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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한용 Feb 02. 2024

읽는 인간은 무슨 일이든 견뎌낼 수 있다

왜 읽는가

책 읽기, 이것이 삶을 지키는 첫 번째 기술이다. 그런데 왜? 왜 책 읽기가 삶을 지켜주는 기술일까. 많은 이들이 책 읽기의 이유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 답은 수많은 블로그 글과 유튜브 영상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거기에선 이런 이야기들이 나온다. “책을 읽으면, 문해력이 향상되고 생각이 깊어지며 집중력과 공감 능력이 향상됩니다”. 나도 내게 책을 읽는 이유를 물어보면, 비슷한 설명을 하던 때가 있었다. 이를테면 “자아가 확장된다”는 식으로. 이게 좀 더 있어 보이지 않나…. 자아가 확장된다니… 크으….


어떤 식으로 설명하든, 요는 독서가 “어떤 역량을 길러준다”는 것이다. 사고력이든, 논리력이든, 문해력이든, 공감 능력이든. 물론 다 옳은 이야기일 테다.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독서의 혜택이기도 하고. 하지만 내가 무슨 EBS <당신의 문해력> 제작진도 아닌데, 이런 얘기만 늘어놓고 싶진 않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만’ 이야기하는 것에는 나쁜 측면도 있다. 독서의 효용과 혜택이 얄팍한 한국식 능력주의의 관점에서’만’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설명의 끝판왕은 이지성이 아닐까. 이지성은 “리딩으로 리드하라”고 했다. 하지만 사실 나는 리딩으로 아무도 리드하고 싶지 않다…. 아니 리드는커녕 팔로우도 하기 싫다…. 그냥 리딩만 하면 안 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서는 분명, 어떤 역량을 길러준다. 어떤 역량일까. 카프카의 잠언을 인용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광고인 박웅현의 책 <책은 도끼다>로 널리 알려진 카프카의 잠언은 다음과 같다. “책은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 나는 이 정의에 동의한다. 책은 도끼다. 래퍼 Dok2… Dok2는 이센스의 앨범 <저금통>에 실린 No Boss라는 곡에서 이런 랩을 했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아 아랑곳 Man I don’t give a fuck 다들 갈 길 가라고.” 맞다. I don’t give a fuck, 책은 아랑곳하지 않게 만들어준다. 내가 무슨 일을 겪든간에….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다면 조금만 더 읽어봐주시길. 책은 도끼다. 아랑곳하지 않게 만들어주는 도끼. 그렇다면 독자는 무엇일까? 독자는 시인이다. 시인은 낯선 언어(시)로 낯선 정신을 창조한다. 독자가 하는 일도 비슷하다. 책이라는 도끼로 얼어붙은 내면의 바다를 깨며 정신을 새롭게 콜라주하는 것이다. 그게 금도끼든, 은도끼든 상관없다. 내면의 얼음이 깨지면 바다가 열리는 법이다. 바다가 열리면 우리는 더 깊숙이 잠수하고 더 넓게 항해한다. 열리는 바다의 크기만큼이나 다양한 삶의 리듬과 운율, 정서가 읽는 이에게 생성된다. 독자는 마치 시인처럼, 새로운 언어들로 자기 정신의 맥락을 넓히고 창조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 “정신의 맥락을 창조한다”고 썼다. 정신의 맥락? 그것은 삶의 고통을 포함한다. 이것은 자기 자신의 삶의 고통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당연히 타인의 고통과 사회의 고통을 포함한다. 반복하겠다. 읽는 인간이 된다는 건 시인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로베르토 볼라뇨는 이렇게 썼다. “시인은 무슨 일이든 견뎌낼 수 있다. 고로 인간은 무슨 일이든 견뎌 낼 수 있다. 하지만 두 번째 문장은 거짓이다. 사실 인간이 진심으로 견뎌 낼 수 있는 일은 손꼽을 정도이다. 그렇지만 시인은 진심으로 무슨 일이든 견뎌 낼 수 있다. 우리는 그러한 확신을 지닌 채 성장했다. 이 문단의 첫번째 문장은 참이다. 그러나 파멸과 광기와 죽음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시인은 왜 무슨 일이든 견뎌낼 수 있을까. 그것은 자기가 창조한 정신의 맥락 속에 수많은 고통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이 울부짖는 고통들을 포함시키며, 우리는 그 고통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이해되는 고통은, 견딜 수 있는 법이다. 하지만 그 길은 파멸과 광기와 죽음으로 이어지는 길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읽기’는 모르거나 모른 척했을 고통들을 인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모르는 척 넘어가면 안전했겠지만, 넘어가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것이 자신의 고통이든, 타인의 고통이든.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것이 우리가 책을 읽어야 할 이유다. 동시에 책 읽기가 삶을 지켜주는 기술인 이유다. 그렇다. 읽는 인간은 무슨 일이든 견뎌낼 수 있다. 그것이 비록 파멸과 광기와 죽음으로 이어지는 길이라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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