시작했다. 코로나로 일이 어려워진 것도 있고 경제적인 부담감도 쌓여왔었다. 그런 것들이 쌓이다 보니 지금껏 해온 게 아무 의미가 없어지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심각한 생각을 계속하기도 했었다. 한동안 시간이 지났을 무렵 와이프가 참다못해 얘기를 꺼냈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말 안 하고 지낼 거야~"

"당신이 싫은 건 아닌데 요즘 행복하지가 않아~"

"나에게 뭐가 힘든지 얘기를 해야 할 거 아냐~"

.....

한동안 난 말을 잇지 못했다.

어렵게 꺼낸 한마디는 "미안해..."

그래도 나름 스스로 극복해보려고 우울증 관련 책도 읽고 우울증에 좋다는 약도 먹어봤다. 하지만 병원에는 가지 않았다. 아니 가고 싶지 않았다. 난 지금껏 인생을 재밌게 살자라는 주의였다. 그래서 장난도 많이 치고 웃긴 짓도 하곤 했다. 그런 내가 이렇게 되리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 내가 나도 어색하다. 전처럼 쉽게 돌아가지지가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이렇게 보내고 있어 봐야 결코 좋지 않다는 건 안다. 머리로는 이렇게 해야지 저렇게 해야지 잘 안다. 하지만 맘이 쉽사리 움직이질 않는다.


 아내에게도 미안하고 딸에게도 미안하다. 항상 남편 아빠만 바라보고 있는데 그런 날 아내와 딸이 내 눈치를 보게 만들고 있었던 거다. 난 어떻게 해야 하지... 그냥 마음은 이래도 겉으로라도 웃고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하면 되는 건가? 억지로라도 그렇게 해야 다시 점점 좋아지는 건가.. 

어쩌면.. 계속 가지고 가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일단 맘처럼 춥지만 캠핑을 한번 다녀와야겠다. 무서운 아빠는 되지 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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