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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한용 Mar 11. 2024

나, 여기 잠들다

잘 영화 과감하게 보기

“어떤 감독들은 누군가가 그들의 영화를 보다 조는 걸 알게 되면 굉장히 짜증을 내죠. 저라면 절대 그러지 않을 겁니다. 잠깐 존다고 해도 여러분이 놓치는 건 아무것도 없을 거라고 전 장담합니다. 제게 중요한 것은 영화가 끝났을 때 여러분이 어떤 느낌을 받았는가 하는 겁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여러분이 얻게 되는 느긋한 기분, 그게 중요한 거죠. 저는 억지로 영화를 보도록 관객을 강요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한 순간도 놓쳐선 안 될 것 같은 영화들도 있죠. 하지만 일단 끝나고 나면, 그 영화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체력과 시간을 잃었다는 것만 알게 됩니다. 정말이지 여러분이 이 영화를 보는 동안엔 졸아도 됩니다.”


정지돈의 에세이 <영화와 시>에 실린 글이다. 출처가 없어서 누가 어디서 이야기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건 이 글을 읽고 나서 내 인생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정확히는 영화를 보다 자는데,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심지어 정지돈은 이 책에서 선언한다. “모든 걸작들은 졸리다” 그리고 이제껏 자신이 어떤 영화들을 보고 잠들었는지 기록한다. “필리프 가렐 <평범한 연인들>. 잤다. 샹탈 애커먼 <노 홈 무비>. 잤다. 장 외스타슈 <엄마와 창녀>의 러닝타임은 220분이다. 장뤼크 고다르 <영화의 역사(들)>의 러닝타임은 266분이다. 두 번 다 두 번 잤다.” 등등…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는 그보다도 훨씬 대중적인 영화들을 보는 데도 잤다. <파벨만스>, 중간에 할아버지 나온 부분에서 잠. <어파이어>, 초반부에 푹 잠. 깨어나보니 주인공이 히스테리 부리고 있었음. <사랑은 낙엽을 타고>, 여자 주인공과 남자 주인공이 만나고 처음 데이트 하는 가장 중요한 대목에서 잠. <노 베어스>, 자다가 코 골아서 같이 보던 사람이 깨워줌. <추락의 해부>, 눈 감았다 떴더니 어느새 주인공이 법정에 서 있었음. 지금 예로 든 건 모두 이른바 ‘예술영화’라서 그런 거 아니겠느냐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헐리우드에서 제작된 상업 영화를 보다가도 잔 적이 있다. 톰 크루즈 주연의 <엣지 오브 투모로우>, 이 영화는 후반부에 영화의 코어가 되는 중요한 설정이 밝혀지는데, 나는 관련된 내용이 밝혀지는 모든 순간에 잤고, 그 설명이 끝난 직후에 깨서 결말까지 보는 내내 설정을 이해하지 못 했다.


사실 이상할 것도 없다. 극장은 잠을 자기에 최적화된 공간이니까. 극장은 어둡다. 우리는 조용히 앉아 있어야 한다. 이런 공간에서 뚫어져라 스크린을 쳐다보는 것이 자연스러운가? 스르르 잠에 빠져드는 게 자연스러운가? 나는 아무래도 후자라고 생각한다. 극장은 사실상 거의 자라고 만들어진 곳이다. 애초에 영화를 본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잠에 드는 것 아닌가. 현실에서 유리된 상태로 꿈 속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니까. 우리의 꿈이, 현실을 재료로 현실이 아닌 세계를 만드는 것처럼. 영화도 현실을 재료로 삼아 만든 현실이 아닌 세계다. 극영화든 다큐든 실화 기반이든.


분명한 것은 영화를 이런 식으로 본다고 해서, 인생에 별 큰 일이 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걸 봤다고 할 수 있다면 말이겠지만…. 물론 <노 베어스>를 보다가 코를 골았던 일은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 외에는 전혀 문제될 게 없다. 솔직히, 전체 맥락을 이해하는 데에도 크게 어려움이 없다. 이렇게 말하면, 영화의 디테일을 놓치는 거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다. 왜 디테일을 놓치면 안 될까. 그냥 상상으로 채우면 안 되나. 그렇게 해도 영화는 본 것이다. 물론 같이 보는 사람이 있다면, 그와는 좀 다른 걸 보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애초에 같은 영화도 다 다르게 본다. 그렇다면, 감독들도 영화를 보다 잠 든 관객을 탓하지 않아야 한다. 영화에 공백을 만들고, 스스로 채워넣는, 창조적인 관람을 하는 관객들을 축복해야 한다. 잠이 주는 여러 혜택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자다 일어난 관객은 깨어나서 본 부분들을 더 집중해서 잘 볼 것이다. 감독이 구사하는 영화의 언어를 더 생생히 마주할 것이다.


그렇다면, 뒤집어서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 빠른 편집과 화려한 스펙터클이 하나도 기대 되지 않는 영화, 왠지 보면 졸 것 같은 영화, 보다 잠들 게 확실한 영화, 우리는 그런 영화도 과감하게 보러 갈 수 있어야 한다. 단 “내가 보다 잤으니 이 영화는 안 좋은 영화다”라고 섣부르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극장에서 자는 건 자연스럽다. 그러나 깨어있는 동안 내가 본 것들이 있다. 우리는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있다. 우리는 보다 잘 것 같은 영화를 피한다. 그러나 피하지 않으면, 내 상상 바깥에 있던 전혀 새로운 꿈이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그걸 못 보고 잤다? 그럼 숙면을 취한 것만으로 너무 다행한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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