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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ddmavin project Jun 30. 2023

2년 만에 다시 꽃

화훼장식기능사 합격 그 후, 꽃다발 배우기 도전기

#39살, 꽃 다운 내 나이가 어때서

37살 직장을 관두고 배운 꽃. 2021년 4월 30일, 화훼장식기능사 자격증에 합격했다. 그 후, 플로리스트 일자리를 찾아 전전긍긍했지만 하는 족족 고배삼배독배. 다시 카피라이터로 돌아와 본업을 하다, 꽃이 도졌다. 38살 꽃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이력서를 꽤 넣었다. 한 곳에서 연락이 와 플로리스트 아르바이트 면접을 봤지만 역시는 역시였을까. 나이 탓일까. 면상이 문제일가. 의식의 문제인가. 무엇이 문제인지 알다가도 모르겠는 마음이 뭉개 뭉개. 밑 빠진 독처럼 이력서는 넣는 족족 어디론가 흘러가버렸다. 우주로부터 튕겨나갔나. 시간이 지나 애써 다 털어버렸다고 생각했지만 내 안 어딘가에 끈질기게 들러붙어 있었나 보다. 언젠가 꽃, 다시 만나리라 수채화로 점찍듯 다짐을 하고 다시 카피라이터로 돌아왔다 나갔다 반복하다 39살. 꽃 다운 내 나이가 어때서 다시 꽃다발 배우기 도전에 나섰다. 인생, 최선이 안되면 차선과 차차선이다.


#첫 꽃다발 배우기_꽃 한 송이 포장

첫 꽃다발 배우기는 한 송이 포장이다. 소재는 해바라기, 거베라, 유칼립투스 블랙잭. 해바라기와 거베라는 줄기 끝 부분에 둥그런 꽃이 하나씩 달린 단정화서이자 매스플라워, 일명 주인공이다. 유칼립투스 블랙잭은 매스플라워의 윤곽을 채워주는 라인 절엽, 일명 조연이다. 날이 갑자기 더워져서인지, 개화한 지 시간 지난 거베라인지, 꽃 상태가 시들시들. 그렇다고 내 마음까지 시들해질 순 없었다. 어차피 시들어가는 인생, 그럼에도 피어가는 인생 아니겠는가.


인생 컨디셔닝 하듯, 꽃 컨디셔닝


꽃줄기를 다듬고 물을 올려주는 컨디셔닝.  해바라기와 거베라는 줄기에 잎이 없는 꽃이라 줄기만 비스듬하게 사선처리했고, 유칼립투스 블랙잭은 꽃다발 바인딩 포인트(손 한 뼘) 아래까지 잎을 다듬어줬다.

(좌부터) 거베라, 해바라기, 유칼립투스 블랙잭. 시들시들해 뵈지만 정녕 시들시들은 나였다.. 그래도 꽃을 만나 마음 활짝.


꽃은 잘린 상태부터 시든다. 절화를 이동할 때는 0도에서 4도 온도에 맞춰 호흡량을 감소해줘야 한다. 그래야 증산작용을 해서 시들지 않는다. 컨디셔닝은 최소 6시간에서 24시간 하루 정도 물에 담가 물 올림을 해줘야 싱싱한 꽃으로 살아있다. 때문에 꽃다발 포장을 할 때는 꽃마다 개화 속도가 다르지만, 적어도 4시간에서 하루 전부터 물 올림을 해준 후 꽃다발을 만들어야 한다. 특히 유칼립투스는 중남미에 서식하는 소재라 쉽게 건조해지기 때문에 물에 빨리 보관해야 하고 비닐에 싸서 보관하는 편이 좋다.


5대 3 황금 비율, 바인딩 포인트


꽃다발 황금비율 5대 3. 꽃 머리부터 손 한 뼘 혹은 한 뼘 반 지점이 바인딩 포인트다. 그곳에 플로럴 테이프로 각각 고정을 해준다. 이때 보조 역할인 유칼립투스는 매스플라워 꽃 보다 너무 위로 올라오지 않게 적.당.한. 길이와 방향을 맞춰준다. 내 인생도 황금 지점이 있을까? 황금 비율에 맞춘 황금 지점에 머무르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다.


꽃 머리에서 손 한 뼘 지점, 바인딩 포인트에 플로럴 테이프를 감는다.
포장, 주인공이 잘 보이게

한 송이 포장에서 가장 중요한 건 한 송이가 잘 보이게다. 그러려면 포장지 선택을 잘해야 한다. 이날은 겉지로 플러드 투(무광), 속지로 부직포, 포인트로 펀칭지다.


-해바라기 : 겉지 2장(한 뼘 반 1장/한 뼘 1장), 속지 1장(한 뼘 반), 리본

-거베라 : 겉지 1장(한 뼘 반), 펀징지 1장(한 뼘 반), 속지 1장(한 뼘 반), 리본


한 뼘 반은 길이가 30cm 정도 되고 한 뼘은 20cm 정도다. 요샌 친환경 느낌의 종이로 포장하는 게 트렌드지만, 꽃다발 포장 기초 단계라 가장 기본적인 포장지로 배웠다.

꽃별로 포장 구성. 깔맞춤 했는데, 꽃이 포장지에 눌리고 말았다. 하나를 돋보이게 하려면 나머지는 은은해질 필요가 있다.   


꽃 한 송이 포장, 주인공과 보조


오랜만에 배운 꽃. 두근 설렘 두 배다. 배움에 상큼한 과즙이 입안에서 터지듯 머리가 상큼해진다. 꽃다발에서 가장 기초이자 기본, 꽃 한 송이 포장. 기초가 가장 어렵다. 뭐든 기본이 어려운 법이다.


한 송이 꽃을 돋보이게 하는 일이란,

나머지를 죽이는 게 아니었다.

주인공과 보조-


각자의 위치에서 제 역할을 온전히 다 하는 것이다. 해바라기와 거베라처럼 빛을 향해 고개를 돌려 굴광하 듯 내 빛을 향해 마음을 굴광해 본다. 꽃이 주는 가르침은 늘 겸손케 한다.


부모님께 자랑했지만 주목받지 못했다. 그런들 어떠하리. 내가 사랑해주면 된다. 하지만 지금은 이미 시들고 사라졌다. 참, 꽃다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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