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새벽 5시 30분. 오랜만이다. 이른 기상. 새벽 풍경. 아침 햇살을 맞으며 차창으로 비추는 따뜻한 볕을 느껴본다. 다음 주에 있을 화훼장식기능사 시험을 일주일 앞두고, 아빠와 함께 나선 새벽 꽃시장. 늘 가는 고속터미널 꽃시장에 도착하니 오전 7시다. 탈 때마다 꽃향기가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생화가 있는 3층으로 향한다. 두근두근. 내가 원하는 꽃이 있을까. 곧 아름다운 꽃들을 볼 마음보다 내가 원하는 것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품는다.
분주하구나. 이곳은. 밖에서 보면 아무말 없이 묵묵히 서있는 과묵한 빌딩인데 안에서는 수많은 사람과수많은 말이 오고 간다. 보이는게 다가 아니다.
꽃을 배우면서 나는
완전히 다른 세상 속에 잠시 머물다
온전히 나의 세상 속에 다시 머문다.
꽃을 배우기 위해 뛰어든 새로운 꽃세상. 이곳에서 겪는 새로움은 평범해서 다소 권태로웠던 내세상에 자극을 준다. 가슴 뛰게 하는 무언가를 만나면 이전에 알지 못했거나, 이미 알고 있지만 잊어버린 것들이 슬며시 말을 건넨다.
권태로움 뒤에 감춰진 “소중한 건 곁에 있다고, 소중한 걸 모두 잊고 산 건 아니었나“를 되새기게 해 준다. 당연한 것이 아닌데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 감사한 일인데 감사할 줄 모르고 누린 것들을.
짐 한 보따리와 밤낮이 바뀌는(꽃시장은 주로 자정에 문을 열어 오전에 문을 닫는다) 숙명을 지닌 플로리스트를 향한 여정에 발돋움을 한 딸을 위해 밤늦은 시간이든, 이른 새벽이든, 대낮이든, 흔쾌히 곁에서 동행해 주시는 아빠의 사랑이 오늘 새삼 슬며시 가슴에 새겨진다. TV를 보시며 꾸벅꾸벅 조시는 아버지의 모습에 권태로움에 감춰졌던 것들을 조용히 되새긴다.
아. 이런 것이. 꽃세상이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